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권순혁목사) 1 페이지

본문 바로가기

목회칼럼(권순혁목사)

Total 52건 1 페이지
  • 52
    아름다운교회 Nov 23.2025 하나님이 일하시고 우리가 일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우리에게 풀리지 않는 질문이 한가지 생깁니다. 하나님이 일하신다고는 하는데 그러면 나는 아무 것도 안하고 있어도 된다는 말인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여러분은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이고, 어디까지가 내가 해야 하는 일일까요?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해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대답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먼저 성경에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일하라고 가르쳤습니다. 바울이 했던 교훈은 매우 강력한 어투로 되어 있는데 “일하기 싫은 사람은 먹지도 말라”, 곧 죽으라는 말과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게으르게 행하고 도무지 일하지 않는 자들에게 수고하여 애써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고 말씀하시면서 일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과 작정대로 움직여 갑니다. 하지만 우리 편에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최선을 다해 살아감으로서 하나님의 일하심이 무엇인지 발견해 가야 하는 것이지요. 신학적으로 보더라도 “하나님 100%, 인간 100%”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이 말에서도 하나님이 일하시는 분이심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인간도 같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오해할 수 있습니다. 구원과 관련해서 그렇다면 하나님과 인간이 합력해서 구원을 만드는 것인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구원에 있어 인간의 공로가 개입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입니다. 여기에 대한 대답은 당연히 No입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되느냐에 대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100%, 인간 100%”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구원의 일은 하나님께서 시작하셨고, 하나님께서 완성하실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책임을 간과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그 은혜에 100% 반응하는 믿음을 보일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것과 우리에게 믿음 주신 것이 증명이 되기 때문입니다. 어제 제 17차 다니엘 세이레 특별새벽기도회가 은혜 중에 마쳤습니다. 하나님이 일하여 주셨음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특새는 이전보다 더욱 저와 성도님들의 마음 속에 기쁨이 넘쳤고 감사가 넘쳤던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힘이 든다는 생각이 하나도 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시간시간마다 얼마나 은혜를 부어주시던지 감격과 기쁨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시작도 마지막도 하나님이 모두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에 더 큰 기쁨이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반응으로 드리는 우리의 100% 노력과 헌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로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한마음으로 하나님을 기뻐하며 하나님을 즐거워했습니다. 우리를 택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100% 반응했기 때문에 경험할 수 있었던 기쁨과 즐거움이었다고 확신합니다. 이번 특새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에 100% 반응할 때 주시는 기쁨과 감사를 삶에서도 경험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Read More
  • 51
    아름다운교회 Nov 16.2025 자녀들과 함께 하는 특별새벽기도회
    현재 우리 교회는 특별새벽기도회를 3주동안 진행 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한주만을 남겨 둔 상황입니다. 하나님께서 놀라운 은혜를 부어주시고 우리의 마음에 기쁨과 감격을 회복시켜 주시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삶의 문제들에 해결함을 받은 분들도 계시고, 아직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까지도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분들도 계십니다. 들으시는 하나님, 응답하시는 하나님, 실행하시는 하나님을 만난 것이지요. 특별히 토요일 새벽에는 다음세대 자녀들을 앞자리에 앉게 하고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아이들이 45분 정도 되는 시간을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는다는 것이 쉽지는 않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몇몇 아이들은 왔다 갔다 하기도 하고, 옆 친구와 장난을 치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어른들의 예배에 방해를 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 하나 그것에 대해 불편해 하는 어른들이 없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대부분이 어렸을 때는 그랬습니다. 학교에서 무언가를 배우는 시간도 아닌데 무슨 말인지도 못 알아듣는 말을 하는 그 시간에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으라니요.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하면 몸이 꼬이고, 근질근질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배만 끝나면 밖에 나가서 뛰어놀기에 바빴던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부모님은 언제나 예배에 자리에 있게 하셨습니다. 자리에 앉아 예배가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앉아 있게 하셨죠. 그런데 신기하게 그때 목사님이 무슨 말씀을 전하셨는지, 그때 다같이 무슨 기도를 드렸는지 생각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을까요? 그런데 확실하게 기억나는 것이 있습니다. 옆에서 울면서 기도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기억납니다. 강단에서 간절하게 기도를 인도하시던 목사님의 모습이 기억납니다. 어떤 분은 차가운 마루 바닥에 무릎을 꿇고, 얼굴은 바닥에 대고 흐느끼며 기도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뜨겁게 울려퍼지던 찬양소리, 간절한 마음으로 드렸던 기도소리, 함께 앉아서 예배 드리던 공간에서 전해오던 따뜻하고 훈훈하고 감격적인 어떤 느낌들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예배시간에 임하신 성령님의 임재의 경험들이었을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아 들을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그것이 아니더라도 함께 모일 때 나도 거기에 있겠다고 약속해 주신 하나님의 임재를 그 자리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체험했던 것입니다. 특별히 미국에서 자라나고 있는 우리 다음세대 자녀들은 언어적으로도 통하지 않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제가 전하는 메시지를 아이들이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요? 안 그래도 어려운 어른의 말을 한국어로 들어야 하니 아마도 더 이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어로 전달되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성도들이 함께 모여 있는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성령의 임재를 함께 느낄 수 있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자녀들이 꿈을 꾸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비전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녀들을 예배의 자리에 있게 하는 것, 그것은 부모의 사명입니다.
