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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박대우목사)

January 17, 2021 . 아름다운교회 코로나 시대와 행.통 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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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름다운교회
댓글 0건 조회 2,033회 작성일 21-02-24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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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예배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모든 것을 설명해 줄 수 없습니다. 우리가 교회를 그저 예배하는 곳으로만 생각하면 오늘날과 같은 혼돈과 착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특별히 코로나 시대에 우리가 잘못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하는 우리의 상식입니다. 교회를 예배 공동체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예배를 드렸느냐 안드렸느냐, 대면 예배를 했느냐 비 대면 예배를 했느냐에 중점을 둡니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옳으냐, 집에서 예배를 드리면 안되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곳이면 어디든 상관없다 등등의 논쟁이 바로 교회를 예배 공동체로만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예배는 호흡과 같다고 비유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숨을 쉴 때에 의식하면서 호흡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만일 의식이 된다면 그 사람은 병든 사람입니다. 호흡이 그만큼 쉽지 않기 때문에 호흡을 의식하면서 숨을 쉬는 것이지요. 그러나 건강한 사람은 자기가 일분에 몇 번 숨을 쉬는지, 산소량이 얼마인지 계산하지도 않고 그냥 생각없이, 의식하지도 못한 채 그냥 숨을 쉽니다. 그것은 인간의 생명의 기본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배가 그렇습니다. 예배는 우리의 숨쉬기 만큼이나 너무나 자연적이고 기본적인 것으로 당연히 예배를 해야만 하는 것이 피조물인 인간이 전능자를 섬기는 길이 됩니다.

교회가 예배공동체로만 남으면 무속적, 기복적 신앙으로 흐를 확률이 높습니다. 교회는 예배를 기본으로 하면서 가르치고 보여주고 살아내야 하는 ‘제자로서의 삶을 나타내는 공동체’라고 하면 적절할지 모르겠습니다. 교회는 예배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살아내기 위하여 훈련, 양육(돌봄), 선교, 그리고 성도의 교제가 어우러져서 ‘전인격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게 하는 종합예술과 같은 것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신비입니다. 교회가 그저 예배 공동체로만 남으면 안됩니다. 코로나 시대에 우리들이 잘못하는 것이 여기에 있습니다. 예배를 어떻게 드렸느냐에 방점을 찍으면, “아, 나는 예배드렸어!(온라인이나 오프라인으로) 그러니 할 일을 다 했어”하는 것으로 신앙생활을 마무리해 버립니다. 종합예술로서 교회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connect’가 중요합니다. 그것이 성도의 교제입니다. 지금은 성도의 교제가 무너져 버렸습니다. 아 잠깐이면, 이 바이러스 시대가 지나고 나면 옛날로 돌아갈건데 뭐 그리 조바심을 내냐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무너진 생활pattern이 짧으면 그럴 수 있는데 이미 우리는 1년 가까이를 성도의 교제가 무너진 채로 살았고, 올 해도 그렇게 살 확률이 많으며, 내년에도 그 후유증을 앓으면 3년입니다. 이 시간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체질을 충분히 바꾸고도 남습니다. 그나마 포스트 모더니즘의 영향으로 관계가 단절되어가는데 코로나 때문에 이젠 그 시계가 10년 이상은 더 빠르게 진전되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행.통 140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다양하게 성도들을 귀찮게 하면서까지 보채는 이유는 이러한 시대적 환경에 안착하지 않도록 깨우기 위함입니다. 흔들어 깨우고 싶습니다. 혼자 눈속에 있으면 그냥 죽습니다. 흔들어 뺨을 때리면서 깨라고 해야 합니다. 서로 연결고리를 다시 매야합니다 혼자 남지 마십시다. 영적으로 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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