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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권순혁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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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Oct 12.2025 로마서 강해를 마치며
    9월 첫날부터 시작하여 어제까지 새벽마다 로마서 말씀을 강해했습니다. 로마서를 통해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깨닫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중에서도 바울이 전해주는 복음의 메시지가 강력하게 다가왔고, 그 복음에 의해 세워진 교회 공동체를 향한 바울의 마음이 얼마나 간절하고 애틋한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로마서 16장은 사실 그전에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해 보지 못했었는데 이번에는 특별한 의미로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로마서 16장은 긴 문안 인사로 구성되어 있는데 바울은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복음 사역에 뜻을 함께 해 준 동역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거론하고 있습니다. 그 중 가장 먼저 언급하고 있는 인물이 뵈뵈라는 여인이었습니다. 겐그리아(고린도 동쪽 항구 도시) 출신의 이 여성은 왕족과 귀족은 아니었지만 경제적 여유를 가진 중산층의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뵈뵈는 가난하고 소외되고 사회적인 약자들을 보호해 주고 물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역할을 감당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뵈뵈를 교회의 일꾼이자 여러 사람과 자신의 보호자였다고 소개했습니다. 그 외에도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는 로마에 살다가 AD 49년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칙령으로 추방 당해 쫓겨난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고린도로 쫓겨나 살면서 바울을 만나게 되었는데 얼마나 복음에 사로잡혀 있었는지 바울을 위해 목이라도 내어줄 정도였다고 합니다. 나중에 고린도를 떠나 에베소에서 함께 사역한 것을 보아 얼마나 이 부부가 바울과 함께 복음에 헌신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로마서 16장에 계속해서 나오는 이름들은 매우 다양한 계층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이름이었고, 그 중에는 종의 신분을 가진 자들과 노예 출신인 사람들에서부터 공적으로 인정받는 사람까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바울하면 혼자 모든 일을 척척 해 내는 능력자였다고 생각했습니다. 홀로 고분분투하며 그 험난한 길을 개척자의 정신으로 이겨나간 불굴의 의지의 아이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저의 엄청난 착각이었습니다. 바울이야말로 함께 하는 것을 추구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복음의 사역을 위해 하나님께서 성도 한사람 한사람을 동역자로 불러주신 것에 대한 확신이 바울의 마음 속에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의 동역자로, 어떤 사람은 물질의 동역자로, 어떤 사람은 섬김의 동역자로, 어떤 사람은 봉사의 동역자로, 그렇게 바울과 함께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했던 것이죠.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먼저 바울의 마음 속에 복음을 위한 동역자 정신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동시에 함께 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도 바울이 하고 있던 복음을 위한 일에 마음을 모아 주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아름다운 동역이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서로가 서로의 일들에 대해 존중하고 격려하며 함께 세워가는 그런 공동체, 바울이 꿈꾸었고, 우리 주님이 꿈꾸셨던 그런 복음의 공동체,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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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Oct 05.2025 연료가 없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최근에 교회 근처에 코스트코가 새롭게 입점하였습니다. 저는 그곳 주유소를 자주 이용하고 있는데요, 최근에 그곳에 방문했다가 경험했던 일을 나누고 싶습니다. 제가 주유를 하기 위해 차를 세웠는데 바로 옆 라인에 어떤 남자 분께서 무언가를 사진으로 찍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뭘 그렇게 찍나 봤더니 글쎄 최고급 파란색 스포츠카가 한 대 그곳에 서 있었습니다. 브랜드 이름을 이야기하면 여러분들 모두가 아실만한 아주 납작한 차가 제 눈 앞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 차의 가격이 얼마인지는 잘 모르지만 아마도 저는 평생에 한번도 살 수 없을 어마어마한 가격인 것만큼은 틀림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 비싼 차를 바로 앞에서 볼 수 있었다는 놀라움과 더불어 저를 또 한번 놀라게 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가 사용한 주유기와 똑같은 것을 그 차 옆에 끼우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개스 종류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 차는 가장 좋은 질의 개스를 넣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차도 똑같은 개스를 넣는 모습을 보면서 한가지 생각이 제 머리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아.. 저렇게 비싼 차도 개스가 없으면 한발짝도 나아갈 수 없구나.’ 저 정도 되는 차가 그 차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개스를 넣는 것도 아니고, 제가 넣는 것과 똑같은 개스를 넣다니! 차가 가진 성능이나 가격, 그리고 모양, 디자인, 그것이 다 다르고 우리 눈에는 모든 면에 좀 더 나은 것을 가지고 있어 보인다 하여도 차는 차인 것입니다. 개스가 없으면 한발짝도 나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연료가 필요합니다. 연료 없이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지금 아무리 잘 나가는 인생이라 할지라도 연료 탱크가 비워져 있는데 연료를 당장 채우지 않는다면 조금 있다가 멈춰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반면에 지금은 좀 모자라고 부족한 것 같아 보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연료 탱크에 연료가 가득하다면 그 사람은 힘있게 계속 달려나갈 수 있겠죠. 그렇다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연료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성령의 기름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힘든 순간들이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멈춰서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냥 주저 앉아 일어설 수조차 없는 때도 있습니다. 그때가 바로 연료가 필요한 때입니다. 어느 누구도 연료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날마다 연료가 충만하게 채워져 있는가입니다. 다시 말해 성령의 기름이 날마다 나에게 충만하게 부어지고 있는가, 성령이 주시는 놀라운 은혜의 감격이 내 안에 넘치고 있는가, 성령이 내 삶을 역동적으로 변화시켜 가고 있는가, 이런 일들이 성령님을 통해 우리 안에 일어나야 우리는 다시 일어서 전진할 수 있습니다. 연료 없이는 제 아무리 비싼 차라도 한발짝도 앞으로 갈 수 없는 것처럼 우리가 그런 존재임을 인식하고 날마다 성령의 기름을 마음과 영혼에 채워서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하루하루 전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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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Sep 28.2025 전도의 문을 열어 주옵소서