    Read More
  • 50
    아름다운교회 Nov 09.2025 회복과 부흥은 참된 회개로부터
    평양대부흥은 한국 기독교인이라면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중요한 사건입니다. 1907년 평양에서 시작된 부흥의 불길이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져 나가 한국교회가 세워지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의 이러한 중요한 위치 때문에 평양대부흥이라는 이름은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평양대부흥 이전에 있었던 원산부흥운동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1903년, 감리교 선교사로 한국에 와 있던 하디 선교사는 자신의 노력과 열심히 선교를 했지만 뚜렷한 열매를 맺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어느 날 하디 선교사가 자신의 선교 사역에 대해 하나님께 기도하던 중 자신이 성령의 인도와 능력을 따르지 않았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하여 선교의 실패에 대한 원인이 자신의 교만과 실수에 있음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특히 한국인을 무시하고 인종차별을 했던 자신의 죄에 대해 깊은 회개를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만 회개하는 것으로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디 선교사는 원산의 한 부흥회에서 모든 성도들 앞에서 자신의 죄를 눈물로 고백했습니다. 자신의 능력을 의지한 죄, 선교지의 사람들을 무시하고 깔보았던 죄 등을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자백한 것이죠. 그의 공개적인 자백은 동료 선교사들과 한국 교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그곳에 있던 성도들 모두가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집단적인 회개 운동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입술로 자신들의 죄를 고백한 성도들은 단순한 고백을 넘어 훔친 물건을 돌려주는 등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졌고, 깨끗하고 정직한 사회적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디 선교사 한사람의 회개는 한국교회의 영적 대각성 운동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고, 평양대부흥이라는 거대한 부흥의 불길을 타오르게 함으로써 한국 교회의 부흥과 사회 개혁의 중요한 동력이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회복과 부흥이 한 사람의 참된 회개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의 교훈입니다. 지난 한주, 특별새벽기도회를 인도해 오면서 하나님께서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저를 이끌어 주시는 것을 느꼈습니다. 원래 계획하고 생각하고 준비했던 방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앞에 먼저 무릎을 꿇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참된 회개를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셨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함께 모였던 성도님들까지도 하나님 앞에 다시 서서 회개하는 시간으로 우리 모두를 이끌어 주셨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 한번 더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공동체, 너무나 사랑해서 목숨을 내놓아서라도 지켜가고 싶은 공동체, 그러다가 너무 사랑해서 실망도 함께 하게 만드는 공동체에 큰 회복과 부흥의 역사를 일으키시려려고 우리로 회개하게 하시는 모양입니다. 가정이 살고, 교회가 살고, 지역이 살고, 나라가 살려면 회개의 자리에서 눈물을 쏟으며 기도하는 한사람이 있으면 됩니다. 참된 회개가 회복과 부흥의 시작점이기 때문입니다. 계속하여 진행되는 특새를 통해 회복과 부흥의 역사를 맛보고 기대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Read More
  • 49
    아름다운교회 Nov 02.2025 함께 기도합시다
    우리가 사노라면 크고 작은 문제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나 하는 일들이 자주자주 찾아오곤 하죠. 이제 이정도면 됐겠지 생각하는 그 순간 다시 찾아오는 문제 앞에서 지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참 감사하게 생각이 되는 것은 우리에게는 고난을 해석할 수 있는 힘과 지혜를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것입니다. 만약 계속해서 고난이 찾아오는데 그것을 해석하거나 이해할 수 없다면 그것은 고난보다 더 우리를 힘들게 할 것입니다. 고난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종교가 생겨나는 이유도 고난 때문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이 고난을 어떻게 해서든 이해해 보고자 종교를 의지하는 것이지요. 불교에서는 고난을 통해 해탈에 이를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고난을 연속적으로 경험하고 그것을 잘 이겨나가다 보면 신과 같은 경지에 오를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이지요. 불교에서 가르치는 고난의 목적은 결국 자기 만족과 자기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슬람은 이것보다 좀 더 과격하게 고난의 문제를 다룹니다. 고난은 선과 악의 싸움인데 악이 선을 정복하기 위해 고난을 준다는 것이지요. 그들은 자신들을 선으로 규정해 놓고 고난을 주는 악과 전쟁을 불사하거나 스스로 전사가 되어 순교하는 것으로 고난을 이기려 합니다. 이것 또한 결국 고난의 목적이 자기 만족이고, 자기들만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것입니다. 왜 고난에 대해 이런 해석이 가능해 지는 것일까요? 그것은 죄로 인해 생겨난 나라는 존재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죄를 벗어나지 못하면 모든 중심이 나를 향합니다. 고난을 이겨나가는 목적이 결국 내가 이루고자 하는 바를 이루기 위함인 것이죠. 이런 종교들과 비교하여 기독교는 고난에 대한 전혀 다른 시각을 가집니다. 하나님께서 고난을 허락하셨음을 먼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셨다는 것은 고난에 어떤 목적을 가지고 계시다는 말이겠죠. 그것은 고난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함이며, 자신에게 더욱 가까이 나오게 하기 위함입니다. 고난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욥입니다. 욥은 잘못이 없는데도 고난을 당합니다. 욥기 전체를 읽을 때 그것을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욥기 전체가 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과 더욱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오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문제가 해결되고 안 되고를 떠나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것, 그 자체가 복이기 때문입니다. 다윗도 이 고난의 신비를 알기에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 내게 복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여러분의 삶에 고난이 있고, 문제가 있으십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가까이 나오라고 주시는 신호입니다. 이번 특별새벽기도회에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그 문제를 안고 나와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로 하나님을 만나면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문제가 해결되게 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 놀라운 평안을 선물로 주십니다. 우리 함께 기도합시다!
