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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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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Feb 11.2018 오징어 다리
    어느 부부가 결혼 전의 경험을 이야기 하면서 이런 고백을 하였습니다. 여자는 남자에게 엄청 서운한 감정을 잊지 않고 있었는데 그것은 남자의 이상한 행동 때문이었습니다. 두 사람 다 오징어를 좋아하는데 여자는 몸통을 좋아하였는데 남자는 오징어를 먹을 때마다 몸통은 자기가 홀라당 먹어버리고, 다리만 주더라는 것입니다. 결혼 전이라 서운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지나갔지만 평생 그것이 한이 맺혀서 서운한 감정을 씻을 길이 없었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어느 날, 왜 자기에게 그렇게 좋아하는 오징어 몸통을 자기만 먹었는지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었답니다. 남자는 원래 몸통 보다는 다리를 제일 좋아했답니다. 그런데 여자친구를 생각해 보니, 그렇게 좋아하고 맛있는 다리를 주는 것이 애정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되어 자기가 좋아하는 오징어 다리를 포기하고 몸통은 자기가 먹고, 다리를 여자에게 주었답니다. 결국 사랑하는 방법이 달랐던 것이지요.중국집에 가면 짜장면을 먹을지 짬뽕을 먹을지 늘 고민하듯이, 오징어를 놓고서 마음으로 맛있게 느끼는 부위는 아무래도 몸통 가운데 부위라고 생각하면서도 오징어 다리도 맛있다는 것을 알기에 다시 오징어 다리에 손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몸통이냐, 다리냐… 사람에 따라서 어느 것이 귀하고 맛있는 것인지에 대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일이지요. 그런데 이 이야기 속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서로의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차이가 오해를 불러일으키더라는 것입니다. 작은 오해, 오해(誤解)란 잘못 이해했다는 것인데, 그것은 전적으로 소통과 대화의 장으로 가지 못한 것이 더 잘못입니다. 사람의 차이 때문에 오징어 다리나 몸통일 수는 있어도, 그것 때문에 오해가 되어서 감정을 상하게 되는 것은 우리의 잘못입니다. 서로 솔직한 대화가 있었더라면, 그리고 그 대화로 인한 소통이 이루어졌더라면 훨씬 더 예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오징어 때문에 감정 상해서 관계가 어려워지는 일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일들이 어찌 오징어에 대한 것뿐이겠습니까? 공동체 생활을 하는 교회, 그리고 그 구성원인 성도들 사이에서도 이러나 대화나 소통의 부재 때문에 온갖 이상한 공동체로 발전하게 되는 것은 순전히 우리 자신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성도와 성도의 문제, 성도와 목회자와의 문제, 목장 안에서의 문제 등, 수많은 문제를 생각해 보면, 결국 마음을 터놓고 조금만 서로를 알 수 있는 대화가 있었더라면, 내 입장만을 고수하지 않고,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하는 자그마한 마음의 여유가 있었더라면, ‘나는 이러 이러한 것들 때문에 마음이 아파요’라고 표현할 수 있고,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의 마음을 받아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우리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내 기준에 맞추어 상대방을 사정없이 깎아 내리고, 판단하고, 서운해 하고, 미워했던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성숙이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지 않을까요? 상대방이 왜 그런 행동과 말을 하는지, 그 사람의 마음의 한편을 이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불행하게도 우리는 나만이 중요하고, 나의 판단만이 절대적이라는 자기 절대성을 주장하다가 대화와 소통을 무너뜨리게 되는 어리석음을 범합니다. 서운하고, 미운 감정이 들 때, 나의 입장에서가 아닌 그 사람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해야겠습니다. [이 게시물은 아름다운교회님에 의해 2021-02-23 15:22:13 목회칼럼에서 이동 됨] [이 게시물은 아름다운교회님에 의해 2021-02-23 15:25:36 설교영상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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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Feb 04.2018 우리의 부끄러운 민낯
