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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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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Feb 24.2021 염려가 염려를 낳는 법칙
    지난 한 주간은 개인적으로 답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뜻하지 않게 확진자 동선이 겹쳐서 부득이하게 Covid 19 Test를 받았는데 3-5일 걸린다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 바람에 본의아니게 자가격리아닌 격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제 스스로는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별일은 없을 것이라는 마음이 많았지만,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새벽예배를 인도하지 못하고, 사람들과 격리아닌 격리를 하는 시간을 가진 것입니다. 하지만 결과통보가 늦어지면서 대수롭지 않은 일이 대수롭게 여겨지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하루에 몇 차례씩 web site에 들어가 결과가 나왔는지를 확인하는 일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머리가 아프네? 몸이 무겁네? 감기 증상이 있네? 기운이 없네? 설사도 하잖아? 이러면 코로나 증상이 아닐까?’ 별의 별 생각이 들었습니다. 갑자기 걱정이 됩니다. 내가 만일 확진자가 되면 교회는? 나를 만난 사람들은? 아이고 이거 큰 일이 아닌가? 그러기를 며칠,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아, 염려가 염려를 낳고, 믿음이 믿음을 낳는구나!’라는 법칙을 깨달았습니다. 감사하게도 한주가 넘은 금요일 점심 다되어서야 사이트에 ‘음성’이라는 결과가 올라왔습니다. 아무런 문제가 없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그 며칠 사이, 자그마한 증상앞에서 이런가, 저런가, 염려한 모든 것이 ‘허사’임이 드러난 것이지요. 그러면 그 염려는 당연한 것이 아니라, 안해도 되는 염려였던 것입니다. 음성판정이라는 소식을 보자, 마음에 얼마나 편안한 생각이 들던지, 모든 것이 홀가분해진 느낌이었습니다. 이제는 당당하게 사람들에게 나설 수 있다는 것과 정상적으로 생활해도 된다는 평안함이 자리했습니다. 사실, 혀끝이 쓰고, 입맛을 잃어갈 때마다 ‘혹시~~’라는 의구심도 떨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시원합니까?그러면 모든 염려는 그쳐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염려가 생깁니다. ‘지금 음성 판정을 받았다고 코로나에서 모두 자유롭다는 것이 아니다, 지금 바이러스가 없다는 것 뿐이지, 그간에 다른 경로로 감염되었을 수 도 있다. 하이고~~~’ ‘면역이 되어도 완전 면제가 아니다, 변종 바이러스 때문이다’ 그러면 다시 지금부터 그러한 이야기들 때문에 염려의 종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그래서 아무 것도 못하고 이럴까 저럴까 걱정하며 소극적으로 살아야 할까요? 그래서 우리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바이러스에 감염이 안된다는 믿음이 아니라, 어떤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거기에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는 각오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입어야 할 코로나에 대한 전신갑주입니다. 염려는 다른 염려를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염려는 우리를 한 발자욱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붙잡아 놓습니다. ‘믿음은 삶(문제)을 해석하는 능력’입니다. 그 삶을 나의 관점에서가 아닌 하나님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성경적으로 삶의 태도를 결정해 가는 용기입니다. 가나안 정복의 대 임무를 맡은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이 들려준 최초의 음성은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두려움은 염려의 열매입니다. 믿음은 생명을 낳는 반면에, 염려는 염려와 그 열매인 두려움을 낳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두려움이 우리를 지배하는 것이 아닌, 사랑과 믿음으로 한 걸음 더 주님께 가까이 가는 은혜를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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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Feb 24.2021 일하시는 하나님
    코로나 사태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은 채,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는 소식들이 들려옵니다. 2차 대 유행을 점치는 미래학자들의 분석이 힘을 얻듯이, 확진자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올 가을 이후나 내년에 그 때가 될 것이라고 하는 학자들의 분석을 뒷받침 하듯이 상황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아직 네바다 주에서는 행정조치가 나오지 않습니다만, 미국과 캐나다 그리고 멕시코의 국경이 폐쇄되는 것이 연장될 뿐만 아니라, Stay at home으로 돌아가는 주들이 나오고 있고, 우리가 사는 곳도 red line에 들어섰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서 확진되었다는 소식이 이제는 남의 일같지 않게 들리며 가깝게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뭐라할까요, 어느 지점에 적군에 포위되어 있는데, 점점 그 포위망이 좁혀들고 있다고 하면 적절한 표현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두려울 시간에 두려움으로 맞서는 것이 아닌, 소망과 감사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서는 기회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가만히 생각해 보면 참 감사한 것이 있습니다. 코로나 초기에 온통 세정제도 없고, 마스크도 구경도 못하고, 그저 알아서 살아라 하는 분위기와 마스크는 의료진들이 써야되니 안써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촉감이 어떻게 왔는지, 우리 교회는 마스크를 만들어 우리 교회 교우들 뿐만 아니라, 개척교회와 홈리스 기관에 나누어주는 사역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것이 방역의 기본이 되어 그나마 안전하게 우리가 예배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자, 소름끼치도록 우리의 생각을 지배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이후에 모든 성도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게 되는 사치(?)를 누렸습니다. 지금이야 방역 마스크 구하기가 한층 수월해졌습니다만, 지나고 보니 참 아찔한 생각이 듭니다. 어느 조사에 의하면, 마스크를 쓰지 않은 확진자가 역시 마스크 쓰지 않은 건강한 사람을 전염시킬 확률은 90%라고 합니다. 그런데 마스크쓴 건강한 사람에게는 70%로 줄어듭니다. 마스크를 쓴 확진자가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에게는 단지 5%의 가능성으로 크게 줄어들고, 양쪽 다 마스크를 쓸 경우에는 1.5%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는 조사를 보더라도, 마스크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누가 지시한 것도 아니고, 이 정도 심각한 문제가 오리라고 상상도 못했는데, 순전히 감으로(?) 