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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박대우목사)

September 23, 2018 . 아름다운교회 나에게 자유를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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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름다운교회
댓글 0건 조회 2,104회 작성일 21-02-2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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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철에는 좀 불쌍하고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만, 우리 교회의 강아지들은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된 개들이라는 행복(?)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강아지들이 요즘은 늘 매여 삽니다. 워낙 잘 짖어대는 아름이(German Shepherd) 덕분에 도둑이 감히 넘볼 생각을 못해서인지, 지난 5년 이상을 있는 동안에 도둑이 한 번도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 강아지들이 요즘 불행(?)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울타리가 없어졌기에 늘 묶여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강아지는 우울증에 빠지기도 하고, 어느 강아지는 하이퍼가 되기도 합니다. 늘 매어있어서 불쌍한 생각이 들어서 집으로 데려다가 뒷마당에 들여놓습니다. 그런데 뒷마당은 좁아서 돌아다닐 곳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다가 안쓰러운 생각이 들면 다시 교회로 데리고 와서 넓은 뒷마당에 긴 줄로 묶어 놓습니다. 이러기를 반복합니다. 어떤 때는 이렇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강아지들에게 말입니다. ‘너희들은 넓은 마당이 있는 곳에 묶여있는 것이 좋으니, 비록 좁기는 하지만 좁은 뒷마당에 갇혀 있는 것이 좋으니?’ 그러면 애들이 뭐라고 대답할까 궁금해집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항상 묶여서 넓은 곳을 바라보고 동경을 하느니보다, 비록 좁은 공간이기는 하지만 묶이지 않아서 자유롭게 배회할 수 있는 곳이 더 좋지 않을까 그런 마음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 이와 같지 않을까요? 자유로운 것 같습니다. 화려하고 행복한 삶을 사는 것 같습니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정도로 풍요로운 삶을 추구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무 것도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거기서 무너집니다. 잘 살았던 것 같았는데 어느 순간 자신의 참된 모습을 보는 순간에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우리의 자유는 자유가 아니었던 것이었습니다. 넓은 장소로도 보았고, 풍요로운 꿈이 이루어질 것 같은 화려한 들판도 보았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묶여있었습니다. 질긴 끈으로 묶여 있었습니다. 그것은 참된 자유를 억압하고, 끌리는 살아야 하는 강아지의 모습과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롯의 인생과 같습니다. 삼촌 아브라함으로부터 분가할 때에 그가 선택한 것은 풍부한 물이 있고, 정말 아름다운 목축지가 놓여있는 소돔과 고모라 근처 소알 땅이었습니다. 그곳에 가면 성공할 줄 알았습니다. 그것이 자유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곳은 자유의 땅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모든 것을 잃고 겨우 몸과 두 딸만 남겼을 뿐입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만 살았기 때문입니다. 시편의 기자는 84편에서 ‘주의 궁정에서 한날이 세상에서 천 날보다 좋다. 세상의 악인들과 사는 것 보다는 차라리 주의 성전의 문지기로 사는 것이 좋다’고 노래하였습니다. 이것은 그 시인의 경험에 따른 신앙고백으로 보여집니다. 우리는 자유를 원한다고 하면서 막상 묶인 삶을 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것을 자유이며 번영이며 화려한 삶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묶인 자유일뿐이며, 참 자유는 아닙니다. 비록 작은 공간이지만 마음껏 뛰놀 수 있는 공간, 무엇엔가 묶이지 않는 자유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자유입니다. 묶인 것 같으나 묶이지 않는 참된 자유가 그 안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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