    목회하면서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교회 안에 중직자들의 신앙생활이 기본적인 헌신도 없어서 성도들의 귀감이 되지 않아서 목회자로서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성숙한 제자라고 한다면 이런 정도는 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아쉬움 말입니다. 고민하다가 당회를 거쳐서 권면과 훈계를 하기로 결정하고 3분의 중직자들에게 ‘권계장’이라는 것을 보냈습니다. 당연히 반발이 있었고, 그들과 평생 불편한 관계를 가져야 했습니다. 그 권계장의 내용은 특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제직들에게 받은 3가지 헌신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중직자들로서는 가장 기본에 해당되는 것이었습니다. 기본이 안되면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하는데 너무나 당당합니다. 생각해 보니, 다들 그런데 우리라고 별거냐는 그런 의식이 있는 것 같습니다.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거룩한 백성이 된 성도라 이름하는 교인들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구원의 감격을 맛본 사람이라고 하면 예배의 소중함과 감격이 없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의 예배를 보면 정말 부끄러움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80%의 교인들이 예배시간을 지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시작하는 시간에 불과 몇 명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입니다. 거의 설교 시간이 되어서야 자리가 차고, 그것도 모자라 예배 끝나고 오는 사람도 허다합니다. 주일학교가 제 시간에 시작을 못할 정도로 아이들이 늦게 옵니다. 그 말은 아이들의 부모가 늦게 온다는 말입니다. 물론 피치 못하게 늦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상습적이라면 문제는 다릅니다. 토요일 늦은 시간까지 일하거나 놀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피곤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합당한 이유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약속이 있을 때, 소중한 분들을 만날 때, 늦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데이트를 해도 절대로 늦지 않습니다. 자녀들, 학교에 늦게 보내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도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데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예배하는 하나님의 임재현장을 우리는 방관하거나 소홀합니다. 예배를 드리는 모습, 예배에 임하는 성도들의 자세를 보면 그 교회의 수준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의 모습은 정말 ‘부끄러운 민낯’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런 모습을 어떻게 보실까 궁금합니다. ‘교회 문을 닫았으면 좋겠다’고 탄식하는 것은 아닌지 목사로서 조마조마합니다.이런 우리들의 부끄러운 민낯을 고발합니다. 그러고도 이 상습적인 지각에 대해서 우리 스스로 결단하지 않으면 주님의 준엄한 책망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예배시간에 맞추어 오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최소한 예배시간 10분전에 도착해서 기도하면서 오늘 예배를 통한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예배시간에 늦어서 헐레벌떡 뛰어야 하는 자세로 신앙생활하지 말아야 합니다. 간신히 예수 믿지 말고, 능력 있게 예수를 믿읍시다. 예배는 우리의 영적 능력의 공급처이며, 우리의 헌신의 장소이며, 하나님의 임재를 누릴 수 있는 영광의 장소입니다. 예배에 다들 늦으니까 예배에 늦게 오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우리의 이 부끄러운 민낯을 부끄러워해야합니다. 이러면서 어떻게 베가스의 영혼을 책임질 수 있겠습니까? 예배, 우리의 생명입니다. [이 게시물은 아름다운교회님에 의해 2021-02-23 15:22:13 목회칼럼에서 이동 됨] [이 게시물은 아름다운교회님에 의해 2021-02-23 15:25:36 설교영상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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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Jan 28.2018 기준을 높여야 합니다.
    이민 교회 그리고 개척교회를 해 보면서 아쉬움이 남는 것이 있습니다. 성도됨 그리고 교회됨의 표준을 어느 정도로 잡아야 하는가입니다. 성경의 표준에는 못미쳐도 그나마 나름대로 성숙한 제자라고 한다면 이런 정도는 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 말입니다. 전통이 있는 교회는 나름대로 노하우를 가지고 있고, 나름대로의 규율이 있습니다. 그것을 지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많은 자원과 능력들을 갖추고 있어서 구태여 강제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의 높은 표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장로는 이정도 되어야 한다, 권사 안수집사는 이런 정도는 해야 한다는 것들입니다. 한 교회에서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다가 보면, 자연스럽게 선배들을 따라하다 보면 나름대로 그 기준에 부합하는 인물들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런데 작은 교회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일단 사람이 부족하기도 하여 조금만 열심을 내도 금방 사람들의 눈에 뜨여서 교회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도 곧 바로 중직을 맡게 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그러다가 보니, 기준이 낮아집니다. 