    LA에서 부목사로 사역할 때 여러 마켓에 노방전도를 나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마켓에 온 사람들에게 교회는 다니시는지, 예수님을 믿으시는지 물어보면서 교회에서 준비한 전도지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러면 각양각색의 반응들을 보이십니다. 정말 감사하다고 이야기 해 주시는 분이 있는가 하면 나 이런 거 필요 없다고 하고 쌩하니 지나가시는 분도 있습니다. 이런 여러 반응들을 대하면서 전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경험했던 적이 있습니다. 특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인상을 쓰면서 지나가시는 분들을 대하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전도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우리는 전도라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전도는 주님의 명령이고 구원을 얻게 하시기 위한 중요한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고전 1:21)라고 말씀하십니다.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서 꽤나 지혜있다고 하는 헬라인들을 향하여 이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사용된 ‘전도’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케루그마’입니다. 이 단어는 가르침, 선언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해 사람들에게 선언하고 가르치는 것이 전도라는 것입니다. 헬라인들은 자신들의 지혜로 구원에 이르려 했지만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이십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시기 위해 이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달려 돌아가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죄가 없으시기에 그분의 죽음은 구약에서 말씀해 주신대로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으셨습니다. 또한 그분은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사 지금은 하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시는 분이십니다. 장차 예수님은 다시 이땅에 내려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 심판 날에 믿는 자들은 천국으로, 믿지 않는 자들은 지옥으로 보내지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전도할 때 선포해야 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선포하고 가르치고 전하는 이 일을 아무나에게나 할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가 무작정 찾아가서 전도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마음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전도의 문을 열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 일 때문에 매임을 당하였노라” (골 4:3) 바울 조차도 전도의 문을 열어주시지 않아 매임을 당했다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서 문을 열어주셔야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선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도라는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주변 이웃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가기 전에 꼭 전도의 문을 열어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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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Sep 21.2025 우리를 교회로 부르신 하나님
    하나님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창 1:1). 마지막 날에는 인간을 만드시고 인간으로 하여금 세상을 다스리고 정복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명을 받은 인간이 하나님이 먹는 것을 금지하신 나무의 열매를 먹게 되고 그로 인해 이땅에 죄가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인간도, 온 세계 피조물도 함께 죄의 결과가 가져다 주는 아픔과 고통을 느껴야만 했습니다 (롬 8:22~23).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것에 대한 결과이기도 했습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은 이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지 않는 한 절망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지요. 하나님은 사실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인간이 죄를 짓게 될 것도, 그로 인해 피조물이 고통하게 될 것도 알고 계셨죠. 그렇다면 아예 죄를 짓지 않게 막으셨으면 되지 않겠냐고 물으실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물론 그러실 수 있으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 속에서 인간의 실수와 범죄함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전혀 지장을 주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도리어 절망스러움을 통해 구원의 손길을 더욱 바라보게 하셨고,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연약함을 통해 그리스도를 통해 주시는 은혜가 더욱 풍성하게 만드시는 일을 행하셨습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치게 하시길 원하셨던 것입니다 (롬 5:20). 하나님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은혜의 새 시대를 여셨습니다.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가 인간과 피조물을 탄식하게 만들었다면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흘리신 피로 인해 얻게 되는 구원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수 있게 만드신 것입니다. 그로 인해 인간과 온 세계 피조물은 진정한 평화를 맛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엡 2:14~18).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과 화목을 이룬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를 하나님은 교회라고 부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바로 저와 여러분이 교회인 것입니다. 교회는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성경 전체를 놓고 볼 때 교회는 개인이 아닌 공동체적 개념으로 더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구약에서는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부르셔서 그들을 광야에서 먹이시고 인도하심으로 하나님께서 교회를 어떻게 세워나가시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신약에 와서는 베드로에게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마 16:18) 하시면서 예수 그리스도 위에 교회가 세워질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고백하는 성도들이 함께 모여 교회를 이루게 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가 공동체로 있기를 원하시는 이유는 함께 자라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기 때문”인 것입니다 (엡 2:21~22). 교회의 이러한 공동체성을 우리가 이해하고 받아들임으로써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함께 자라나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엡 4: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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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Sep 14.2025 의심의 눈초리보다 더 이해하려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옛날부터 중국에서는 “의심은 마귀를 낳는다”는 말이 있었다고 합니다. 옛날 중국에서 어떤 사람이 소중하게 간직하던 도끼를 잃어버렸습니다. 