그 필요성을 깨달아, 목회자들이 구하기 힘든 면, 바늘, 실, 끈을 구하기 위하여 모든 가게, 인터넷을 뒤지며, 백방으로 노력하던 것을 생각해 보면 이것이 정말 하나님이 우리가 모르는 가운데서 준비시켜주신 은혜였음을 이제야 깨닫게 된 것입니다.우리는 마음에 대비해야 합니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만, 결코 이것을 두려움 때문에 회피하는 우리가 아니라, 두렵지만 부활신앙을 가지고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며, 오늘, 우리를 오라 하시면 (코로나로 인해) 기쁨과 감사로 주님앞에서 설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두려움으로 떠는 것은 주님이 원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그것이 죽음이라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살아야 합니다. 걸려도 감사, 안 걸려도 더욱 감사할 수 있는 우리의 자세를 유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안에서 일하시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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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Feb 24.2021 믿는다는 것의 민낯
    6월부터 지금까지 설교의 주제가 ‘믿음’에 관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주신 긴박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코로나 이후에 이렇게 오랜 시간을 예배다운 예배를 드리지 못한 사람들이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제도적으로 막혀왔고, 두려움 때문에 자기 스스로가 막은 예배이기도 합니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온 세상의 예배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코로나로 인해서 몇 달 동안 직장을 다니지 못하다가 이제 조금 문이 열려서 출근하는데, 그동안 일을 안하다가 다시 하니 배나 더 힘들더라고, 그리고 솔직히 일하기가 싫더라는 것을 어느 분이 이야기 했습니다. 당연한 현상이지 않겠습니까? 그동안 일을 안해도 수입이 걱정이 없도록 편안하게 있었는데 (물론 마음은 실직에 대한 부담이 있었지요) 안하다가 일을 하니 일하는 것이 더 힘들고, 일이 싫저지는 하소연이 어쩌면 인간다움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육신의 일도 3-4개월만 쉬었다가 다시 시작하려고 해도 힘든데, 예배를 생명으로 아는 그리스도인들의 현장예배가 사라지거나 제한된 이후에 사람들이 어떤 자세로 살게 되리라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로 보입니다. 실제로, 유튜브로 생중계하는 예배실황도 갈수록 시청률이 떨어지고, 참여율이 급강하 하는 것을 보면 그게 우리의 현실임을 알게 됩니다.우리가 믿음 생활하는 것은 물론 믿고 구원받는 삶을 살기 위해서임은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예수를 믿고 천국에 가기 위해서만을 위하여 산다면 그것은 매우 신앙의 초보 수준입니다. ‘교회 출석하지 않는다고 믿음이 없다고 말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그저 예수 믿으면 천국가지, 구태여 교회 나간다고 천국가는 것은 아니잖느냐고 말한다면 일부는 알고, 더 귀한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그저 나 혼자 예수믿고 천국가라고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나도 성숙해지고 성장함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라고 우릴 부르셨습니다. 즉, 나 혼자 예수믿고 천국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다른 사람들을 믿음의 길로 안내해 주고 양육하는 책임이 주어진 것이 성도이기 때문입니다.평탄할 때에는 모두가 잘 믿는 척 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가 오니까 우리의 실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 믿음의 실력의 수준을 보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던 제자들은 ‘목숨걸고 예수님 따른다’고 맹세를 했지만 막상 예수님이 힘없이 잡히는 모습을 보고서, 현실을 깨닫게 되었는지 모두가 도망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우리입니다. 코로나가 오니 잘 믿는 사람처럼 보였던 우리가 이렇게 겁이 많거나, 핑계가 많거나, 두려움과 의심이 많은 도마가 된 것을 깨닫게 됨으로 우리 스스로의 민낯을 드러낸 것이지요. 이 어려움의 시기에 나의 믿음의 민낯은 무엇입니까? 화장발도 없고, 멋진 양복을 걸치지 않은 민낯이 드러난 것이 오늘 우리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주님은 그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이 시대에 우리가 꼭 해야 할 사명을 따라 두려움을 극복하고 믿음의 길을 잘 걷기를 원하실 것입니다. 교회 안나온다고 우리의 구원이 어디 도망가는 것도 아니라고 말하지만, 주님은 그저 구원받는 것으로 만족하라고 부르시지 않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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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Feb 24.2021 나의 영적 독립 기념일
    어제가 미국의 독립기념일입니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베가스는 호텔을 중심으로 화려한 불꽃쇼가 펼쳐지곤 했습니다. 매년 New year와 함께 말이지요. 그런데 2009년 아름다운 교회가 개척할 때 즈음에 금융사태가 터져서 경제가 어려웠을 때입니다. 2010년인가 그 이듬해에는 경기가 너무 침체되어서인지 불꽃놀이를 시원하게 보지 못한 때가 생각이 납니다. 몇몇 교우들과 함께 우리 동네 야산에 올라 시내를 바라보며 불꽃놀이를 구경하려했는데, 아무리 기다리고 둘러봐도 시원스럽게 불꽃놀이를 하는 곳이 없어서 섭섭한 마음으로 내려왔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럴 때를 제외하고선 미국의 독립을 축하하는 불꽃놀이는 아마도 미국 전역에서 축제처럼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지만 올 해는 많은 주에서 이 불꽃놀이를 금지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확진자가 미국에서 하루 5만명 이상으로 증가하고, 우리가 사는 네바다도 이제는 캘리포니아나 뉴욕주만큼이나 위험지역으로 선포되는 등, 절체 절명의 순간(Perfect strom)이 올 것을 염려한 조치가 시행되기 때문입니다.1776년 7월 4일은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날을 기념하는 국가적 축제일입니다. 이러한 행사는 자신의 국가를 되찾은 기쁨을 표현하는 국민적 축제입니다. 우리 대한민국도 1945년 8월15일을 일본으로부터 독립한 것을 기념하여 지내고 있습니다. 독립! 정말 귀한 일입니다. 나라를 잃어버린 설움을 겪은 세대에게는 이보다 더 소중한 가치가 없을 것입니다. 억압되고 눌려 사람답지 못하게 주권과 권리를 빼앗긴 채 살았던 국민이 스스로 길을 선택하여 자유롭게 나라를 이루어 산다는 것처럼 고귀한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나라의 독립과 주권을 지켜내기 위하여 생명을 내던지고 일구어 냈던 그 고귀한 희생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이런 정치적인 독립도 중요하듯, 예수를 믿는 신앙인으로서 자신만의 ‘독립기념’을 되새기는 것도 매우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성경적으로 보면 유대인들은 애굽으로부터의 독립인 ‘유월절’을 비롯해서 마카비 시대의 독립 그리고 성전회복등의 ‘하누카’등을 축제처럼 지킵니다. 영적 의미에 있어서 우리들도 그러한 기쁨과 감사의 ‘독립 기념일’을 가지고 있다면 정말 행복한 신앙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영적 독립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날’입니다. 