    Read More
  • 48
    아름다운교회 Oct 26.2025 보답하며 사는 인생
    지난 한주 동안도 한번쯤은 마켓에 가서 물건을 산 경험이 있으실 것입니다. 물건을 살 때 어떻게 하나요? 가장 먼저 물건에 매겨진 가격표를 봅니다. 그리고 그 물건을 사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그것을 계산대로 가져가 그 물건에 매겨진 가격만큼을 지불하고 그것을 집으로 가져오게 됩니다. 그래서 물건을 산다고 표현은 하지만 사실은 교환을 한 것입니다. 내가 가진 것과 그 물건의 가치만큼을 서로 맞바꾼 것이지요.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사를 위해 일한 만큼의 노동의 가치를 회사는 돈이라는 것으로 교환을 해 준 것입니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예로부터 지금까지 교환이라는 시스템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관계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아무 댓가 없이 준다고 하지만 그래도 무언가가 다시 돌아오는 것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무언가를 주었을 때 다시 돌아와야 둘 사이의 관계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친구 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만나면 항상 한쪽이 돈을 냈습니다. 그래도 친구 관계이니 한쪽에서 계속 돈을 내면서 만남은 유지해 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항상 돈을 내던 친구가 속으로 생각하기를 왜 나만 돈을 내야 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짜증이 나더랍니다. 그래서 그 친구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너도 돈 좀 내라고.. 아무리 좋은 마음으로 준다고 하지만 돌아오는 것도 있어야 관계가 유지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시킬 수 있을까요? 여기서 우리는 그 원리를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서로 주고 받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관계를 유지하는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미 모든 것을 다 주셨다고 이야기합니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주시어 우리에게 구원이라는 선물을 주신 것은 전부를 주신 것이나 다름 없기 때문입니다. 그 이상 뭐가 우리에게 필요하겠습니까? 영원이라는 가치보다 더 좋은 가치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돌려드려야 할 것만 남았습니다. 받은 것만큼 또는 그 이상을 돌려드려야 그 관계가 지속이 될 수 있는 법이기에 우리는 드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드려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받은 그 이상을 아니 받은 만큼이라도 돌려드릴 수 있을까요? 그런 점에서 평생 갚아도 갚을 수 없는 빚진 자가 되었다는 사도 바울의 고백이 진실한 고백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도 사실 우리가 무엇을 더 드린다고 하나님이 하나님의 일을 더 잘하게 되시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보답하고 갚으시기를 원하는 것은 우리와 좋은 관계를 맺고 싶으셔서입니다. 사이 좋게 지내고 싶어서입니다. 하나님과 사이좋게 지내면 그걸 하나님이 가장 좋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도 가장 큰 유익을 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들에 대해 보답하는 마음으로 무엇이라도 드릴 수 있는 우리의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Read More
  • 47
    아름다운교회 Oct 26.2025 다니엘 세 이레 특별 새벽기도회를 준비하면서
    새벽기도회라는 말을 들으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목사가 된 이후로부터 새벽기도회가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다보니 성도님들이 새벽기도회라는 말을 들었을 때 드는 생각과 느낌에 대해 조금은 무감각해져 버리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새벽기도회, 가깝고도 먼 당신이라고 해야 할까요? 너무 좋은 것이지만 야행성인 나에게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드실까요? 정말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서 제 나름대로 이런저런 추측을 해 보았습니다. 2년 전 아름다운교회에 부임하고 여러 경험들을 했지만 그 중에서 평생 잊지 못할 경험 중 하나는 아마도 아내와 단 둘이 새벽기도회를 드렸던 날일 것입니다. 기분이 묘했습니다. 설교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깐 망설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준비해 온 것이 아까워서 아내를 혼자 앉혀 두고 설교를 평소처럼 했습니다. 제 기억에 더 힘을 주어 설교를 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데 그날은 힘이 좀 빠졌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도 참 감사한 것은 이것이 저에게 있어 처음 있는 경험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사역을 할 때 저는 매주 한번씩 밤 12시에 있는 기도회를 인도했습니다. 서울에 고시촌이 있는 동네에 있던 교회여서 고시를 앞둔 부모님들을 위해 매일 밤 9시와 12시에 기도회가 있었는데 상대적으로 나이가 어린 목사였던 저는 12시 기도회를 인도해야만 했습니다. 고시촌에 사람이 북적일 때는 12시 기도회도 사람들이 많이 나왔었다고 저는 이야기만 들었습니다. 제가 인도할 때는 여러 이유로 고시촌에서 사람들이 많이 떠나서 밤 12시 기도회에는 사람들이 많이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대부분의 날들을 한 두명을 앉혀 놓고 기도회 인도를 해야 할 때가 많았습니다. 한 두명이라 할지라도 설교를 대충 준비하는 것이 제 스타일에 맞지 않았기 때문에 매번 열심히 설교를 준비해 갔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주여 삼창을 외치고 기도회를 인도했습니다. 그때 참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저 분은 얼마나 간절하면 밤 12시에 저기 나와서 앉아 계실까? 얼마나 기도하고 싶으셨으면 여기에 오셨을까? 아직도 저는 여기에 대한 답을 모릅니다. 무엇이 그분을 그곳에 있게 만들었는지 이야기 한번 나눠보지 못했기 때문이죠. 저는 그 이유를 모르지만 하나님은 아실 겁니다. 하나님이 그분에게 기도할 마음을 주셨고 그 밤 중에 그곳에 나올 수 있도록 인도하셨을 테니까요. 이번 특새를 놓고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그때의 일을 기억나게 하셨습니다. 아내와 단 둘이 앉아서 새벽기도회를 드리던 때, 이름 모를 성도님을 한 분 앉혀 놓고 밤 12시에 통성으로 기도드리던 때 말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들에게 기도할 마음을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우리의 영혼을 갈급하게 하셔서 생수의 강이 흐르는 곳으로 강권적으로 인도해 주실 것이라 확신합니다. 저는 단 한분이 이곳에 앉아 있더라도 말씀을 전하고 그분과 간절히 기도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Read More
  • 46
    아름다운교회 Oct 12.2025 로마서 강해를 마치며