아끼던 도끼를 잃은 사람은 누군가가 훔쳐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바로 이웃집의 어린아이가 아닌가 하고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가 자기와 마주치게 되었을 때 그 아이의 거동도 그렇고, 안색도 그렇고, 말하는 것도 예사롭지 않은데다가 얼른 자기를 피해서 가버리는 것이 모두 이상스러웠습니다. 도끼 임자는 도끼는 틀림없이 그놈이 훔쳐간 것으로 더욱 믿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고서 잠시 후에 잃어버린 줄만 알았던 도끼를 자기 집 마루 밑에 두었던 생각이 되살아나서 찾아보니 과연 그대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공연히 남을 의심했다고 후회하고 있는데, 그 어린애가 가까이 왔습니다. 이번에는 그 어린애의 거동은 조금도 의심스러운 데가 없었습니다. 도끼 주인은 크게 깨달았습니다. “남을 의심하면 그 선입견으로 모든 것을 그 의심에 맞게 생각하므로 더욱 의심스러워 보이고 그와 반대로 남을 좋게 보면 무슨 일이라도 모두 좋게만 보인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지요. 이렇게 생각한 도끼 주인은 공연히 어린애를 의심한 것이 부끄러웠다고 합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일들이 종종 일어납니다. “확증편향”이라는 말이 바로 그것을 설명합니다. 이 말은 자신의 기존 신념이나 가치관에 부합하는 정보에만 주목하고, 그와 반대되는 정보는 무시하거나 최소화하려는 심리 현상을 뜻합니다. 내 생각에 모든 것을 끼워 맞추고 그것이 무조건 옳다라고 여기는 것, 그것이 확증편향인 것이지요. 이러한 확증편향은 우리의 인간관계를 악화시키고 무너뜨립니다. 다른 사람은 전혀 그런 의도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내 마음 속에서 만들어 낸 것들이 마치 진리인 것처럼 내 안에서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더 많은 대화를 시도하면서 상대방을 더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얼마나 잘못된 생각으로 누군가를 잘못 판단하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더 나은 관계로 발전해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Since ancient times, there has been a Chinese saying: “Suspicion begets evil.” Long ago, a man lost a cherished axe. Convinced it had been stolen, he immediately suspected the young child next door. Every glance, every movement, every word the child uttered seemed to confirm his suspicion. But soon, he remembered the axe was actually under the floor of his own house. Feeling ashamed for having doubted the child, he noticed the child approaching again—and this time, there was nothing suspicious at all. The man realized a profound truth: “When we suspect others, we interpret everything through the lens of suspicion, making everything appear doubtful. Conversely, if we view others positively, everything seems good as well.” This story illustrates a timeless human tendency known as confirmation bias: the tendency to notice and favor information that aligns with our existing beliefs while ignoring or dismissing what contradicts them. When we let our assumptions dictate our perceptions, we risk misjudging others—and even damaging relationships—based on illusions in our own minds. The antidote is simple but challenging: seek out conversations with those who think differently, and make a conscious effort to understand them. By doing so, we uncover how often our judgments are flawed—and, in turn, we cultivate stronger, more genuine relationshi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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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
    아름다운교회 Aug 17.2025 숨겨져 있는 모습이 진짜 모습입니다
    교육학에서 숨은 교육과정(Hidden Curriculum)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숨은 교육은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명시된 교육과정 외에 학생들이 배우게 되는 것으로 표현되지 않은 비공식적인 수업, 가치관, 그리고 사회 규범을 의미합니다. 이는 상호작용, 교실 분위기, 학교 문화 등을 통해 전달되는 암묵적인 메시지를 포함하죠. 이러한 글로 쓰이지 않은 규칙과 기대는 학생들의 경험, 성공, 나아가 사회 구조에 대한 이해에까지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어쩌면 학생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교육은 숨은 교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시간을 지키는 것에 대한 수업을 하려고 하는데 그 선생님이 수업 시간을 지키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까요? 선생님이 윗사람 말을 잘 따르고 규칙을 잘 지켜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려고 하는데 그 선생님이 자신의 상관의 말에 반항을 하는 모습을 아이들이 본다면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까요? 친구가 힘들어 할 때 도와주어야 하는 것을 가르쳐야 하는 선생님이 옆에 있는 동료 선생님이 도움이 필요할 때 모르는 척 하고 지나간다면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까요? 아마 선생님이 가르친 것보다 선생님이 보여주신 것을 배울 것입니다. 이것이 계속 반복된다면 머리로는 알지만 그렇게 굳이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배울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이중적인 아이로 자라게 될 것입니다. 신앙도 그렇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녀들이 부모의 신앙에서 무엇을 배울까요? 우리는 자녀들에게 부모의 신앙이 잘 계승되기를 바라지만 자녀들은 우리의 숨겨진 모습에서 신앙을 배우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야 한다고 자녀들에게 가르치지만 정작 부모는 문제상황을 만날 때 하나님을 찾거나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문제들을 해결해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아이는 부모의 그 모습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자녀들은 우리의 신앙의 순수성을 지켜나갈 수 있게 만드는 하나님이 보내신 선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가르치려고 하는 것들이 진짜인지 아닌지를 돌아볼 수 있도록 만들기 때문이죠. 저는 자주 숨은 교육과정에 대해 생각해 보곤 합니다. 무엇인가를 가르치기 이전에 나는 정말 그렇게 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는 것이죠. 만약 제가 하지도 않는 것을 가르치려 하거나 누군가에게 요구한다면 그것은 제 자신을 속이는 것일 뿐만 아니라 가르침을 받는 자를 이중적인 사람으로 만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기보다 늘 자신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자신의 중심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이 정말 말씀대로 살아가고 있는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점검하고 점검하고 또 점검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중심에 하나님이 없고, 삶 속에 하나님이 없고, 신앙생활 속에 하나님이 없다면 그것을 아무리 숨기려 해도 숨길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속에 계시다면 우리는 분명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숨겨진 그 진짜를 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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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Aug 10.2025 왜 공동체인가?