죄와 사망의 얽매인 것들을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끊어내고 참된 자유와 기쁨 그리고 말할 수 없는 감격과 행복을 가지고 왔던 ‘죄 사함’의 역사, 무섭도록 끈질긴 죄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를 얻은 것은 엄청난 능력이고 감격입니다. 마치 내 나라가 독립한 것과 같이 말입니다. 내 힘으로가 아니라 십자가에서 나의 죄를 다루신 예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그 사랑을 머리에서 가슴으로 깨닫는 순간, 새로운 세계가 열리게 됨을 알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진정한 영적 독립을 하게 된 것이지요. 성경이 쓰여진 목적도 우리로 하여금 영생이 있는 줄을 알기를 원하신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영적 독립,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만난 그 날입니다. 영적 독립을 얻는 우리는 이전의 종으로 살던 습관적 삶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으로 나아가는 것을 꿈꾸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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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2
    아름다운교회 Feb 24.2021 잊을 수 없는 그 날 (6.25, 70주년)
    1950년 6월 25일을 이 시대 사람들이 기억하게 될 날이 얼마나 더 있을까요? 요즘 아이들에게 6.25가 언제 일어난 사건이냐고 물어보면 7명중에 1명만 1950년이라고 답을 한다고 합니다. 별반 관심이 없으면 사실 몇 년에 일어난 것이 뭐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6.25가 있었다는 것을 알기만 해도 대단한 일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물론 시간은 흘러서 과거의 역사가 잊혀지기도 합니다. 이 전쟁을 통해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사실 없는 것처럼 되었던 아픈 기억이 있는 우리 나라, 지금으로부터 70년전이 벌써 되어버렸습니다. 당시에 우리 나라는 UN에 등록된 120개 나라중에 가장 못사는 나라로 알려졌습니다. 국민 소득이 태국 220불, 필리핀이 170불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76불에 지나지 않을만큼, 이보다 못사는 나라는 없을 정도였습니다. 무엇을 먹느냐는 먹고사는 문제는 사치에 불과했습니다. 그저 그날을 살아내야하는 생존의 문제가 절대적이었습니다. 어린 우리 자녀들은 먹을 것이 없으면 라면이라도 먹지 왜 굶었냐고 물어본다고 합니다. 인생을 말하기에는 상상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수 백년전, 수 천년전의 일이 아니라 불과 70년전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오늘 대한민국은 세계 선진국들과 어깨를 맞대고 찬란한 국가를 이루어 내고 있으며, 대한민국이 있는지도 모르던 시대에서 이제는 대한민국을 모두가 아는 세상으로 바뀌어진 이 자랑스러운 오늘을 사는 것은 그냥 주어진 공짜가 아니었습니다.우리 한국군 사망자 13만명의 어린 청년들과 우리 나라를 돕고자 찾아온 미국을 비롯한 유엔군 5만8천명의 젊은이들의 희생되었는데, 민간인의 피해는 더 비참합니다. 당시 인구의 1/5이 죽어나간 참혹한 현실을 우리가 겪었던 비참한 전쟁이었습니다. 이러한 나라가 가난하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 뻔합니다. 그러한 가난을 딛고 우리 부모 세대는 자신들의 먹을 것, 입을 것, 삶의 즐거움을 희생하고 오늘의 시대에게 정말 귀중한 유산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나는 힘들어서 못먹고, 못배웠어도, 내 자식만큼은 가난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각오로. 국내에서는 국내대로 산업의 전선에서 피땀흘려 일을 해야 했고, 서독에 어린 소녀 간호사들과 소년 광부들이 시체를 닦아내는 일과 지하 1000미터에 들어가 석탄을 캐내는 일을 시작으로, 중동 사막의 일꾼으로, 베트남 전쟁의 군인으로 나가서 그들의 피땀으로 산업을 일구어냈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이 시절보다 강력한 기도가 뒷받침된 적이 없을 만큼 한국 교회는 나름대로 사명을 감당하면서 영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대한민국이 오늘의 자리에 이른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역사는 우리의 거울입니다. 더더구나 6.25는 잊혀서는 안되는 역사입니다. 왜냐면 이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종전이 아니라 휴전). 그러면 종전선언을 하면 되지 않느냐하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가 평화를 선언한다고 평화가 주어지지 않는 이상한 집단과 마주하고 있고, 이들은 핵무기를 개발하면서 여전히 안보를 위협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감성적으로 대할 일이 아닙니다. 안보와 생명은 한번 잃으면 다시 찾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나라를 위해 기도하십시다. 감성이 아닌 냉철한 판단을 하고, 희생자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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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1
    아름다운교회 Feb 24.2021 믿음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사람들이 모이면 주된 관심사가 어디에 있을까요? 단연히 코로나와 건강, 그리고 우리의 미래의 삶과 공동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다가 보니, 제가 만나고 듣는 소식과 교회들 그리고 목회자들의 관심도 역시 코로나 시대에 변화된 교회와 사회의 모습일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처음 겪어보는 세상이니 만큼 이러한 진단과 처방에는 왕도가 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모두가 염려와 달라질 세상에 대한 궁금증과 함께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사실, 이제 코로나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예측만큼이나 확진자의 수가 증가하는 것을 알리는 보도가 잇따르지만, 경제 활동을 마냥 중단할 수 없는 현실 때문에 오는 불안감이 더 크지 않나 싶습니다. 어떤 종업원들에게는 놀고 먹으면서 일할 때보다 더 좋은 환경속에 있는 것을 반기는 상황일 수 있지만, 수많은 기업이나 기업주들에게는 사업을 접어야 하는 위기의 날들을 지나고 있음도 우려할 만한 일입니다. 노동자에게는 기회가 되겠지만, 기업주들에게는 위험한 시간들이기 때문에 그 중간선을 찾는다는 것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결국 모두가 이기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기업이 무너지고서 노동자가 있을 수 없고, 노동자가 무너지고서 기업 또한 살 길이 없기에 서로가 이기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우려속에 교회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코로나 확진자가 증가추세이다가 보니, 사람들이 교회오기를 두려워하거나 꺼려한다는 사실입니다. 당연한 현상입니다. 사실, 가장 안전한 곳은 가정일 것입니다. 아무도 오가지 않고, 어디도 가지 않고 문을 닫고 산다면 안전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습니다. 마켓도 가야하고, 일하러 나가야 합니다. 병원도 가야합니다. 가까운 친구도 만나야 합니다. 안하고 살 수 없습니다. 경제활동을 해야 살기에 직장을 나갑니다만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위험을 감수하면서 나가야 합니다. 