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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박대우목사)

July 25, 2021 . 아름다운교회 가난한 부자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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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름다운교회
댓글 0건 조회 2,275회 작성일 21-07-28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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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가난을 싫어합니다. 증오하기도 합니다. 어느 누구도 가난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1945-1960년대, 일제 강점기의 수탈과 6.25전쟁의 폐허속에서 우리 부모님 세대는 자식들에게 가난을 대물림 해줄 수 없다는 신념으로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하고 산업화를 이루어 경제적 부를 이루어낸 것이 대한민국입니다. 세계 최빈국의 하나인 대한민국이 세계 최부국의 하나의 대열에 참여한 것은 그야말로 기적중의 기적이었습니다. 그 즈음의 사람들에게는 가난은 정말 고통 그 자체였습니다. 가난을 싫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우리의 일상 생활역시 가난이 주는 설움과 고통은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더더욱 낯선 외국땅에서 내 나라 말로도 아닌 수많은 제약을 가지고 주류사회속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온갖 설움의 세월을 보내며, 당장 한달 먹을 것을 저울질해야 하는 삶을 사는 가난의 압박은 정말 해보지 않으면 힘들 것입니다. 세상에 누가 가난하게 살고싶은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보다 나은 삶을 추구하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입니다. 그러다가 보니, 가난을 벗어나고 싶은 것이 상식입니다. 나무랄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 살 수밖에 없는 경우가 허다하지요.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여기 한 예를 다윗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16편에서 다윗은 자신의 역경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5-6)’ 만일 다윗이 당하고 있는 지금 어려운 곳이 하나님이 줄로 재어 준 구역이라면 이곳이 아름답다 할 수 있습니까? 환경이 나쁘고, 역경과 고통의 삶을 사는 그곳이 우리의 눈에는 결코 아름다울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다윗은 그 구역하나님께서 허락한 그 상황(구역)이 아름답다고 감탄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다시 말해서 주어진 환경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기업과 분깃이기 때문이라고 고백하는 것을 보면, 바로 하나님 때문에 가난하지만, 부유한 인생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약의 바울 사도에게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고후6:10)는 이 놀라운 고백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요? 세상은 소유의 정도에 의해서 평가하지만, 성경은 가진 것이 아닌, 하나님/예수그리스도와의 관계속에서 평가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런 것 같습니다. 아무 것도 없었던 신혼살림에서는 아내와 남편만 있어도 행복했습니다. 고기부페, 고급진 식당에 갈 형편이 아니어도, 된장국, 콩나물 한 그릇만 있어서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가진 것이 많아서가 아니었습니다.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행복했던 시절이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에 독일이 유대인들에게 참 몹쓸 짓을 했습니다. 아우슈비치 수용소에서 수많은 사람이 굶주림등으로 죽어갔습니다. 그때, 그 죽음의 수용소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굶주림속에서도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자기 음식을 내어주면서 죽어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사람다움일 것이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여유로움이겠지요. 가난하다 실망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예수님 때문에 부요함을 선언하며 살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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