    9월 첫날부터 시작하여 어제까지 새벽마다 로마서 말씀을 강해했습니다. 로마서를 통해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깨닫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중에서도 바울이 전해주는 복음의 메시지가 강력하게 다가왔고, 그 복음에 의해 세워진 교회 공동체를 향한 바울의 마음이 얼마나 간절하고 애틋한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로마서 16장은 사실 그전에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해 보지 못했었는데 이번에는 특별한 의미로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로마서 16장은 긴 문안 인사로 구성되어 있는데 바울은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복음 사역에 뜻을 함께 해 준 동역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거론하고 있습니다. 그 중 가장 먼저 언급하고 있는 인물이 뵈뵈라는 여인이었습니다. 겐그리아(고린도 동쪽 항구 도시) 출신의 이 여성은 왕족과 귀족은 아니었지만 경제적 여유를 가진 중산층의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뵈뵈는 가난하고 소외되고 사회적인 약자들을 보호해 주고 물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역할을 감당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뵈뵈를 교회의 일꾼이자 여러 사람과 자신의 보호자였다고 소개했습니다. 그 외에도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는 로마에 살다가 AD 49년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칙령으로 추방 당해 쫓겨난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고린도로 쫓겨나 살면서 바울을 만나게 되었는데 얼마나 복음에 사로잡혀 있었는지 바울을 위해 목이라도 내어줄 정도였다고 합니다. 나중에 고린도를 떠나 에베소에서 함께 사역한 것을 보아 얼마나 이 부부가 바울과 함께 복음에 헌신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로마서 16장에 계속해서 나오는 이름들은 매우 다양한 계층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이름이었고, 그 중에는 종의 신분을 가진 자들과 노예 출신인 사람들에서부터 공적으로 인정받는 사람까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바울하면 혼자 모든 일을 척척 해 내는 능력자였다고 생각했습니다. 홀로 고분분투하며 그 험난한 길을 개척자의 정신으로 이겨나간 불굴의 의지의 아이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저의 엄청난 착각이었습니다. 바울이야말로 함께 하는 것을 추구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복음의 사역을 위해 하나님께서 성도 한사람 한사람을 동역자로 불러주신 것에 대한 확신이 바울의 마음 속에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의 동역자로, 어떤 사람은 물질의 동역자로, 어떤 사람은 섬김의 동역자로, 어떤 사람은 봉사의 동역자로, 그렇게 바울과 함께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했던 것이죠.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먼저 바울의 마음 속에 복음을 위한 동역자 정신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동시에 함께 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도 바울이 하고 있던 복음을 위한 일에 마음을 모아 주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아름다운 동역이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서로가 서로의 일들에 대해 존중하고 격려하며 함께 세워가는 그런 공동체, 바울이 꿈꾸었고, 우리 주님이 꿈꾸셨던 그런 복음의 공동체,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Read More
  • 45
    아름다운교회 Oct 05.2025 연료가 없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최근에 교회 근처에 코스트코가 새롭게 입점하였습니다. 저는 그곳 주유소를 자주 이용하고 있는데요, 최근에 그곳에 방문했다가 경험했던 일을 나누고 싶습니다. 제가 주유를 하기 위해 차를 세웠는데 바로 옆 라인에 어떤 남자 분께서 무언가를 사진으로 찍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뭘 그렇게 찍나 봤더니 글쎄 최고급 파란색 스포츠카가 한 대 그곳에 서 있었습니다. 브랜드 이름을 이야기하면 여러분들 모두가 아실만한 아주 납작한 차가 제 눈 앞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 차의 가격이 얼마인지는 잘 모르지만 아마도 저는 평생에 한번도 살 수 없을 어마어마한 가격인 것만큼은 틀림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 비싼 차를 바로 앞에서 볼 수 있었다는 놀라움과 더불어 저를 또 한번 놀라게 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가 사용한 주유기와 똑같은 것을 그 차 옆에 끼우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개스 종류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 차는 가장 좋은 질의 개스를 넣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차도 똑같은 개스를 넣는 모습을 보면서 한가지 생각이 제 머리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아.. 저렇게 비싼 차도 개스가 없으면 한발짝도 나아갈 수 없구나.’ 저 정도 되는 차가 그 차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개스를 넣는 것도 아니고, 제가 넣는 것과 똑같은 개스를 넣다니! 차가 가진 성능이나 가격, 그리고 모양, 디자인, 그것이 다 다르고 우리 눈에는 모든 면에 좀 더 나은 것을 가지고 있어 보인다 하여도 차는 차인 것입니다. 개스가 없으면 한발짝도 나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연료가 필요합니다. 연료 없이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지금 아무리 잘 나가는 인생이라 할지라도 연료 탱크가 비워져 있는데 연료를 당장 채우지 않는다면 조금 있다가 멈춰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반면에 지금은 좀 모자라고 부족한 것 같아 보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연료 탱크에 연료가 가득하다면 그 사람은 힘있게 계속 달려나갈 수 있겠죠. 그렇다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연료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성령의 기름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힘든 순간들이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멈춰서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냥 주저 앉아 일어설 수조차 없는 때도 있습니다. 그때가 바로 연료가 필요한 때입니다. 어느 누구도 연료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날마다 연료가 충만하게 채워져 있는가입니다. 다시 말해 성령의 기름이 날마다 나에게 충만하게 부어지고 있는가, 성령이 주시는 놀라운 은혜의 감격이 내 안에 넘치고 있는가, 성령이 내 삶을 역동적으로 변화시켜 가고 있는가, 이런 일들이 성령님을 통해 우리 안에 일어나야 우리는 다시 일어서 전진할 수 있습니다. 연료 없이는 제 아무리 비싼 차라도 한발짝도 앞으로 갈 수 없는 것처럼 우리가 그런 존재임을 인식하고 날마다 성령의 기름을 마음과 영혼에 채워서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하루하루 전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ad More
  • 44
    아름다운교회 Sep 28.2025 전도의 문을 열어 주옵소서