마켓도 위험을 감수하고 다녀와야 합니다. 나가서 활동하는 모든 것은 결국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행동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교회는 어떨까요? 문제는 사람들이 교회는 가도 되고, 안가도 되는 장소로 여기면서 교회를 피하는 현상이 오늘의 현상이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결국은 교회를 오는 행위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이 됩니다. 교회도 완벽하게 완전한 장소는 아니기에 위험의 요소가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필수 요소를 다녀오는 것처럼 교회를 와서 예배하는 행위는 안하면 안되는 필수 행위로 보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것이 믿음과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위험하니까 안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함에도 불구하고 마켓도 가고 일하러 가는 것처럼,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은 반드시 해야 하는 믿음의 요소입니다. 이렇게 믿음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용기없이는 또한 예배의 행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만일 평생 바이러스가 안없어지거나, 다른 어떤 위험 요소가 있다면 그때에도 예배를 멈추겠습니까? 지금도 지구상의 수많은 크리스찬이 박해를 받으며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멈추지 않습니다. 세상은 예배하지 않게 하는 모든 방법을 강구할 것입니다. 결국 우리의 믿음의 행동에는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이 생깁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하고 믿음의 용기를 낼 때에 하나님께서도 도우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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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Feb 24.2021 복 받을 사람
    몇 주간 교회 공사를 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고자 할 때에 역사하신 하나님께도 감사하고, 할 수 있도록 헌신하신 분에게 감사하고, 돕는 사역자들과 재주있는 일꾼들을 붙여주신 것도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몇 사람의 일꾼들이 와서 나름대로 수고하고 그 보수를 얻고 갔습니다. 그런데 눈여겨 보니, 돈을 잘 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보였습니다. 일의 난이도에 따라서 달라지기도 하겠지만 일을 하는 태도를 보니 고개가 끄덕여지는 여러 일들을 겪게 되었습니다. 일 잘하고,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은 그만큼 재주도 있겠거니와 자신의 일을 하는 태도가 그것을 다르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은 얼마나 일을 잘하는지, 재주와 경험을 가지고 일을 하는데 그냥 대충하지 않습니다. 나무를 자르고 운반하고, 다시 재고, 다시 자르고를 수없이 반복을 하는 그 과정을 해내는데 그냥 걸어다니지 않습니다. 걸어 다니는 걸음이 웬만한 사람 뛰어다니듯 다닙니다. 경험이 많아서 그러기도 하겠거니와 척척 일을 해 가는데 빈틈이 없습니다. 쉬지도 않습니다. 점심 시간 30분이 다입니다. 나중에 물어보니 목수일만 한 것이 아니라 다른 많은 일들을 하는데 30년동안 베가스에 살면서 돈을 많이 모았다고 합니다. 반면에 다른 일꾼이 순간 비교가 되었습니다. 일을 열심히 합니다. 쉴새도 없이 일을 합니다. 그래서 자주 여기에 불러서 일을 시킵니다. 열심히 일하는 일꾼인데도 다른 일꾼에 비하면 이 사람은 오히려 게으르게 보일 정도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이 사람은 자신이 열심히 일하는데 비해서 돈을 그리 모으지 못했다고 합니다. 늘 어려워 합니다.한 가지 배운 것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돈 벌만큼 일을 합니다. 걸음걸이 자세 하나가 다릅니다. 그래서 느낀 것은 ‘아, 돈 벌 자세가 되어있는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름대로 열심히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다른 사람만큼 되지 않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우리의 신앙생활과 비교가 되었습니다. 요즘 신명기서를 가지고 큐티하잖습니까? 지난 한 주간동안 계속되는 말씀은 ‘순종하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는다’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복을 받을 사람은 복받을 ‘짓’을 합니다. 아무리 미워도 ‘복받을 짓’을 한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그것이 맞습니다. 어떤 사람은 복받을 짓을 안합니다. 제가 어려서 입이 짧다고 꾸지람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먹을 것을 가려먹는다고 했습니다. 아이를 길러보니 나 닮은 아이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런 이야기합니다. ‘숟가락 뺏기 싶다’ 맞습니다. 찌질 찌질 밥을 먹으면 ‘야, 다됐다, 그만 먹어라’ 숟가락 뺃고 싶은 적이 있습니다. 마치 그것과 같습니다. 신앙생활하는 우리 교우들의 모습을 보면, 그런 분들이 있습니다. 그야말로 그 사람은 복받을 생각만 하는 것 같습니다. 저러니 주님이 예뻐하겠구나 싶을 때가 있습니다. 흔히 원망과 불평할 일도 그렇게 쉽게 다루지 않습니다. 복받게 생각하고, 복받게 행동합니다. 그런 사람은 복받을 짓은 복받을 일이 생겨야 하지 않습니다. 복받지 못했을 때에도 복을 벌어들입니다. 옆에서 보기에 저주같아 보여도 하는 생각과 행동을 보면 정말 복받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으로 살 때에 기뻐하십니다. 기왕이면 이제 나도 복받을 짓을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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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Feb 24.2021 약탈과 나 (Looting and myself)
    엎친데 덮친 격이라고 하나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서 균형적 삶이 깨진 가운데 불안과 고통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의 삶에, 이제는 흑인 폭력 사망이라는 사회적 이슈가 인종차별 철폐로 이어지면서 각종 시위가 난무한 가운데 우리가 사는 미국이 근자에 들어서 참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겨우 코로나 팬더믹으로부터 기지개를 켜보려고 발걸음을 뗐는데, 인종차별 철폐 시위를 틈타서 반 사회적인 약탈행위가 선진국인 이 나라에서 다시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적지 않게 충격을 받고 있습니다. 28년전 한인 사회는 당시에 로드니 킹 흑인 사건으로 인하여 약탈과 방화로 수많은 피해자가 발생한 트라우마가 있기에 더욱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날을 경험하지 못한 분들은 그냥 지나간 사건으로 기억되지만, 제 동생도 결혼 초기에 LA 흑인 폭동으로 말미암아 하루 아침에 신혼의 꿈도 제대로 못꾸고 전 재산을 아무런 보상도 없이 날려버리고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낸 아픈 기억도 있습니다. 그때 그 폭동이 있고 얼마지 않아서 제가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했는데, 불타버린 그 자리를 보여주면서 씁쓰름한 미소를 얼굴에 지었지만 세미한 경련을 보았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이번 사태는 또 다시 가슴을 쓸어내려야만 할 것입니다. 