    우리는 태어나면서 자동으로 가족 공동체에 소속이 됩니다. 그 안에서 아빠, 엄마, 형제, 자매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다 유치원을 가기 시작하면서부터 또 다른 공동체에 소속이 됩니다. 친구, 선생님과 관계를 맺으며 새로운 지평을 열어갑니다. 더 자라나 사회에 발을 내딛게 되면서 관계의 유형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됩니다. 더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우리의 사회적 영역은 더욱 확장되어 갑니다. 이렇게 수많은 공동체를 거치면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우리가 속해 있던 곳에서 만났던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나와 똑같은 사람은 아마도 한사람도 없었을 것입니다. 생김새가 다르고, 생각하는 것이 다르고, 심지어 갈등을 조정해 가는 방식조차도 달랐을 것입니다. 결혼할 때는 자신과 비슷한 점이 많아서 결혼을 결심했다고 하는 부부도 결국에는 나와 다른 것이 한 구석도 없다고 고백하는 부부를 많이 만나 보았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수도 없이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고 상대해 왔습니다. 지금도 그런 사람을 만나고 있고, 앞으로도 더 많이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의 의미를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두 개의 큰 공동체를 우리에게 허락해 주셨습니다. 가정과 교회입니다. 가정과 교회에 소속되어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가정과 교회 공동체를 통해 하고 싶은 것이 있으십니다. 그것은 바로 성장입니다. 먼저 말씀드리지만 행복이 아닙니다. 성장입니다. 그리고 성장은 언제 일어나느냐? 나와 다른 사람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성장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완벽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는 것이 완벽하지 않습니다. 살아가는 방식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저 내 생각과 라이프 스타일은 70억(세계인구)개 중에 하나일 뿐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면서 다른 것을 배웁니다. 꼭 이렇게 살지 않아도 인생을 사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넓어지고 자라나고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럴려면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싫든 좋든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고, 그 사람을 통해 배울 수 있고, 성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즘 안타깝게도 공동체에 소속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나한테 맞는 공동체를 찾아다니려고 합니다. 안타깝지만 나한테 맞는 공동체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런 공동체가 있다 할지라도 그곳에서 성장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비록 나에게 힘들고 어려운 일이 되더라도 성장에 목적을 두고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다면 우리는 더 아름답고 멋진 인생의 남은 날들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행복이 아닌 성장을 추구하며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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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Aug 03.2025 수요영성예배에 한번 나와보세요
    우리 교회 수요저녁예배를 처음 참석했을 때 너무나 생소한 방식이라 조금은 어색했습니다. 신앙서적을 읽어오고 그것을 토대로 설교시간에 은혜를 함께 나누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배에 참석하면 할수록 어색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이런 방식이 주는 영적 유익이 너무나도 많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앞서간 신앙의 선배들이 남긴 영적 깨달음, 말씀에서 발견되는 깊은 은혜들을 책에서 대할 때면 너무 깊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설교자는 설교를 전할 때 그 설교에 자신도 은혜를 받아야 한다고 이야기들을 합니다. 전하는 이나 듣는 이가 모두 설교를 들어야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자신이 준비한 설교를 전하면서 은혜를 받는다는 것이 솔직히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을 고백합니다. 우리도 말할 때 나는 예외인 것처럼 말을 하게 될 때가 있지 않습니까? 물론 그러면 안되겠지만 그렇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수요일마다 책을 정하여 그 속에 담긴 비밀들을 캐내고 그것을 전할 때 저도 제 3자가 되어서 설교를 듣게 됩니다. 전하는 자와 듣는 자가 모두 설교를 듣게 되는 것이지요. 벌써 제가 오고 난 이후에도 참 많은 책들을 다루었습니다. David Platt 목사님의 “물러서지 마”, 조정민 목사님의 “왜 예수인가?”, 박영선 목사님의 “하나님의 열심”, 본 훼퍼 목사님의 “나를 따르라”, 유진 피터슨 목사님의 “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이 책들 하나하나가 참 많은 영감을 주었고, 삶에 지혜를 주었고,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더욱 깊이 있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부터는 팀 켈러 목사님의 “내가 만든 신”이라는 책을 가지고 은혜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주에 서론을 시작으로 약 8주 정도 이 책을 통해 은혜를 받을 예정인데요, 저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제가 이렇게도 많은 우상을 섬기고 살았는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우상하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세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이나 성경에 나오는 신상들, 그리고 다른 나라 사람들이 집에 모셔 놓고 있는 금으로 만든 어떤 형상들이 우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세요? 그러다보니 우상숭배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와는 먼 이야기인 것처럼 들을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등장하는 아브라함과 평생 소원, 야곱과 사랑, 삭개오와 돈, 나아만과 성취(성공), 느부갓네살과 권력, 요나를 통한 문화와 종교의 가짜 신, 이 모든 것이 우리가 현재 섬기고 있는 우상이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한 우리는 끊임없이 우상을 숭배하면서도 전혀 문제없는 것처럼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상숭배의 결과는 개인적으로, 공동체적으로 심각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여기저기 문제가 생기는 것이지요.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가지입니다. 하나님 자리에 하나님을 다시 모셔야 합니다. 그런데 내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는 마음을 주시도록 간구해야 합니다. 수요일 저녁이 그런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한번 나와 보시기 바랍니다. 회복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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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Jul 27.2025 내려놓는다는 것