예배 생활, 기도생활, 십일조 생활은 기본인데 이민 교회, 작은 교회에서는 그것만 해도 영웅처럼 대접받습니다. 그러나 기본이 되어있는 교회에서는 그 정도는 그냥 모두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민 교회에서는 예배 생활은 물론이거니와 기도 생활하는 사람을 보는 것은 희귀한 일이 되었습니다. 대충해도 제직으로 임명해 줍니다. 그러다가 보니 기준이 한참 낮습니다. 웬만한 교회에서는 서리집사 감도 못되는 사람들이 작은 교회에서는 장로가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참 많은 아쉬움을 갖게 합니다. 기준이 낮아진 것입니다. 왜냐면 모두가 그렇게 하니까 그것이 부끄러운 일인지도 모르고 그대로 하게 되는 것입니다.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교회는 하향 평준화를 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상향 평준화를 이루어야 하고 그것을 위하여 노력해야 합니다. 낮은 기준으로 살면 발전이 없습니다. 점점 기준이 낮아지면 그 교회는 실력이 한참 처집니다. 신앙생활 대충해도 되는 분위기에 살면 그 교회는 소망이 없습니다. 때로는 사정없이 매를 대야 할 때도 있는데 시험들까봐, 교회가 어려워질까봐 매를 대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안돼! 라고 하고 싶어도 시험들까봐 그러지 못한다고 하면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그렇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점점 그 영적 성숙의 기준이 낮아지는 것을 보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해볼 길이 없는 무기력을 발견하게 됩니다. 찬양팀도 기준이 점점 낮아집니다. 제직의 기준이 점점 낮아집니다. 자꾸 사람들이 할 수 있을 만큼의 기준으로 낮추면 나중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날이 오게 됩니다. 그래서 기준은 높여야 합니다. 힘들어도 기준을 높여야 합니다. 오늘 날 이 사회가 점점 더 교묘해지고 타락해지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 기준이 점점 낮아진다는 것에 있다고 보여집니다. 우리 교우들의 신앙생활의 기준이 점점 낮아지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늘 낮은 기준으로 살다가 보면 그 기준을 조금만 높여도 다 실격해버립니다.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강한 군사로 성장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강한 군사는 강한 훈련에 있습니다. 그것은 높은 기준이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유치원문제를 풀고 있으면서 대학에 다니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문제입니다. 실력을 배양해야 합니다. [이 게시물은 아름다운교회님에 의해 2021-02-23 15:22:13 목회칼럼에서 이동 됨] [이 게시물은 아름다운교회님에 의해 2021-02-23 15:25:36 설교영상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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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Jan 21.2018 연약한 것 키우기
    지난 해, 심장에 3개의 Stent를 집어넣는 시술을 하고 나서 회복의 속도가 많이 늦어져 의사와 집중 상담과 검사를 통해 얼마 전부터 Cardiac Rehabilitation treatment를 받고 있습니다. 일종의 심장재활치료라고 할까요? 이 치료는 일주일에 3번씩 12주를 진행하는 재활치료 프로그램인데, 이 치료를 통해서 정상적인 심장활동과 회복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치료는 운동을 통해 심장을 정상적으로 회복시키는 훈련입니다. 운동을 지속적으로 하고, 점점 강도를 높여서 정상적인 활동을 하게 하는 치료훈련인데, 여러 가지 운동을 체계적으로 간호사와 치료사의 관리아래 진행합니다. 그 운동에는 여러 가지들이 포함되는데, 자전거 타기, 걷기, 손 자전거, 역기, 계단 오르내리기 등등의 훈련을 하게 됩니다. 아직은 시작단계라서 그리 많이 힘들지는 않지만 어떤 운동은 정말 힘이 드는 종목이 있습니다. 어떤 운동은 휘파람 불며 할 수 있을 만큼 가벼운 운동인데, 어느 운동은 그 정해진 시간을 채우는 것을 이를 악물고 감당해야 합니다. 눈을 감고 숫자를 세면서 빨리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한 가지 배운 것이 있습니다. 왜 어떤 운동은 힘들지 않게 넘어가는데, 왜 어떤 운동은 왜 이리 지겹도록 힘이 들고 하기가 싫은 것일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 신체 중에서 가장 약한 부분이 가장 힘이 들게 운동을 하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가장 연약한 부분이기에 그 부분을 단련하는 것이 가장 힘들다는 것이지요. 튼튼한 부분은 그리 힘들지 않게 움직일 수 있는데 상대적으로 가장 연약한 부분은 과부하가 걸려서 힘들어하더라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깨닫게 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에도 그런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품이든, 육체적인 병약함이든 간에 약한 부분이 있어서 그 약한 부분은 더욱 단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연약하다고 훈련을 멈추면 고쳐질 수 없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약점’입니다. 