이미 또 다시 그런 피해를 입었다는 한인들도 제법 회자되고 있습니다.분명한 것은 선의의 목적으로 ‘인권’을 위한 시위를 하는 건강한 시민의식이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시위에 편승해서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이루려 이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이나, 이러한 사회적 혼란을 틈타서 방화, 약탈, 폭행등의 범죄하는 그러한 그룹들과는 엄격하게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건전한 시위는 보장되어야 마땅하지만, 불법과 폭력과 약탈은 엄벌하여 민주적 사회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러한 약탈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장을 담은 동영상을 우연히 시청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약탈을 하는 사람들앞에 피켓을 들고 안된다고 가로막아 보지만 수많은 군중들의 약탈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너도 나도 뛰어들어가 한 아름씩 안고 뛰쳐나오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신분노출을 피하려는 듯 뒤집어 쓴 사람들이 대다수였고, 태연하게 맨 얼굴로 웃으며 물건을 그러던 어느 순간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일 내가 저기에 있는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라면, 모든 사람이 다 물건을 들고 나오는 분위기인데, 나는 과연 양심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나도 저 사람들과 휩쓸려 다들 그러는데 나라고 무슨 성인 군자냐… 아무도 안보거나, 아무도 잡히지 않는데 나도 들어가서 신발 한짝이라도 가지고 나올까? 그런 유혹은 없을까요? 나도 저 사람들의 군중심리에 뒤엉켜서 떨어진 연필 한 자루라도 들고 나오지 않을까요? 아, 그것은 저 나쁜 인간들만이 하는 행위가 아니라, 내 안에도 그런 욕구가 혹시나 있을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해습니다. 남들 다하는데, 세상이 다 그러는데, 나라고 무슨 대책이 있나? 어처피 먹고 사는 것이 힘든데, 아, 재미로 그런 거지 뭐~~ 온갖 이유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뒤덮을 수도 있음이 느껴져 오면서 전율이 느껴졌습니다. 내가 만일 그 자리에 있었다면… 이것이 인간입니다. 오늘 내 신앙, 남들 다 그러는데, 이러면서 같이 그길 상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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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8
    아름다운교회 Feb 24.2021 교회가 가장 안전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우리 삶의 균형이 깨지고, 새로운 질서에로의 전환이 요구되는 현재의 상황입니다. 중국 우한에서 2019년 12월부터 일어나던 Covid-19이라는 이 해괴한 전염병이 돌더니 급기야 전 세계에 퍼지며 코로나 팬더믹(Corona Pandemic/코로나 대 유행)이라는 사태로 발전되었습니다. 용어를 정리하자면, 한 지역을 벗어나지 않고 유행하는 질병을 에피더믹(epidemic)이라고 하고, 그것이 대륙을 건너서 세계적인 유행으로 가는 것을 팬더믹(pandemic/대유행)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바이러스가 없어지지 않고 주기적으로 남아있는 상태를 엔더믹(endemic/풍토병)이라고 부릅니다. 질병학자들이나 의료인들은 지금 백신개발도 되지 않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불안한 마음을 드러내면서, 아무리 백신이 개발된다고 하더라도 언제나 유행병처럼 다시 창궐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 시작하며 엔더믹이라는 말, 즉 코로나 바이러스는 끝날 일이 아니라 말라리아나 댕기열처럼 풍토병으로 남아서 지속적으로 인류를 괴롭힐 것이라는 사실이 충분히 설득력을 얻고 있는 실정입니다.이러한 시점에서 다행히 교회의 예배가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다시 모일 수 있는 조치가 취해지면서 우리 교회는 6월 첫주부터 안전수칙을 정하고 다시 모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재감염이나 감염의 전파에 대한 염려로 인하여 예배에 참석하기를 꺼려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많은 사람이 모이다가 보면 감염의 위험성도 커지는 것도 일리있는 말이지요. 하지만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교회가 차라리 더 안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수천, 수만의 성도가 아닌, 모두가 서로를 잘 알고 있는 작은 규모의 교회는 누가 감기에 걸려서 콜록대는지도 금방 알 수가 있습니다. 그만큼 유대관계가 깊고,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말입니다. 지금까지 감사하게도 지난 2달이 넘도록 우리 성도들 사이에 감염자나 의심자가 그동안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최소한 우리 안에서는 안전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감염자가 발생한다고 해도 추적이 100% 가능합니다. 마켓이나 식당, 관공서나 의료기관등을 불특정 다수가 출입하는 경우에는 누가 감염자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불안합니다. 그러나 우리와 같은 경우는 다릅니다. 지금까지 모두가 안전했고, 안전수칙을 잘 지키면서 모인다면 그런 면에서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고, 설혹 감염자가 발생한다해도 추적이 가능하고 대처가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감염되었다고 하더라도 망하는 것처럼 생각하는데 그렇지도 않습니다. 감기처럼 왔다가 가기도 하고, 증상이 없이 지나가기도 합니다. 사망자들은 대개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교회만큼 안전한 곳도 드물다고 생각해도 허언 과장이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가 가진 두려움속에 ‘혹시’라는 의문 (의심) 때문입니다. 이 혹시라는 의심이 교회의 예배를 막도록 놔두지 않아야 합니다.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합니다. 감염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자기 스스로와 교회를 보호하려는 의식도 강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합리적 의심(?) 때문에 우리의 신앙의 터전이 무너지게 할 수 없습니다. 두려움을 극복해야 합니다. 문제는 우리 안에 가지고 있는 ‘두려움’이 문제입니다. 내가 안전하면 다른 사람도 안전합니다. 두려움을 극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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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7
    아름다운교회 Feb 24.2021 예배 재개를 앞두고…