    예전에 최하진 선교사님이라는 분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이분은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연구교수로 안정된 삶을 살아가던 카이스트 출신의 화학공학 박사님이십니다. 그런데 30세 초반의 젊은 나이에 하나님께서 이분을 부르셨습니다. 가장 소중한 나이에 나를 위해서 일해줄 수는 없겠느냐는 부르심이었습니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부르심이었지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로 결심을 하고 그 좋은 세상 직장, 명예를 모두 털어버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청소년들을 구원하기 위해 중국으로 떠나게 되었죠. 하나님이 부르셨던 그 때의 일을 생각하면서 말씀하시기를 자신이 쌓아온 것들을 내려 놓는다는 것이 뼈를 깎는 고통이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내려놓음, 내려놓음, 이렇게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그것을 자신이 실제로 하려고 해보니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었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30살의 젊은 나이에 미국 스탠퍼드 대학 교수가 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입니까? 그러니 그것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엄청난 고통을 수반하는 일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분께서 하시는 말씀이 그때 당시 한창 유행하던 말이 내려놓음이었는데 자기는 내려놓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주 바닥에 내던져 놓고 발로 그냥 짓눌러서 아예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만들었다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는 성격상 내려놓으면 얼른 다시 주어 담을 것 같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완전히 산산조각을 내 버렸다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최하진 선교사님은 그렇게 ‘Dawn Mission 선교회’를 설립하고, 중국 열방학교를 세웠지만 공식적인 직책도 없이 학교의 청소부 겸 수위 아저씨로 가장 낮은 자리에서 학생들을 지금도 섬기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내려놓는다 내려놓는다 하면서 실제로 그렇게 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내려놓음을 잠시는 실천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주어담을 때도 있습니다. 내려놓는다는 것은 감상적인 말이 아니라 실제입니다. 그래서 내려놓으려면 엄청난 고통과 희생과 아픔을 감내해야만 합니다. 그렇기에 내려놓으려고 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본전 생각이 나기 때문이겠죠. 그러면 어떻게 해야 내려놓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더욱 확고한 신뢰와 믿음이 있어야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삶을 책임져 주실 것이라는 믿음과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시라는 확고한 신뢰가 있을 때 우리는 그제서야 손에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내려놓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땅에 발을 디디고 살아가지만 이땅에 매여 살아가는 인생이 아니라 자유함에 이르는 길을 따라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지난 주 원로목사님께서 한국 농촌선교를 떠나시면서 내려놓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직접 체험하셨다는 말씀을 해 주고 가셨습니다. 친척, 본토, 아비 집을 떠났던 아브라함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겠노라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내려 놓을 때, 아니 다시 주어담을 수도 없게 산산히 조각낼 때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그제서야 경험하고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자유로 우리 모두를 초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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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Jul 20.2025 웃으며 즐기며 삽시다
    여러분의 기도와 관심과 협력 덕분에 저희 가정이 재충전의 시간을 잘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이번에 잠시 쉬는 시간을 보내면서 뜻깊은 곳을 다녀왔습니다. 그곳은 바로 라스베가스에서 북쪽으로 차로 10시간 정도 되는 거리에 있는 옐로우스톤 국립공원(Yellowstone National Park)입니다. 저희 아이들은 그곳에 있는 여러 가지 풍경들과 들판을 뛰노는 사슴과 바이슨 떼를 보며 감탄했지만 제게는 특별히 다가온 의미가 있었습니다. 바로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무슨 말이냐구요? 그곳은 오랜 세월동안 있었던 지진으로 인해 지하의 돌들이 깨져 여러 갈래로 틈이 나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래서 그 틈새로 용암의 열기가 땅 위로 올라오고 그 열기를 만난 지하수들이 증발되어 증기와 뜨거운 물로 폭발하는 기이한 현상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현상들은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으며 계속된 지진으로 인해 땅은 계속 갈라지고 뜨거운 물과 증기가 폭발하는 장소들이 계속 새롭게 생겨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그렇게 울창하고 쭉쭉 뻗어있는 나무 숲들 사이로 완전히 잿더미가 되어 버린 장소들이 곳곳마다 등장합니다. 그곳의 지표면은 회색으로 뒤덮혀 있고, 나무들은 다 죽어서 줄기만 앙상하게 남아 있던지 아니면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생각한 것이 이것입니다. 죽음이 그렇게 멀리 있지 않구나. 죽음이 언제 어디서 찾아올지 아무도 모르는구나. 