그것이 연약한 부분입니다. 어떤 분은 불쑥 화를 잘 내는 성품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말을 함부로 해서 남에게 상처를 주는 분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자기 안에 분노와 상처를 안고 마구 남을 Hurt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것들은 자신의 약점입니다. 어떤 이는 외모에, 학벌에, 재산의 정도에, 직업에 약점을 가졌다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고통하고 또 고통을 당합니다. 그것들을 고친다는 것은 매우 어려워 보이고, 불가능해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개선을 멈춰서는 안됩니다. 우리 안에 약한 부분들이 드러나면 우리는 그것을 탓하거나, 책임을 전가하거나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약점을 강점으로 바꾸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내게 아픈 부분은 더 힘든 부분입니다. 그래서 더 근력을 키워야 합니다. 그래야 건강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아무도 완벽한 사람이 없습니다. 각자가 약점(연약한 부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힘들다고, 고치기엔 늦었다고 포기하면 안됩니다. 오히려 더욱 강하게 훈련하여야 합니다. 약하기에 힘이 듭니다. 약하기에 더욱 아파합니다. 그러나 약하다고 그냥 포기하거나 고통스러운 훈련의 과정을 중단하면 우리는 늘 그냥 약한 것만 남습니다. 약함이 있다는 것은 그 약함을 이기도록 잘 단련해 내서 건강한 영적인 삶을 살라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 게시물은 아름다운교회님에 의해 2021-02-23 15:22:13 목회칼럼에서 이동 됨] [이 게시물은 아름다운교회님에 의해 2021-02-23 15:25:36 설교영상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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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Jan 14.2018 교회의 직분자가 된다는 것
    올 해 우리 교회는 11분의 서리집사가 새롭게 임명되었습니다. 이 분들은 생애 처음으로 ‘집사’라는 칭호를 받는 분들입니다. 장로, 안수집사, 권사와는 달리 서리 집사는 매년 교회로부터 임명을 받아서 1년 동안 집사의 직분을 행하는 임시직입니다. 저희 교회는 이러한 분들을 사랑하고 축복하며 축하해드리고 있습니다. 이분들에게 거는 기대가 있습니다. 좋은 모델을 만들어 달라는 것입니다. 앞선 선배들의 고질병과 같은 모습은 닮지 말고, 순종하며 말씀대로 좋은 영향력을 줄 수 있는 분들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찌 신임 서리집사에게만 요청되는 것이겠습니까? 기존에 있던 모든 직분자들에게 요청되어지는 것이지요. 제가 어려서부터 배운 것이 이러한 원리입니다.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중심’이라는 말입니다. 아주 단순하면서도 신앙생활의 모든 원리가 이 세 마디에 담겨져 있음을 깨닫게 된 후에는 정말 진리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직분자들은 하나님 중심의 삶, 성경 말씀에 순종하는 삶, 그리고 교회 중심의 삶을 살도록 배운 것입니다. 특별히 직분자가 되었다 함은 교회 중심의 행동반경을 가진 사람이어야 합니다. 직분자가 교회중심으로 움직여지지 않으면 그 직분은 개인의 명예를 위한 직분이 되어버립니다. 직분을 받았으면서도 교회 중심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직분을 명예처럼 사용하는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직분자는 믿음이 좋아야 하지만,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교회 중심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그 교회에 쓸모없는 직분자가 되어버립니다. 교회중심이라는 말은 모든 삶의 중심에 교회를 두고, 생활하는 모든 마음이 교회를 향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교회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함께 걷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어떤 직분자는 교회가 어떻게 움직이든 상관하지 않고 자기가 가고 싶은 길을 갑니다. 회의를 해도, 행사를 해도, 그것에 맞추어 시간계획을 편성합니다. 그러나 직분자들은 여행, 직장, 가족모임, 각종 회의를 교회의 움직임에 따라서 편성해야 합니다. 그것이 책임있는 직분자들의 자세입니다.바울 사도는 그 직분을 맡은 사람에게 요구되어지는 것은 오직 ‘충성’이라고 했습니다(고전4:1). 다른 많은 요구조건이 있을 법한데, 한 가지를 분명하게 선을 그었습니다. ‘충성’ 에는 두 가지 조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변하지 않는 신실함 그리고 다른 하나는 책임감입니다. 충성하는 직분자들은 변하지 않는 신실성이 있습니다. 충성의 기질은 뜨거움이나 열정보다는 이 변함없이 일관된 삶을 의미합니다. 자기 기분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판단하지 않으며, 오직 자기를 써 주시는 주인의 마음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책임감은 그러한 자세 가운데서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결과입니다. 