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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박대우목사)

February 24, 2021 . 아름다운교회 염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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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름다운교회
댓글 0건 조회 2,173회 작성일 21-02-24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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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에 답답한 가슴을 가진 사람들이 한 둘이겠습니까? 누군가는 정부 지원금으로 편한 세상 산다고 하지만 답답한 가슴은 마찬가지입니다. 기업인은 기업인대로, 소상공인은 그들대로, 종업원은 종업원대로 죽겠다고 아우성치는 것은 어느 누구에게도 피해가지 않는 것 같습니다. 나름대로 잘 나가는 사람이나 직업군이 있다고 해도, 이 사회가 아우성치는 것은 답답함 그 자체인 것 같습니다. 나라가 돌아가는 꼴이라도 국민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면 좋겠는데, 미국이나 한국 할 것없이 답답하기는 매 한가지입니다. 이러한 원인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육을 가진(sinful nature) 인간’의 죄성에서 찾아야겠지만, 근시적으로는 우리 마음을 답답하게 하는 것은 다른 게 아닌 ‘염치를 모르는 지도자들’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표리부동(表裏不同:겉과 속이 같지 않은 위선)한 사람들 때문입니다. 적어도 과거에는 염치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염치(廉恥)라는 말의 국어사전적인 의미는 “체면을 차릴 줄 알거나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입니다. 자신의 잘못이 드러나거나 부끄러운 일이 알려졌을 때에는 적어도 부끄럽게 생각을 하고 반성하거나 체면을 차리는 것이 선비정신이었고, 그것이 그 시대의 최소한의 양식(良識)이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나라의 지도자들에게서는 미국이나 한국 할 것 없이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뻔뻔함’이 시대의 정신인양 외쳐대고 있으니 그야말로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과거에 자기가 한 말을 뒤집는 것은 구멍가게 호떡 뒤집기보다 쉽게 뒤집는데, 더 속상한 것은 그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자랑스럽게 ‘논리적 근거’를 가지고 ‘싸가지 없게’ 대변하고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전혀 반성도 없습니다. 궤변도 잘하면 진리가 되는 시대에 사는 것이 우리를 뒤집어 놓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의 정신이었다는 것을 잊고 있었습니다. ‘자기만이 옳은 정의’라는 것 말이지요. 공의와 공평 그리고 정의는 이미 퇴색되어서 ‘오직 자기편만이 유일한 공의와 정의’라고 믿는 독선에 빠진 정치 지도자들이나 종교 지도자들의 오류를 막아설 방법이 없습니다. 한쪽의 공평과 정의는 바른 공평의 의미가 아닙니다. 누구나 같아야 합니다.

이것이 중요함은 성경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집사의 자격을 말하는 디모데전서 2:9에서 ‘염치와 정절’을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염치라는 말은 ‘(사람에 대한)수줍음,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을 의미하는 것이고, 부끄러움이나 명예, 겸손을 말할 때 쓰는 단어였습니다. 교회의 직분인 집사의 자격만 되어도 ‘염치와 정절로 단장하라’고 하는데, 나라의 지도자들이야 오죽하겠습니까? 과거에는 자기가 기준에 미달하면 부끄러울 줄 아는 ‘염치’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왜 나를 부끄럽게 하느냐?’고 항변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염치가 없어진 것이지요. 그러고 보면 염치없는 사람들이 많으면 세상이, 공동체가 피곤해진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염치없이 대드는 사람들 때문에 공동체가 고통을 받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말씀을 끌어내리지 말고, 나를 말씀에 끌어 올려야 합니다. 시대가 변하여도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그 가치를 끌어내리지 않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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