지금도 땅밑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언제 어디서 뜨거운 물이 솟아올라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죽음으로 몰아갈지 아무도 알 수 없구나. 그렇게 그곳은 삶과 죽음이 공존해 있는 그런 장소였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얼마 전 소천하신 고 이어령박사님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것임을 삶으로 잘 보여준 분이십니다. 죽음이 우리 인생에 결코 오지 말아야 할, 우리 인생을 끝내 버리는 그런 것으로 여기지 않고 우리의 영원한 삶에 반드시 거쳐가야 할 과정으로서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열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암말기 판정을 받고는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을 전혀 어색해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용기있게 받아들이셨죠. 그리고 자신에게 남아있는 시간들을 멋있게 사시다 죽음을 맞이하셨습니다. 우리도 언제 죽음을 맞이할지 아무도 모릅니다. 청년이라고 더 오래 살까요? 노년이라고 더 빨리 죽는 것일까요? 그건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그저 살다가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만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알 수 없는 우리네 인생에서 언제 죽음을 맞이할 줄 모른다는 것은 암울한 사실이 아니라 남아 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를 알려주는 멋진 진실입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요즘 시니어와이즈 성경공부에서 시니어 분들과 매주 나누고 있습니다. 시간적으로는 얼마 남지 않았다고 느껴질 수 있는 분들이 이러한 진실을 마주 대하며 하루하루 즐기며 기뻐하며 사시려는 모습을 볼 때 너무나 뿌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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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Jul 06.2025 나와보니 알았습니다
    ​지난 주 중고등부 학생들을 위한 수련회가 말리부가 보이는 페퍼다인 대학교에서 있었습니다. LA에 있는 한 교회에서 주최한 수련회에 조인하여 함께 은혜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느 날 기도하던 중에 학생들을 데리고 이 수련회에 참석하면 좋겠다는 마음을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라스베가스의 지역적 특성상 더 넓은 세계를 볼 수 없는 한계가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라스베가스는 세계 최대의 도시입니다. 그곳에 살면서 경험할 수 있는 풍성한 것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기에 더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더 많은 세계들을 만나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캘리포니아에서 살아가는 또래 친구들과 믿음의 선배들을 만나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사람이 우주이고, 더 많은 사람을 경험하는 것이 더 넓은 우주를 경험하는 것일테니까요.  수련회장으로 5시간을 운전하여 도착했습니다. 시작부터 학생들이 잘 적응하여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보는 저도 흐뭇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무엇인가를 배워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학생들이 서로 어울리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도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었던 것이지요. 무엇보다 나와보니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가족애였습니다. 나와서 보니 학생들이 그저 남의 집 자식이 아닌 내 자식처럼 느껴졌습니다. 아이들이 잘 적응하고 있는지, 어려워하는 부분은 없는지, 지쳐보이는 아이는 없는지, 불안해 보이는 아이는 없는지 계속 살피며 이들을 보살피고 돌보아 주어야 했습니다. 학생들끼리도 그것을 느꼈나봅니다. 서로를 아껴주고 이해해 주고 더 돈독하게 서로를 챙겨주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나와보니 학생들도 느끼는 것이 있었나 봅니다. 마지막 날에는 학생들이 준비한 퍼포먼스를 발표하는 순서가 있었습니다. 우리 아름다운교회 학생들이 퍼포먼스를 한가지 준비했습니다. 출발하기 전부터 교회에 모여 아이들이 열심히 준비했지요. 막상 이곳에 와서 연습을 하는데 다른 교회들이 하는 모습을 보면서 더 잘 해보려고 똘똘 뭉치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제일 잘 하는 것 같다고 자부심을 함께 느끼기도 했지요. 나와보니 가족애가 저절로 생겨났나 봅니다. 수련회를 마치고 돌아온 후에 앞으로가 더욱 기대 되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돌보며 세워주며 이해해주며 용납해주고 도와주고 희생하고 격려하며 공동체를 함께 세워나가는 것이 어떤 모습일지를 조금이나마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나보다는 우리를, 나보다는 교회를, 나보다는 사회를 위하는 마음을 배웠기를 바래봅니다. 학생들이 이기적인 모습을 벗어버리고 함께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느낀 이번 수련회, 참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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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Jun 29.2025 마음 중심
    우리의 마음에는 마음의 소원한 것들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램들이 있습니다. 그것도 되도록 일찍 이루어졌으면 하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전도서에서 솔로몬을 통해 이미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천하만사에 다 때가 있다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린다는 것이 현실에서는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계좌를 보니 다음 달 렌트비가 나갈 돈보다 적은 돈이 들어있을 때, 신분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을 때, 아픈 몸이 빨리 낫지 않을 때 등등. 이러한 실제적인 문제들 앞에서 마음이 조마조마할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목회를 하는 저도 목사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마음을 조급하게 만드는 것들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머리로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또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고 기도를 하면서 이것을 믿음으로 고백하고 마음으로 확신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실제 상황을 만나게 되면 그 믿음이 다 어디로 사라져 버리는지 한순간에 두려워하고 초조해 하는 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왜? 