    LA에서 부목사로 사역할 때 여러 마켓에 노방전도를 나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마켓에 온 사람들에게 교회는 다니시는지, 예수님을 믿으시는지 물어보면서 교회에서 준비한 전도지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러면 각양각색의 반응들을 보이십니다. 정말 감사하다고 이야기 해 주시는 분이 있는가 하면 나 이런 거 필요 없다고 하고 쌩하니 지나가시는 분도 있습니다. 이런 여러 반응들을 대하면서 전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경험했던 적이 있습니다. 특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인상을 쓰면서 지나가시는 분들을 대하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전도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우리는 전도라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전도는 주님의 명령이고 구원을 얻게 하시기 위한 중요한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고전 1:21)라고 말씀하십니다.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서 꽤나 지혜있다고 하는 헬라인들을 향하여 이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사용된 ‘전도’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케루그마’입니다. 이 단어는 가르침, 선언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해 사람들에게 선언하고 가르치는 것이 전도라는 것입니다. 헬라인들은 자신들의 지혜로 구원에 이르려 했지만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이십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시기 위해 이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달려 돌아가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죄가 없으시기에 그분의 죽음은 구약에서 말씀해 주신대로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으셨습니다. 또한 그분은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사 지금은 하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시는 분이십니다. 장차 예수님은 다시 이땅에 내려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 심판 날에 믿는 자들은 천국으로, 믿지 않는 자들은 지옥으로 보내지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전도할 때 선포해야 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선포하고 가르치고 전하는 이 일을 아무나에게나 할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가 무작정 찾아가서 전도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마음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전도의 문을 열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 일 때문에 매임을 당하였노라” (골 4:3) 바울 조차도 전도의 문을 열어주시지 않아 매임을 당했다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서 문을 열어주셔야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선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도라는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주변 이웃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가기 전에 꼭 전도의 문을 열어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Read More
  • 43
    아름다운교회 Sep 21.2025 우리를 교회로 부르신 하나님
    하나님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창 1:1). 마지막 날에는 인간을 만드시고 인간으로 하여금 세상을 다스리고 정복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명을 받은 인간이 하나님이 먹는 것을 금지하신 나무의 열매를 먹게 되고 그로 인해 이땅에 죄가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인간도, 온 세계 피조물도 함께 죄의 결과가 가져다 주는 아픔과 고통을 느껴야만 했습니다 (롬 8:22~23).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것에 대한 결과이기도 했습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은 이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지 않는 한 절망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지요. 하나님은 사실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인간이 죄를 짓게 될 것도, 그로 인해 피조물이 고통하게 될 것도 알고 계셨죠. 그렇다면 아예 죄를 짓지 않게 막으셨으면 되지 않겠냐고 물으실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물론 그러실 수 있으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 속에서 인간의 실수와 범죄함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전혀 지장을 주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도리어 절망스러움을 통해 구원의 손길을 더욱 바라보게 하셨고,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연약함을 통해 그리스도를 통해 주시는 은혜가 더욱 풍성하게 만드시는 일을 행하셨습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치게 하시길 원하셨던 것입니다 (롬 5:20). 하나님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은혜의 새 시대를 여셨습니다.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가 인간과 피조물을 탄식하게 만들었다면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흘리신 피로 인해 얻게 되는 구원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수 있게 만드신 것입니다. 그로 인해 인간과 온 세계 피조물은 진정한 평화를 맛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엡 2:14~18).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과 화목을 이룬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를 하나님은 교회라고 부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바로 저와 여러분이 교회인 것입니다. 교회는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성경 전체를 놓고 볼 때 교회는 개인이 아닌 공동체적 개념으로 더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구약에서는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부르셔서 그들을 광야에서 먹이시고 인도하심으로 하나님께서 교회를 어떻게 세워나가시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신약에 와서는 베드로에게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마 16:18) 하시면서 예수 그리스도 위에 교회가 세워질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고백하는 성도들이 함께 모여 교회를 이루게 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가 공동체로 있기를 원하시는 이유는 함께 자라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기 때문”인 것입니다 (엡 2:21~22). 교회의 이러한 공동체성을 우리가 이해하고 받아들임으로써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함께 자라나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엡 4:13~16).