    우리가 살고있는 네바다 주의 실업율이 전 미국에서 1위라는 통계(28.2%/미국 평균 14.7%)에서 보듯이 이번 코로나 사태는 우리의 실질적 삶에서 가장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렇게 몇 달을 끌고 오던 상황이 조금씩 문을 열게 되면서 의견들이 나누어지고 있지만 머지않아 정상적으로 돌아갈 길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추측하건데, 앞으로 이러한 류의 바이러스는 인간세상과 분리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남아서 공존할 것입니다. 마치 말라리아, 댕기열과 같은 풍토병이나 에이즈등과 같은 것들이 상존하며 우리 주변에 일상처럼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역시 수많은 변이를 거쳐서 없어지지 않고 살아남아 우리 주변에 상존하게 될 것이고, 우리는 그러한 위험에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입니다. 백신이 없다는 불안도 있지만, 백신이 나온다 해도 그렇습니다. 독감 백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독감이 걸리고, 그로 인해서 미국에서만 한 해에 만명 이상의 희생자가 나오는 것처럼 말입니다.중요한 것은 이러한 시기에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어떻게 대처하며 살 것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교회는 필수’임을 선언하면서 지역 주정부와 대립을 하고 있는 문제를 보면 모두가 힘들어하고 있는 상황에서 누군가를 겨냥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우리 모두의 안정과 안전을 도모하기 때문에 서로가 가진 입장과 법을 해석하는 차이에서 발생하는 우리 모두의 염려라고 보여집니다. 모두가 국민을 위한 것이고, 우리의 나은 삶을 위해서일 것이라고 믿어집니다. 이러한 시기에 이제 교회가 예배를 재개(reopen)하는 것을 두고서 여러 생각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연방법과 주법 사이의 갈등에서 오는 것처럼 우리가 어느 법을 지켜야 할 것인가는 각자의 판단에 따라 다른 해석이 가능하지만 예배를 재개하는 문제(우리는 닫은 적이 없지만)에 있어서 우리가 가장 신경써야 하는 것은 이것이 합법이냐 불법이냐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 공동체의 안전과 우리의 신앙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느냐를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믿기는 우리가 주법을 따를 것이냐, 연방법을 따를 것이냐가 아니라, 이러한 상황속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냐를 묻는 것이 성도의 기본적인 자세라는 점입니다. 저는 6월이면 세상의 법도 예배를 열것이라고 예측합니다. 그래서 준비해야 합니다. 위험하기는 호텔이나 식당, 마켓, 오피스, 모든 곳이 위험이 존재합니다. 그런 곳에는 가면서 교회 모임만을 금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마치 교회가 바이러스 전파의 온상지처럼 말하는 것은 대단한 편견을 만들어냅니다.우리의 관심과 결정의 합리성은 세상의 법이 규정하는 곳에 있지 않고, 우리의 신앙의 유익과 방향을 위해서 결정해야 합니다. 더구나 우리는 예배가 생명입니다. 안전을 최대로 고려하면서 우리의 예배는 반드시 실행해야 하는 영적 안전판을 마련해야 합니다. 안전의 요소를 최대한 담보하면서 우리의 신앙을 지키기 위한 집회를 막아서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우리 공동체의 안전은 우리가 지켜내면서 믿음의 길을 함께 갈 수 있는 힘을 모아야 합니다. 예배에는 타협으로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예배의 길을 가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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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6
    아름다운교회 Feb 24.2021 질경이 신앙이 부럽다
    우리가 이 교회로 이사해 올 때에 나무들이 제일 걱정이 되었습니다. 물이 공급되지 않는 상황이었는데 큰 소나무와 뽕나무들이 탐스러울 정도로 자랐는데 이들이 죽으면 경관이 많이 나빠질 것이 염려가 되어 우리 교인들이 손으로 물을 퍼날라 나무를 살린 경험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때에 한 가지 현상은 소나무에 무수히 많은 솔방울이 달려있었습니다. 알아보니, 소나무는 환경이 나빠지면 생존본능으로 자기 수명이 얼마남지 않았음을 알고 씨앗을 퍼트리기 위해서 솔방울을 많이 맺는다고 합니다. 한갓 나무에 불과하지만 자기 생명을 향한 이토록의 애착이 있음을 듣고 경이로움을 느낄 때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자손을 퍼트려 생명력을 전하는 그 힘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사람들의 손을 타지 않는 틈을 타서 교회 주변에 엄청난 잡초들이 자라서 교회가 마치 폐허처럼 보여서 마음이 불편하던 차에, 날씨가 선선한 아침을 이용해 조금씩 주변에 자란 잡초들을 애초기를 이용하여 제거하고 있습니다. 이런 작업은 상당히 위험한(?) 작업입니다. 돌이 튀어서 안경이 깨지고, 다치는 사고가 나기 딱 십상입니다. 그래서 중무장을 합니다. 긴 장화를 신고, 보호안경을 쓰고, 마스크를 하고, 가죽 앞치마를 두르고 작업을 하다가 보면 조금만 움직이다가 보면 땀이 저절로 나고 헉헉 댈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가 보면 몇 번씩 작업을 멈추어야 합니다. 이유는 그렇게 중무장을 했는데도 장화와 옷속으로 가시들과 잡초들의 씨앗들이 들어와 찌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신발을 벗고 빼내야 하는데 이 씨앗들은 이미 양말이나 옷에 달라붙었는데 얼마나 깊이 박히는지 모릅니다. 빼내는데 애를 먹을 정도로 Sticky하게 붙어 있습니다. 그것을 볼 때마다 저는 혼자 감탄을 합니다. ‘아, 이런 씨앗들도 자기 생명력을 보존하고 펼치기 위하여 이렇게 악착같이 달라붙어서 사는구나!’ 그냥 겉에 묻어있는 정도가 아닙니다. 양말이나 옷의 조직속으로 어떻게 파고드는지 그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신비할 정도입니다.이런 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에, 이런 잡초들도 살아남기 위하여, 자신의 생명의 끝이 온 것을 감지하고 이렇게 악착같이 달라붙어 자신의 생명을 남기려고 애를 쓰는데 우리는 얼마나 우리의 영적 생명을 위하여 하나님께 붙어 있으려고 무슨 노력을 하고 살아가나 싶은 것입니다. 예배를 온라인으로 중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일 아침 많은 노력을 통해 시편의 기도를 함께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신약통독을 매일 격려하고 있는데도 점점 참여하는 인원이 줄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귀찮으면 안합니다. 시간이 없으면 건너 뜁니다. 대충 대하고, 대충 건너뜁니다. 말씀이 귀에,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다른 것들이 아른거립니다. 이런 모습을 주님은 어떻게 보실까요. 만일 예수님도 우리를 대할 때에 그렇게 대충, 건너뛰고, 관심없고,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것처럼 우리를 대하신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잡초, 민초라고 부릅니다. 그것의 생명력은 집착입니다. 집요함입니다. 어떻게든 살아내려는 그 악착스러움입니다. 그 질경이 신앙이 부럽습니다. 나도 그래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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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5
    아름다운교회 Feb 24.2021 사기 당한 인생