도대체 왜 하나님은 한번에 좀 주시지, 한번에 좀 해결해 주시지, 주실 거면 빨리 좀 주시지 왜 이렇게 뜸을 들이십니까? 하소연도 해 봅니다. 그러던 중에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강하게 말씀하시는 것이 있었습니다. “너의 마음 중심에 도대체 뭐가 있느냐?”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면서 도대체 마음 중심에 뭐가 있느냐고 대뜸 물으셨습니다. 이제 이 질문과 씨름을 합니다. 이 질문의 답이 무엇인지 몰라서 씨름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과 현실 사이에 있었던 커다란 갭을 발견하고 난 뒤 이 갭을 좁히기 위한 씨름을 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 중심에 있는 것이 하나님인지, 아니면 하나님이 주실 그 무언가였는지. 아직 미성숙한 아이들은 선물에 약합니다. 선물을 사서, 때론 먹을 것을 사서 집에 들어갈 때면 이 아이들을 나를 기다렸는지, 아니면 제 두 손에 들려있는 것을 기다렸는데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미성숙한 아이들은 매일매일 선물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아빠보다 아빠의 두 손에 들려있는 당장의 선물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목을 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게 한참을 씨름하다가 드디어 제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확신이 차오르기 시작합니다. ‘그래. 내가 신뢰하고 의지해야 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이전에 몰랐기 때문이 아니라 알았지만 현실의 문제 앞에서 이제 더 진실한 고백을 확신 가운데 드리게 된 것입니다. ‘그래. 내 마음 중심에 있어야 할 것은 오직 하나님 한분이시다.’ 이렇게 고백하고 나니 흔들렸던 마음에 평강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제 삶에 다시 여유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사야가 우리에게 전한 말씀,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신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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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4
    아름다운교회 Jun 22.2025 생명이 있다면
    몇 주 전 NV Energy에서 노티스를 하나 받았습니다. 교회에 있는 소나무 중에 하나가 전기줄에 침범을 해서 가지를 정리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업체에 견적을 받아보았는데 요즘 시국이 그래서인지 생각보다 가격이 비쌌습니다. 그래서 견적만 여기저기 받다가 시간만 흘러가고 있었지요. 그러다 한 성도님의 결단과 헌신으로 우리가 자르자고 하고 지난 주에 가지치기를 진행했습니다. 하필이면 가장 바람이 많이 부는 날, 나무를 올라가자니 땅에 그냥 서 있는데도 휘청휘청할 정도의 바람에 겁이 났습니다. 어찌 됐건 그 성도님께서 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가지들을 쳐내 가면서 결국 깔끔하게 가지들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일이 마무리 될 무렵 제 눈에 이상한 것이 한가지 들어왔습니다. 잘려나간 가지에서 갈색빛의 액체가 흘러나오는 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나무의 진액이었습니다. 너무 신기해서 계속 보았습니다. 진액이 점점 흘러나오더니 잘려나간 부분 전체를 덮었습니다. 그래서 궁금해졌습니다. 나무가 왜 진액을 내는지. 그것도 잘려나간 부분에 왜 진액이 흘러나왔는지. 모든 나무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상처가 나거나 곤충의 유충이 침투할 때 진액을 낸다고 합니다. 그렇게 진액을 내어서 외부 상처에 세균이 침투하지 못하도록 막는다고 하네요. 꼭 이것은 잘려나간 부분이 너무나 아파서 눈물을 흘리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제 마음도 짠해졌습니다. 꼭 나무가 아프다고 말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아프지만 아픈만큼 진액이 나와서 자신을 보호하는 모습이 대견하고 기특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옆에 또 잘려나간 가지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지에서는 진액이 전혀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 가지는 죽은 가지였을 것입니다. 죽은 것에는 가지가 잘려도 진액이 전혀 나오지 않았습니다. 너무 신기해서 두 가지를 한 화면에 담아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생명이 너무나 신기했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는 생명이 공급되고 있는 가지였습니다. 한 가지는 생명이 차단된 죽은 가지였습니다. 둘 다 잘려 나갔습니다. 그런데 하나는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진액이 나온 반면, 또 다른 하나는 전혀 진액을 내지 않았습니다. 순간 저는 생명이 이렇게 대단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잘려나가는 것과 같은 아픔을 경험하곤 합니다. 상처를 경험하곤 하지요. 그것은 모두가 경험하는 것들입니다. 중요한 것은 생명을 가졌느냐, 생명을 가지지 못했느냐입니다. 생명이 있다면 피투성이가 되었다 할지라도 보호하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언제가 다시 자라날 소망이 있습니다. 완전히 회복될 그 날이 오게 되겠지요. 하지만 생명이 없다면 소망이 없습니다. 회복될 가능성도 없지요. 그냥 툭 치면 몸통에서 떨어져 나가는 그런 가지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지는 불에 태워져 사라져 버리겠죠. 지금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다 할지라도, 엄청난 고통과 아픔과 시련이 내 마음을 괴롭게 할지라도 생명이신 주님께 뿌리를 내리고 있다면 괜찮습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살아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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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Jun 15.2025 사랑으로 자라납니다