    Read More
  • 42
    아름다운교회 Sep 14.2025 의심의 눈초리보다 더 이해하려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옛날부터 중국에서는 “의심은 마귀를 낳는다”는 말이 있었다고 합니다. 옛날 중국에서 어떤 사람이 소중하게 간직하던 도끼를 잃어버렸습니다. 아끼던 도끼를 잃은 사람은 누군가가 훔쳐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바로 이웃집의 어린아이가 아닌가 하고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가 자기와 마주치게 되었을 때 그 아이의 거동도 그렇고, 안색도 그렇고, 말하는 것도 예사롭지 않은데다가 얼른 자기를 피해서 가버리는 것이 모두 이상스러웠습니다. 도끼 임자는 도끼는 틀림없이 그놈이 훔쳐간 것으로 더욱 믿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고서 잠시 후에 잃어버린 줄만 알았던 도끼를 자기 집 마루 밑에 두었던 생각이 되살아나서 찾아보니 과연 그대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공연히 남을 의심했다고 후회하고 있는데, 그 어린애가 가까이 왔습니다. 이번에는 그 어린애의 거동은 조금도 의심스러운 데가 없었습니다. 도끼 주인은 크게 깨달았습니다. “남을 의심하면 그 선입견으로 모든 것을 그 의심에 맞게 생각하므로 더욱 의심스러워 보이고 그와 반대로 남을 좋게 보면 무슨 일이라도 모두 좋게만 보인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지요. 이렇게 생각한 도끼 주인은 공연히 어린애를 의심한 것이 부끄러웠다고 합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일들이 종종 일어납니다. “확증편향”이라는 말이 바로 그것을 설명합니다. 이 말은 자신의 기존 신념이나 가치관에 부합하는 정보에만 주목하고, 그와 반대되는 정보는 무시하거나 최소화하려는 심리 현상을 뜻합니다. 내 생각에 모든 것을 끼워 맞추고 그것이 무조건 옳다라고 여기는 것, 그것이 확증편향인 것이지요. 이러한 확증편향은 우리의 인간관계를 악화시키고 무너뜨립니다. 다른 사람은 전혀 그런 의도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내 마음 속에서 만들어 낸 것들이 마치 진리인 것처럼 내 안에서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더 많은 대화를 시도하면서 상대방을 더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얼마나 잘못된 생각으로 누군가를 잘못 판단하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더 나은 관계로 발전해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Since ancient times, there has been a Chinese saying: “Suspicion begets evil.” Long ago, a man lost a cherished axe. Convinced it had been stolen, he immediately suspected the young child next door. Every glance, every movement, every word the child uttered seemed to confirm his suspicion. But soon, he remembered the axe was actually under the floor of his own house. Feeling ashamed for having doubted the child, he noticed the child approaching again—and this time, there was nothing suspicious at all. The man realized a profound truth: “When we suspect others, we interpret everything through the lens of suspicion, making everything appear doubtful. Conversely, if we view others positively, everything seems good as well.” This story illustrates a timeless human tendency known as confirmation bias: the tendency to notice and favor information that aligns with our existing beliefs while ignoring or dismissing what contradicts them. When we let our assumptions dictate our perceptions, we risk misjudging others—and even damaging relationships—based on illusions in our own minds. The antidote is simple but challenging: seek out conversations with those who think differently, and make a conscious effort to understand them. By doing so, we uncover how often our judgments are flawed—and, in turn, we cultivate stronger, more genuine relationships.