    사기를 당해 본 적이 있습니까? 저도 몇 번의 경험을 했을 정도로 사기는 일반적으로 우리 삶에 유통(?)가능한 현실입니다. 이러한 사가 가능한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제 경험으로는 크게 두 가지인 것 같습니다. 첫째는 사기꾼들이 너무나 능수능란하다는 것입니다. 사기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기꾼들은 그냥 무작정 사기를 치지 않습니다. 먼저는 믿게 만드는 것입니다. 마치 신천지 교회의 추수꾼 전략이 그러하듯이 처음에는 신뢰할 수밖에 없도록 관계를 유지합니다. 아무도 사기일 것이라고 추정조차 못하고, 당하고 난 다음에도 마음의 상처가 큰 것은 그만큼 믿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두 번째 요인은 인생의 필요가 절박하다는 것입니다. 사기꾼들은 이러한 절박감으로 지푸라기라도 잡고싶은 마음을 가진 대상자들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한다는 것입니다. 때론 냄새가 나지만 너무나 절박한 심정에 안끌려갈 수 없도록 사기꾼들은 교묘하게 그 상황을 매니지합니다. 그래서 사기당할 수밖에 없습니다.이번 코로나로 인해서 모든 것들이 정지가 된 상황이 왔습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하다는 것들을 손을 놓고 보니 안되는 것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살만했고, 그처럼 중요하게 생각하던 가치관이나 삶의 방식들이 깨졌다고 애통했지만 사실은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 인생이 무엇인가에 홀려서 사기당한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마저 들기도 합니다. 일평생, 그것이 전부인줄 알고 목을 매다시피 살아온 우리의 바쁜 일상이 갑자기 멈춰섰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삶의 질서가 무너지고 세상이 뒤집혀지고 큰 일나는 것처럼 생각했는데 의외로 이렇게 정지되는 것도 나쁘지 않더라는 반성이 여기저기서 들려옵니다. 가장 소중한 것처럼 붙잡았던 우리 삶, 그것 없으면 큰일날 것 같은 일상의 우리의 삶이 멈춰 섰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지나온 많은 세월들이 무엇인가에 홀려(사기당해)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엄밀히 말한다면 사기당한 인생이 우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무엇인가에 속아서, 기성세대나 기성 지식 혹은 기존의 가치관 또는 세습된 문화속에서 살다가 보니 가짜인 것을 진짜처럼 붙잡고 살아왔다고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사기를 당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성경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라는 이 거대한 세속적 가치가 내가 사는 삶의 정체성을 만들어준다고 믿고 살아왔습니다. 이런 것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정욕적이고 마귀적이라고까지 합니다. 그런데 거기에 속아서 그것이 주는 달콤함과 유혹에 넘어가 마치 그것이 내 삶의 절대적 가치인 것처럼 살았던 것이라면 우리는 정말 이런 것들에게 사기를 당한 것입니다. 진짜 가치가 무엇인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그래야 다시는 사기를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런 시기에 잘못된 곳에 사기를 당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진리가 아닌 곳을 따라가다 보면 사기를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면 그것을 피할 길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역사를 다시 써내려가야 합니다. 코로나 이후에 말입니다. 이제 다시는 사기 당하지 않고 진리를 붙잡고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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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4
    아름다운교회 Feb 24.2021 인포데믹과 가짜뉴스
    근자에 대한민국 사람들이라면 촉각을 세우고 궁금해했던 것이 하나가 있었습니다.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의 생사였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궁금해하지는 않았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한국 사람이라면 많이 궁금했을 것 같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례적으로 20여일동안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터넷에서는 평양발 뉴스가 제작된, 김정은이 죽었다는 그럴 듯한 뉴스가 퍼져서 저도 여러 곳에서 여러 차례 영상을 받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가짜뉴스일 것이라’고 지적해 드렸습니다. 하지만 이상한 그 증후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추정을 해왔습니다. 그만큼 베일에 쌓인 나라이다가 보니, 국가 지도자의 근황조차도 감추어질 수 있는 폐쇄성에 놀라울 따름입니다 다행히(?) 김정은이 다시 방송에 나오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죽었네, 이상있네, 등의 예견을 했던 사람들이 머쓱해지고 말았습니다.그것이 어찌 김정은 사망설 뿐이겠습니까? 세계적인 대 유행인 ‘Corona 19 Pandemic’이 창궐하면서 정보가 너무나 많이 쏟아지는 바람에 사실이 아닌 것들이 사실처럼 떠돌아다니며 ‘InfoDemic’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졌습니다. 이 말은 과도한 정보가 사실 확인이나 진실이 아닌 것까지 나돌아 다니면서 가짜뉴스를 유발하고, 자기 신뢰가 이제는 진실이나 진리처럼 여겨지는 일들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더 무서운 것은 ‘인포데믹’입니다. 누구도 진실을 모르는 것입니다. 어느 것이 가짜 뉴스인지를 구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정보를 다루는 전문가들도 그 정보가 진실인지를 구별하기 위하여 극도의 주의를 기울인다고 합니다. 신뢰성 때문이지요. 그런데 일반인들은 자기 마음에 들면 그것이 가짜이건, 진짜이건 할 것없이 무조건 퍼트리고 보는 것입니다. 이번에 김정은 사망설도 그렇습니다. 진짜처럼 믿게 하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마치 그것이 사실인 것처럼 여기 저기에 올려놓아서 믿거나 말거나식으로 퍼트립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도 그렇습니다. 잘못된 정보나 소식들로 인해서 과도한 공포감을 가지고 사는 것이 우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다가 보면 우리가 양치기 소년을 만들어 내고, 그것으로 인해 인류가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병적 현상이 오늘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이러한 현상을 보면서 한 가지 드는 생각은 가짜뉴스에도 이렇게 쉽게 속아넘어가거나 무분별하게 받아들여서 이 사회의 병폐를 만들어내는데 우리 스스로도 한 몫을 감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영향이 진리인 말씀의 영향보다도 더 크게 작동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진리인 말씀에는 관심도 주지 않으면서 가짜뉴스와 같은 곳에는 바이러스보다 더 빠른 속도로 퍼져서 거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우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께 정직한 삶을 살고 있나요? 가짜 뉴스에는 그렇게 단순하게 반응을 하면서 진리의 말씀에는 얼마나 마음을 기울이는지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가짜뉴스를 따라가면 망합니다. 낯부끄러움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의 말씀을 따라가면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생명을 얻습니다. 영생의 길을 걷게 됩니다. 조금만 더 진리를 향해서 마음을 기울이며 삽시다. 그것이 살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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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Feb 24.2021 긴 병에 효자 없다.