    우리 교회 까페로 가는 길에 행운목이 한그루 화분에 심겨져 있습니다.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잎이 무성하고 멋진 자태를 보였던 나무였는데 어느 날 저의 실수로 햇빛에 계속 노출시켰다가 나무가 시들시들해져 버렸고 급기야 나무가 죽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께서 줄기를 다 잘라놓으신 것을 보고 저는 더 이상 이 나무는 희망이 없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그 나무에 잎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신기하게 잎이 나는지 줄기 하나에 양쪽으로 잎이 올라오더니 지금은 제법 많아졌습니다. 죽은 것만 같은 나무가 누군가의 사랑과 관심을 받으니 다시 살아난 것이죠. 그 모습을 보면서 저는 세상 모든 것을 회복시키고, 자라게 하는 것이 다름 아닌 사랑과 관심이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은 북한의 침략으로 전쟁이 발발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온 나라가 폐허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때 무슨 학교가 있고, 그때 무슨 배움이 있었겠습니까. 그 시간을 지나온 분들은 대부분이 배우지 못하는 환경 속에서 자라나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자주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도 훌륭하신 분들이 사회에 많이 배출되었고, 그분들을 통해 사회는 매우 건강하고 힘있게 발전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보면 훌륭한 사람은 반드시 학교 교육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도리어 학교 교육은 사람을 더 악하게 만들고 사회를 불안에 빠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전문가들의 주장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라게 하고, 성장시키는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사랑과 관심, 그리고 희생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죽은 것처럼 보이던 나무가 누군가의 관심과 사랑, 그리고 헌신적인 희생을 통해 다시 살아났던 것처럼 그러한 사랑과 관심, 그리고 희생이 우리 사회, 우리 가정, 우리 공동체를 건강하게 만들지 않을까요? 인간은 아담의 범죄 이후로 더 높은 곳을 차지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돈을 벌려는 목적도, 권력을 가지려는 목적도, 좋은 차, 좋은 집을 가지려는 목적도 속을 들어가 보면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며, 더 높은 곳을 올라가기 위한 수단으로 삼으려는 것일 때가 많습니다. 돈과 권력,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의 가치는 중립적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선이 되기도 하고, 악이 되기도 하는 것이겠지요. 그것이 선하게 쓰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느냐? 어렵지 않습니다. 사랑하기 위해 돈을 사용해 보십시오. 희생하는 일에 권력을 사용해 보십시오. 건강하고자 하는 목적이 누군가에게 사랑과 관심을 쏟기 위한 것이 되면 어떨까요? 칼럼을 계속 쓰다보니 내용이 늘 이상적인 이야기만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하나라도, 누군가 한사람이라도 실천한다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공동체에 기적은 일어날 것이라 믿습니다. 사랑으로 자랍니다. 소망없는 인생들이 우리의 사랑과 관심과 희생을 통해 생명을 얻는 복음의 역사가 계속 일어나기를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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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Jun 08.2025 우리의 소망은 오직 하나님 뿐이십니다
    지난 주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에서는 제21대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가 있었습니다. 이번만큼 관심이 많았던 선거가 역사상 또 있었을까요? 그래서인지 이번 대통령 선거의 투표율은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된 1997년 대선 이후 28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였다고 합니다. 그만큼 온 국민의 관심 가운데 진행된 투표였기에 당선 결과에도 많은 희비가 엇갈렸습니다. 저는 여러 사회적, 개인적 반응들을 살펴보며 사람들이 얼마나 정치에 관심이 많은지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반면 사람들이 얼마나 정치에 희망을 걸고 있는지 또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게다가 이번 선거는 교회가 정치에 얼마나 깊숙이 관여되어 있는지를 눈여겨 볼 수밖에 없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정치에 참여해야 하고, 선거에도 참여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국가의 시민으로서의 정당한 권리와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또 한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모든 것은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속에서 되어진다라는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쳔은 원하는 대로 이루어졌다고 해서 교만해서도 안 될 것이며, 원치 않는 결과가 나타났다고 해서 낙심해서도 안 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상 위대한 제국을 이루었던 바벨론, 그리고 로마. 이 두 제국은 역사상 전무후무한 강대국들로 손꼽히는 국가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두 국가 모두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데 쓰임 받았고, 그 일을 다한 후에는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때가 되자 하나님께서 멸망시키신 것이죠. 그 중에서도 바벨론은 정말 무너지지 않을 것만 같던 강대국이었습니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았고, 영원히 그 영광과 권력을 누리며 세계를 통치할 것만 같은 나라였죠. 누가 그 나라가 멸망할 것을 예상이나 했겠습니까? 그런데 그 위대한 바벨론도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대로 정확히 남유다를 멸망시킨 후 70년 만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런 걸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도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기때문에 세계 속에서 쓰임을 받고 있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손을 놓으시면 아무 것도 아닌 나라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온 열방의 통치자가 되시고 온 나라를 다스리시는 만왕의 왕이시라는 사실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소망은 정치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한 개인이나 사람이 되어서도 안됩니다. 정치 뿐만 아니라 사회, 교육, 문화, 그 어떤 것도 우리의 소망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오직 하나님 뿐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치색이 다른 사람이라 할지라도, 교육 수준이 다른 사람이라 할지라도, 어떤 환경 속에서 살아왔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한 교회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결코 잊지 맙시다. 우리의 소망은 정치가 아닌 하나님이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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