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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박대우목사)

September 12, 2021 . 아름다운교회 머리털이 자라기 시작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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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름다운교회
댓글 0건 조회 2,154회 작성일 21-09-12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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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주일학교에 가면 정말 재미있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동화시간입니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은 이야기 중의 하나가 철가면이라는 동화였습니다. 선생님이 얼마나 재미있게 들려주시는지 이야기 재미 홀짝 반해서 주일학교 예배시간이 기다려졌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삼손이야기는 빼놓을 수 없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였습니다. 삼손은 위대했고, 힘이 장사고, 영화까지 나올정도니 정말 괜찮은 사람으로 알려진 인물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이야기로 듣던 성경에서, 내 눈으로 읽는 성경 그리고 설교자로서 다루는 삼손 이야기는 정말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지난 주간에는 새벽기도회 본문으로 다루고 있는데 삼손을 다루는 본문앞에서 저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영웅 삼손이 아니라 부끄러운 신앙인의 아이콘이었습니다. 그는 출생의 예고 때부터 세례요한과 예수님처럼 기적적인 은혜를 타고 난 하나님께 바쳐지고 성별된 나실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삼손은 그 나실인이라는 이름에 맞지 않게 삶 자체가 방탕한 삶이었습니다. 사람은 친구와 노는 곳을 보면 그 사람을 안다고 했듯이, 삼손은 항상 거룩과는 상관이 없는 곳인 블레셋 주변에 머물고 그들과 교분을 쌓으며 삽니다. 그러다가 자신의 인생이 한 순간에 들릴자라는 여인을 만나서 털려버립니다. 안타까운 것은 그 자신도 자기가 나실인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알고도 그렇게 살다니요.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우리 모두가 진실이 없이 보이는 것을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속물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절망의 한숨을 쏟아내게 됩니다. 

그런데 그가 블레셋 사람들에게 잡혀서 눈 뽑히고, 쇠사슬에 묶여서 맷돌을 돌리고 있던 그에게 성경은 이런 말을 씨앗처럼 심어 놓았습니다. “그의 머리털이 밀린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16:22). 삼손의 삶이 거기서 끝나는가 싶었습니다. 절망의 비극으로 인생이 끝나는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머리털이 자라기 시작함을 암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무엇인가 소망을 암시하는 것 같습니다. 머리털에 능력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상징이 머리털이었을 뿐입니다. 그렇기에 삼손의 머리털이 자리기 시작한다는 것은 그를 버리지 않으시고, 마지막까지 사용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은총의 새싹이라는 생각이 마음속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 싹은 삼손이 마지막 기도에서 응답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여, 마지막으로 이번 한번만 은혜를 베풀어달라는 기도에 응답하신 것입니다. 세상이 어려워졌다고 합니다. 교회들마다 위축이 되었다고 한숨을 짓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도 예외가 아닙니다. 아무리 큰 문제가 다가온다 할지라도 그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서 절망과 희망이 교차됩니다. 그 교차지점에 우리의 믿음과 신뢰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이며, 하나님의 목적에 맞도록 우리를 다듬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소망하는 자에게는 그에 맞도록 쓰시고, 하나님께 절망하는 자에게는 그것에 상응하게 하십니다. 우리 교회에 하나님의 권능의 머리털이 자라기 시작함을 봅니다. 우리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발걸음을 사슴의 발처럼 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 마음을 믿음으로 붙잡고 일어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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