    왜 갑자기 이러한 고사성어가 생각나는지 모르겠습니다. ‘긴 병에 효자없다’ 아무리 부모님을 극진하게 모시는 효자라 할지라도 부모가 병들었을 때에 그 병이 오래면 누구나 시들해진다는 말인데, 그것이 부모든 자식이든 부부이든 비슷한 것 같습니다. 물론 예외적으로 정말 극진하게 대하는 관계도 있습니다만 병이 오래되면 짜증이 날 법도 합니다. 애정이 식어서도 아니니다. 그것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요즘 코로나 19으로 인해서 ‘웃고픈’일들이 많이 생깁니다. 강제적으로 출근도 못하고, 여행도 못하고, 집안에 갇혀있다시피 하다 보니 사람마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통해서 짜증스러운 상황들을 면해보려고 기를 쓰는 것을 봅니다. 나름대로 기발한 방법으로 시간을 보내거나 무료하기 쉬운 일상을 어떻게든 견뎌보려고 몸살을 하는 모습이 오늘의 우리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부부싸움도 많아지고 신경질도 많아져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경우도 많아진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일상의 삶이 우리 인생에 얼마나 많은 유익이 있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너무나 ‘일상적(normal)’이어서 그 일상의 삶에 대한 고마움을 우리가 몰랐던 것입니다. 숨쉬는 것 하나, 밥 먹고 일을 할 수 있는 것 하나 따지고 보면 감사한 일이 아닌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긴 병에 효자가 없다고 하듯이 이런 사태가 오래 가면 우리의 일상의 삶은 고사하고, 이러한 상황이 만들어 내는 우리 삶의 또 다른 일상이 만들어져 새로운 패턴의 일상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기존의 가치관이 달라지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까지 익숙해졌던 삶의 가치관이나 방법이 전혀 다른 가치관을 만들어낼 것과 그러함 속에서 한동안 몸살을 앓고 나야만 하는 인류의 아픔이 생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입니다. 기성 세대에 속한 저에게도 현실의 삶에서 오는 이질감적인 문화나 가치관 때문에 고민을 참 많이하는 것과 같은 현상일 것입니다. 더 이상 진리가 진리가 되지 못하고, 지금까지 지켜 왔던 정의나 진실이나 가치관이 완전히 뒤바뀌면 더 큰 아픔과 혼란이 찾아오게 되며 그것을 잘 다스리지 못할 때 오는 disorder, 즉 그것이 정신분열증이 아닐까요?이러한 현상은 단지 삶에서만 오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신앙적인 것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온라인 예배’라는 기상천외한 방법을 도입하게 되면서 사람들이 긴급하게 만들어진 새로운 질서 속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런 예배가 오래 지속되다 보면, 우리의 예배 가치관도 달라져서, 구태여 교회를 찾지 않아도 예배할 수 있다는 생각, 예배드리는 곳을 ‘구경’했다는 것만으로 예배했다고 여겨지는 착각에 빠져서 신앙생활이나 교회의 본질적 가치관을 잃어버리는 것이 가능하겠다는 ‘불안감’이 작동하는 것은 단지 노파심에 지나지 않은 것일까요? 여기에 수많은 신학자들이 이제는 ‘당연한 논리’를 제공해 주고, 앞으로는 ‘교회가 필요치 않는 교인’이 양상되는 것을 생각하는 제가 너무나 나간 것일까요? 긴 병에 효자가 없다고, 이러한 일상의 변화가 길어지면 우리의 신앙생활의 패턴에도 변화가 생기고, 앞으로 이상한 예배,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한 교회가 생기는 것이 아닌가 싶은 이 맘이 노파심에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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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Feb 24.2021 ‘배불리 먹게 하실 때에…’와 ‘배고프게 하실 때에…’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입성을 눈앞에 둔 출애굽 2세들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닥칠 일들을 예견이나 하듯이 모세를 통하여 주의사항을 말씀합니다. 신명기 6장부터 이어지는 그 주의 사항중에 첫 번째에 등장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가서 정착하여 어느 정도 먹고 살 것이 있고, 배불리 먹는 때가 오게 되면 ‘여호와 하나님을 잊지말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뒤집어 놓고 보면 먹고 살만할 때에 인간에게 찾아오는 것은 감사하면서 그동안 살게 하신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기보다는 사방에 둘러쌓여 있는 이방신들에게 눈을 돌릴 것이라는 하나님의 예측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을 너무나 잘 아시고 사전에 예견하셨던 하나님의 음성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편하면 눈이 다른 곳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올 때에 쌍둥이 형 에서의 칼의 위험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 위기를 극적으로 넘긴 야곱은 세겜의 화려한 문화에 젖어서 평안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그의 하나 밖에 없는 딸이 세겜을 구경하러 갔다가 그만 강간을 당하는 위기를 만납니다. 다윗은 그의 궁정의 지붕을 한가로이 거닐다가 밧세바를 범하는 위기를 만납니다. 누구나 위기의 순간을 되돌아보면 영적인 감각이 무뎌지거나 해이되어 있을 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배부르고 등 따뜻해지면 다른 생각을 품게 되는 것을 하나님이 아셨던 것이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조심하라’고 경고하시는 것입니다.그렇다면 우리가 배고플 때에는 어찌해야 합니까? 요즘같이 어려운 시기에 빠져나갈 방법이 있는 사람들은 그나마 웃을 수 있는 기회이지만,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 없이 엉킨 삶으로 들어가 ‘배고파질 때’가 온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사람은 배가 부르면 하나님을 떠난다고 염려되는데, 배가 고프면 반대로 하나님을 찾을까요? 더 가까이 갈까요? 제 경험으로는 배가고파서 하나님께 더 매달렸던 적이 있었기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만, 가만히 요즘 우리의 주변을 살펴보면 아무리 배가 고파도 하나님을 찾는 이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굶주림이 느껴지고, 없으면 죽겠다는 위기의식이 있을 때에 사람이 간절해지는 법인데 그렇지 않은 삶의 모습을 보게 된다는 것이지요. 아브라함의 몸종 하갈은 유일한 자신의 분깃인 이스마엘과 함께 광야로 쫓겨납니다. 물과 양식이 떨어지자 그 아들을 위하여 통곡하며 웁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입습니다. 그것이 어미의 심정입니다. 사람은 배가 고플 때에 그 고난의 시간을 허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직도 하나님을 찾지 못하는 사람은 두 가지의 경우입니다. 하나는 자신의 절박함을 모르는 것입니다. 아직 극한 위기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안일함이 원인일 수 있습니다. 아직은 괜찮아, 누군가는 도와주겠지… 또 다른 경우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어떻게 할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여기 저기 도움의 손길을 기웃거리는 것보다는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이 방법인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영적인 눈이 가리워졌기 때문입니다. 배가 부를 때에 하나님을 잊지 말라고 경고하신 하나님은 배가 고플 때에도 하나님을 찾으라고 말씀합니다. 인생의 위기에 처해있다고 눈이 떠지는 순간에 우리는 우리의 진정한 도움이신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지금이 바로 그럴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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