    Read More
  • 41
    아름다운교회 Aug 17.2025 숨겨져 있는 모습이 진짜 모습입니다
    교육학에서 숨은 교육과정(Hidden Curriculum)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숨은 교육은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명시된 교육과정 외에 학생들이 배우게 되는 것으로 표현되지 않은 비공식적인 수업, 가치관, 그리고 사회 규범을 의미합니다. 이는 상호작용, 교실 분위기, 학교 문화 등을 통해 전달되는 암묵적인 메시지를 포함하죠. 이러한 글로 쓰이지 않은 규칙과 기대는 학생들의 경험, 성공, 나아가 사회 구조에 대한 이해에까지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어쩌면 학생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교육은 숨은 교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시간을 지키는 것에 대한 수업을 하려고 하는데 그 선생님이 수업 시간을 지키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까요? 선생님이 윗사람 말을 잘 따르고 규칙을 잘 지켜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려고 하는데 그 선생님이 자신의 상관의 말에 반항을 하는 모습을 아이들이 본다면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까요? 친구가 힘들어 할 때 도와주어야 하는 것을 가르쳐야 하는 선생님이 옆에 있는 동료 선생님이 도움이 필요할 때 모르는 척 하고 지나간다면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까요? 아마 선생님이 가르친 것보다 선생님이 보여주신 것을 배울 것입니다. 이것이 계속 반복된다면 머리로는 알지만 그렇게 굳이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배울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이중적인 아이로 자라게 될 것입니다. 신앙도 그렇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녀들이 부모의 신앙에서 무엇을 배울까요? 우리는 자녀들에게 부모의 신앙이 잘 계승되기를 바라지만 자녀들은 우리의 숨겨진 모습에서 신앙을 배우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야 한다고 자녀들에게 가르치지만 정작 부모는 문제상황을 만날 때 하나님을 찾거나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문제들을 해결해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아이는 부모의 그 모습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자녀들은 우리의 신앙의 순수성을 지켜나갈 수 있게 만드는 하나님이 보내신 선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가르치려고 하는 것들이 진짜인지 아닌지를 돌아볼 수 있도록 만들기 때문이죠. 저는 자주 숨은 교육과정에 대해 생각해 보곤 합니다. 무엇인가를 가르치기 이전에 나는 정말 그렇게 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는 것이죠. 만약 제가 하지도 않는 것을 가르치려 하거나 누군가에게 요구한다면 그것은 제 자신을 속이는 것일 뿐만 아니라 가르침을 받는 자를 이중적인 사람으로 만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기보다 늘 자신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자신의 중심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이 정말 말씀대로 살아가고 있는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점검하고 점검하고 또 점검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중심에 하나님이 없고, 삶 속에 하나님이 없고, 신앙생활 속에 하나님이 없다면 그것을 아무리 숨기려 해도 숨길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속에 계시다면 우리는 분명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숨겨진 그 진짜를 볼 것입니다.
    Read More
  • 40
    아름다운교회 Aug 10.2025 왜 공동체인가?
    우리는 태어나면서 자동으로 가족 공동체에 소속이 됩니다. 그 안에서 아빠, 엄마, 형제, 자매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다 유치원을 가기 시작하면서부터 또 다른 공동체에 소속이 됩니다. 친구, 선생님과 관계를 맺으며 새로운 지평을 열어갑니다. 더 자라나 사회에 발을 내딛게 되면서 관계의 유형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됩니다. 더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우리의 사회적 영역은 더욱 확장되어 갑니다. 이렇게 수많은 공동체를 거치면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우리가 속해 있던 곳에서 만났던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나와 똑같은 사람은 아마도 한사람도 없었을 것입니다. 생김새가 다르고, 생각하는 것이 다르고, 심지어 갈등을 조정해 가는 방식조차도 달랐을 것입니다. 결혼할 때는 자신과 비슷한 점이 많아서 결혼을 결심했다고 하는 부부도 결국에는 나와 다른 것이 한 구석도 없다고 고백하는 부부를 많이 만나 보았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수도 없이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고 상대해 왔습니다. 지금도 그런 사람을 만나고 있고, 앞으로도 더 많이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의 의미를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두 개의 큰 공동체를 우리에게 허락해 주셨습니다. 가정과 교회입니다. 가정과 교회에 소속되어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가정과 교회 공동체를 통해 하고 싶은 것이 있으십니다. 그것은 바로 성장입니다. 먼저 말씀드리지만 행복이 아닙니다. 성장입니다. 그리고 성장은 언제 일어나느냐? 나와 다른 사람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성장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완벽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는 것이 완벽하지 않습니다. 살아가는 방식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저 내 생각과 라이프 스타일은 70억(세계인구)개 중에 하나일 뿐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면서 다른 것을 배웁니다. 꼭 이렇게 살지 않아도 인생을 사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넓어지고 자라나고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럴려면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싫든 좋든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고, 그 사람을 통해 배울 수 있고, 성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즘 안타깝게도 공동체에 소속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나한테 맞는 공동체를 찾아다니려고 합니다. 안타깝지만 나한테 맞는 공동체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런 공동체가 있다 할지라도 그곳에서 성장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비록 나에게 힘들고 어려운 일이 되더라도 성장에 목적을 두고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다면 우리는 더 아름답고 멋진 인생의 남은 날들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행복이 아닌 성장을 추구하며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어야 합니다.
