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병에 효자 없다. > 목회칼럼(박대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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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박대우목사)

February 24, 2021 . 아름다운교회 긴 병에 효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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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름다운교회
댓글 0건 조회 2,165회 작성일 21-02-24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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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갑자기 이러한 고사성어가 생각나는지 모르겠습니다. ‘긴 병에 효자없다’ 아무리 부모님을 극진하게 모시는 효자라 할지라도 부모가 병들었을 때에 그 병이 오래면 누구나 시들해진다는 말인데, 그것이 부모든 자식이든 부부이든 비슷한 것 같습니다. 물론 예외적으로 정말 극진하게 대하는 관계도 있습니다만 병이 오래되면 짜증이 날 법도 합니다. 애정이 식어서도 아니니다. 그것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코로나 19으로 인해서 ‘웃고픈’일들이 많이 생깁니다. 강제적으로 출근도 못하고, 여행도 못하고, 집안에 갇혀있다시피 하다 보니 사람마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통해서 짜증스러운 상황들을 면해보려고 기를 쓰는 것을 봅니다. 나름대로 기발한 방법으로 시간을 보내거나 무료하기 쉬운 일상을 어떻게든 견뎌보려고 몸살을 하는 모습이 오늘의 우리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부부싸움도 많아지고 신경질도 많아져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경우도 많아진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일상의 삶이 우리 인생에 얼마나 많은 유익이 있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너무나 ‘일상적(normal)’이어서 그 일상의 삶에 대한 고마움을 우리가 몰랐던 것입니다. 숨쉬는 것 하나, 밥 먹고 일을 할 수 있는 것 하나 따지고 보면 감사한 일이 아닌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긴 병에 효자가 없다고 하듯이 이런 사태가 오래 가면 우리의 일상의 삶은 고사하고, 이러한 상황이 만들어 내는 우리 삶의 또 다른 일상이 만들어져 새로운 패턴의 일상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기존의 가치관이 달라지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까지 익숙해졌던 삶의 가치관이나 방법이 전혀 다른 가치관을 만들어낼 것과 그러함 속에서 한동안 몸살을 앓고 나야만 하는 인류의 아픔이 생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입니다. 기성 세대에 속한 저에게도 현실의 삶에서 오는 이질감적인 문화나 가치관 때문에 고민을 참 많이하는 것과 같은 현상일 것입니다. 더 이상 진리가 진리가 되지 못하고, 지금까지 지켜 왔던 정의나 진실이나 가치관이 완전히 뒤바뀌면 더 큰 아픔과 혼란이 찾아오게 되며 그것을 잘 다스리지 못할 때 오는 disorder, 즉 그것이 정신분열증이 아닐까요?

이러한 현상은 단지 삶에서만 오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신앙적인 것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온라인 예배’라는 기상천외한 방법을 도입하게 되면서 사람들이 긴급하게 만들어진 새로운 질서 속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런 예배가 오래 지속되다 보면, 우리의 예배 가치관도 달라져서, 구태여 교회를 찾지 않아도 예배할 수 있다는 생각, 예배드리는 곳을 ‘구경’했다는 것만으로 예배했다고 여겨지는 착각에 빠져서 신앙생활이나 교회의 본질적 가치관을 잃어버리는 것이 가능하겠다는 ‘불안감’이 작동하는 것은 단지 노파심에 지나지 않은 것일까요? 여기에 수많은 신학자들이 이제는 ‘당연한 논리’를 제공해 주고, 앞으로는 ‘교회가 필요치 않는 교인’이 양상되는 것을 생각하는 제가 너무나 나간 것일까요? 긴 병에 효자가 없다고, 이러한 일상의 변화가 길어지면 우리의 신앙생활의 패턴에도 변화가 생기고, 앞으로 이상한 예배,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한 교회가 생기는 것이 아닌가 싶은 이 맘이 노파심에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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