맡은 일에 책임감이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책임감이 없는 사람들은 남에게 미루거나,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관심이 없습니다. 충성됨이란 성령의 열매이기도 합니다. 정말 성령의 사람은 이러한 ‘충성이 있는 사람입니다. 성령은 받았는데 이러한 충성됨이 없이 자기 기분에 따라 사는 사람은 미성숙한 사람일 뿐입니다. 새 해에 각자에게 주어진 직분이 있습니다. 주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바로 ’충성‘입니다. 그것은 열정이 아니라, 신실과 책임감입니다. [이 게시물은 아름다운교회님에 의해 2021-02-23 15:22:13 목회칼럼에서 이동 됨] [이 게시물은 아름다운교회님에 의해 2021-02-23 15:25:36 설교영상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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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Jan 07.2018 그러면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2018년의 새 해가 밝아, 첫 주일을 맞이합니다. 지난 일들은 이제 잊어버리고 새로운 날을 친구삼아 새 출발을 합니다. 다시 한 번의 기회가 우리에게 주어진 셈입니다. 정말 얼마 남지 않은 시간들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인생입니다. 축포를 터트리며 새 해를 출발하면서 우리는 ‘새 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하나님의 복을 간구하고 출발하였습니다. 송구영신 예배도 그렇고 신년 축복 특별새벽기도도 그렇습니다. 복(福)만을 추구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과동행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고 싶어서 그 소망과 간절함이 그런 삶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날들은 그리 만만한 삶이 아닐 것으로 알고 갑니다. 모든 일들이 잘되는 것을 바라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원하지 않은 상황들이 참 많이 우리 주변에 일어났습니다. 그것들은 안 일어나야 하는 ‘비극’이라고 생각하면 정말 비극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우리 인생을 든든히 주님앞에 세우고자 하는 하나님의 손길로 받아들이고 주님이 만들어주신 길을 믿음으로 흔들리지 않고 걷다가 보면 훨씬 성숙한 길로 가게 됨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어버이 날에 듣는 가슴을 울리는 시가 있습니다. 제목은 ‘엄마는.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라는 심순덕 님의 시입니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여름 뙤약볕을 머리에 인 채 호미 쥐고/온 종일 밭을 매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 고된 일 끝에/ 찬 밥 한덩이로 부뚜막에 걸터 않아/끼니를 때워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중략) 내가 엄마가 되고 엄마가 낡은 액자 속/ 사진으로만 우리 곁에 남아 있을 때/ 비로서… / 엄마는 그러면 안되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엄마는… / 엄마는… / 그러면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이 시를 읽으며 눈물을 쏟은 때가 있었습니다. 당연히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는데, 깨닫고 보니 아, 엄마는 그래도 되는 것이 아니었다는 말이 가슴이 먹먹해졌던 적이 있었습니다.우리의 신앙생활도 그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신앙생활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기도 안해도 되고, 말씀 안 읽어도 되고, 예배 생활에 좀 늦게 나가도 되고, 설교시간에 졸거나 잡담하거나, 핸펀으로 장난하거나, 밖으로 맴돌아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모두가 그렇게 하니, 신앙생활 그렇게 해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은혜받고 보니, 신앙생활 그렇게 하면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시지어 읊고 싶습니다. 남들과 같이 편안하게 살고 싶고, 남들처럼 득달하지 않고 편하게 목회하고 싶고, 놀러가고 싶은 것 마음대로 하고, 특별 새벽예배, 부흥집회, 각종 양육성경공부, 목장모임등, 성도들 귀찮게 하는 일들 하지 않아도 교회만 재미있게, 잘 운영되고 부흥한다면 다 없애면 어떨까요? 예배시간 늦는다, 찬양팀 게으르지 말라, 잔소리 안해도, 그래서 얼굴 붉히며 살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닐까요? 그냥 주일 예배에 와서 편하게 예배만 드리고 가도하는 것이 신앙생활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요? 그런데, 만약 우리의 삶의 마지막에서 주님이 ‘신앙생활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라고 한다면 아, 그땐 어떻게 할까요? 그 일을 피해야지 않겠어요? 쉽지 않은 신앙생활 다시 달려갑니다. 힘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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