    Read More
  • 39
    아름다운교회 Aug 03.2025 수요영성예배에 한번 나와보세요
    우리 교회 수요저녁예배를 처음 참석했을 때 너무나 생소한 방식이라 조금은 어색했습니다. 신앙서적을 읽어오고 그것을 토대로 설교시간에 은혜를 함께 나누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배에 참석하면 할수록 어색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이런 방식이 주는 영적 유익이 너무나도 많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앞서간 신앙의 선배들이 남긴 영적 깨달음, 말씀에서 발견되는 깊은 은혜들을 책에서 대할 때면 너무 깊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설교자는 설교를 전할 때 그 설교에 자신도 은혜를 받아야 한다고 이야기들을 합니다. 전하는 이나 듣는 이가 모두 설교를 들어야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자신이 준비한 설교를 전하면서 은혜를 받는다는 것이 솔직히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을 고백합니다. 우리도 말할 때 나는 예외인 것처럼 말을 하게 될 때가 있지 않습니까? 물론 그러면 안되겠지만 그렇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수요일마다 책을 정하여 그 속에 담긴 비밀들을 캐내고 그것을 전할 때 저도 제 3자가 되어서 설교를 듣게 됩니다. 전하는 자와 듣는 자가 모두 설교를 듣게 되는 것이지요. 벌써 제가 오고 난 이후에도 참 많은 책들을 다루었습니다. David Platt 목사님의 “물러서지 마”, 조정민 목사님의 “왜 예수인가?”, 박영선 목사님의 “하나님의 열심”, 본 훼퍼 목사님의 “나를 따르라”, 유진 피터슨 목사님의 “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이 책들 하나하나가 참 많은 영감을 주었고, 삶에 지혜를 주었고,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더욱 깊이 있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부터는 팀 켈러 목사님의 “내가 만든 신”이라는 책을 가지고 은혜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주에 서론을 시작으로 약 8주 정도 이 책을 통해 은혜를 받을 예정인데요, 저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제가 이렇게도 많은 우상을 섬기고 살았는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우상하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세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이나 성경에 나오는 신상들, 그리고 다른 나라 사람들이 집에 모셔 놓고 있는 금으로 만든 어떤 형상들이 우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세요? 그러다보니 우상숭배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와는 먼 이야기인 것처럼 들을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등장하는 아브라함과 평생 소원, 야곱과 사랑, 삭개오와 돈, 나아만과 성취(성공), 느부갓네살과 권력, 요나를 통한 문화와 종교의 가짜 신, 이 모든 것이 우리가 현재 섬기고 있는 우상이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한 우리는 끊임없이 우상을 숭배하면서도 전혀 문제없는 것처럼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상숭배의 결과는 개인적으로, 공동체적으로 심각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여기저기 문제가 생기는 것이지요.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가지입니다. 하나님 자리에 하나님을 다시 모셔야 합니다. 그런데 내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는 마음을 주시도록 간구해야 합니다. 수요일 저녁이 그런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한번 나와 보시기 바랍니다. 회복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Read More
  • 38
    아름다운교회 Jul 27.2025 내려놓는다는 것
    예전에 최하진 선교사님이라는 분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이분은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연구교수로 안정된 삶을 살아가던 카이스트 출신의 화학공학 박사님이십니다. 그런데 30세 초반의 젊은 나이에 하나님께서 이분을 부르셨습니다. 가장 소중한 나이에 나를 위해서 일해줄 수는 없겠느냐는 부르심이었습니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부르심이었지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로 결심을 하고 그 좋은 세상 직장, 명예를 모두 털어버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청소년들을 구원하기 위해 중국으로 떠나게 되었죠. 하나님이 부르셨던 그 때의 일을 생각하면서 말씀하시기를 자신이 쌓아온 것들을 내려 놓는다는 것이 뼈를 깎는 고통이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내려놓음, 내려놓음, 이렇게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그것을 자신이 실제로 하려고 해보니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었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30살의 젊은 나이에 미국 스탠퍼드 대학 교수가 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입니까? 그러니 그것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엄청난 고통을 수반하는 일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분께서 하시는 말씀이 그때 당시 한창 유행하던 말이 내려놓음이었는데 자기는 내려놓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주 바닥에 내던져 놓고 발로 그냥 짓눌러서 아예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만들었다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는 성격상 내려놓으면 얼른 다시 주어 담을 것 같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완전히 산산조각을 내 버렸다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최하진 선교사님은 그렇게 ‘Dawn Mission 선교회’를 설립하고, 중국 열방학교를 세웠지만 공식적인 직책도 없이 학교의 청소부 겸 수위 아저씨로 가장 낮은 자리에서 학생들을 지금도 섬기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내려놓는다 내려놓는다 하면서 실제로 그렇게 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내려놓음을 잠시는 실천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주어담을 때도 있습니다. 내려놓는다는 것은 감상적인 말이 아니라 실제입니다. 그래서 내려놓으려면 엄청난 고통과 희생과 아픔을 감내해야만 합니다. 그렇기에 내려놓으려고 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본전 생각이 나기 때문이겠죠. 그러면 어떻게 해야 내려놓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더욱 확고한 신뢰와 믿음이 있어야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삶을 책임져 주실 것이라는 믿음과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시라는 확고한 신뢰가 있을 때 우리는 그제서야 손에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내려놓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땅에 발을 디디고 살아가지만 이땅에 매여 살아가는 인생이 아니라 자유함에 이르는 길을 따라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지난 주 원로목사님께서 한국 농촌선교를 떠나시면서 내려놓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직접 체험하셨다는 말씀을 해 주고 가셨습니다. 친척, 본토, 아비 집을 떠났던 아브라함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겠노라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내려 놓을 때, 아니 다시 주어담을 수도 없게 산산히 조각낼 때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그제서야 경험하고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자유로 우리 모두를 초대하십니다.
    Read More

검색


© Areumdawoon Church ALL RIGHT RESERVED. Powered by CROWN MINIST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