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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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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Feb 24.2021 Covid 19 과 Resurrection(부활)
    부활주일입니다. 희디 흰 백합꽃과 산과 들에 찾아온 여러 아름다운 꽃들을 보면서 아무리 코로나 바이러스로 움츠러든 세상에도 꽃은 피고, 봄의 향연같은 연두빛 자연의 힘을 밀어낼 수 없었나봅니다. 아무리 거센 풍파가 몰아쳐도 하나님이 불어내는 생명력 앞에는 어떤 것도 막아설 수 없음을 보게 됩니다. 세상의 이치가 그러하듯이 우리의 삶의 이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태어나서 자기 분량의 몫을 살다가 갑니다. 그 분량속에는 행복, 기쁨, 감사, 보람, 회복등이 녹아져있고, 고통, 아픔, 절망, 낙심, 불안, 실패와 좌절들도 녹아져있습니다. 마치 명암(明暗)이 선명하게 대비되어 아름다운 그림을 이루듯이 이러한 일들이 교차하면서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내고 있음이 분명해 보입니다. 피아노 건반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8계음을 가지고 한 음, 한 음이 몫의 소리를 분명하게 내기도 합니다만, 그 중간에는 반음 키도 있어서 애매한 음을 냅니다. 그런데 한 음과 반음의 차이속에서 휘황찬란한 소리, 온갖 희노애락의 소리를 내면서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 내는 것과 같습니다.지금 코로나 사태로 모든 삶이 중지되었습니다. 시끄러운 공장의 소음도, 자동차의 매연과 소음도, 인간이 만들어내는 온갖 소음을 정지시키고 모든 것들을 Stop이 아닌 Pause를 시킨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특별한 선물이 아닐까요? 자기를 돌볼 시간도 없이 그저 브레이크가 없는 차를 운전하는 것처럼 살던 우리들 아니었나요? 기어 쉬프트도 할 시간도 없이 한 일분 일초라도 절약해서 빠르고, 바쁘게 살아왔기에 인간의 삶의 질의 개선을 위해서 살아왔으나 오히려 인간성을 잃어버리고 살게 한 산업문화주의의 세월속에서 산 우리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욕심은 휴식 없이 앞으로만 앞으로만 달려오다가 이번에 이렇게 코로나라는 복병으로 인하여 모든 삶이 중지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특별한 선물같아 보입니다. 이 휴지기의 시간마저 우리는 그냥 넘길 수는 없습니다. 적어도 이 시기에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만 하는 시간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 그리고 인생의 목적은 존재하는지 되짚어 보아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또 다시 방황의 길을 가게 될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이 휴지기에 바라보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 인생의 방향성과 같은 중요한 지표가 있습니다. 인생의 좌표가 분명합니다. 그것은 바로 ‘부활’입니다. 여기서 살다가 인간에게 반드시 찾아오는 끝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그것은 그 끝이 아닙니다. 끝이라고 생각하면 지금의 방식대로 살면됩니다. 나를 위해서 살다가 나의 행복이 목표가 되는 삶을 살면 됩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죽음으로 끝나는 세상이 아닙니다.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해진 것이요, 이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말합니다. 죽는 것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라는 말입니다. 그것은 부활로 시작합니다. 이 좌표를 잃어버려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은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생명의 주인되어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부활의 생명을 우리 믿는 자들에게 넣어주셨습니다. 우리는 아주 ‘잠시’ 이곳에 머물다가 갑니다. 나그네입니다. 부활로 다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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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Feb 24.2021 미생물, 코로나 바이러스의 능력
    코로나 바이러스 (Covid19)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카운티 안에서만도 1,278명의 확진자와 39명의 사망자가 나와서(4일자) 긴장을 늦출 수가 없는 시점에 와있습니다. 그나마 이 숫자도 이제 겨우 14,532명이 검사를 받았는데 검사자의 10%정도가 확진자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무서운 속도와 감염율로 우리의 마음에 깊은 두려움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공포스러운 바이러스가 주는 유익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유익은 지금까지 인간이 시도한 어떤 노력도 수포로 돌아갔던 일들을 가능하게 만든 것이어서 인간의 공허함을 다시한번 느끼게 합니다. 사회적 격리가 시행되면서 가족들이 대화할 시간이 생겼다고 합니다. 전쟁조차도 중단되고, 각종 공해가 줄어들었고, 물과 하늘이 깨끗해졌다고 합니다. 심지어 이단에 빠졌던 자녀들이 돌아오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인간이 해내지 못한 어떤 시도도 단번에 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해내고 있다며 반색을 하는 현상도 있다고 합니다.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고민이 될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인간의 숱한 노력을 거품으로 만들고 가장 효과적으로 단 한방에 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해결했다는 점입니다. 인간이 그렇게 수많은 노력과 비용을 지불해서 이루고자 했던 것들이 수포로 돌아가고, 단 한방에 이 작은 미생물이 해내었다는 것, 단 한방에 인간이 쌓아놓은 모든 노력과 업적을 수포로 되돌리고, 주저앉게 한 통한의 바이러스, 전자 현미경으로나 봐야 보이는 이 작은 미생물이 이렇게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을 줄을 이 세상의 어느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이 미세한 것도 우리의 삶을 그렇게 바꾸어놓을 힘이 있다면, 이 미생물을 만들고 지배하는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누가 너희를 애굽에서 구했느냐, 그 숱한 기적과 이사를 행하면서 그 백성을 사랑하고 가나안으로 인도하여 낸 신이 과연 누구냐? 바로 나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더냐? 참으로 우리를 할 말이 없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추궁이십니다. 그래서 신명기 7장에서는 ‘여수룬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너와 같이 구원을 얻은 백성이 어디에 있느냐’라고 되묻고 있는 것입니다.인간은 위대한 것 같습니다. 과연 자랑할만합니다. 달나라를 넘어 목성까지도 갔습니다. 위대한 과학적 발명이 쏟아져 나오고, 인간의 상상을 넘어선 업적들이 기적같이 쏟아지는 이 세대에 살면서 인간이 위대하다고 여겨왔습니다. 과거의 공상만화속에서 볼 수 있는 일들이 지금 눈앞의 현실이 되었습니다. 조금 있으면 내 스스로 운전대를 잡지 않아도 그냥 운전해 주는 무인 자동차쯤이야 어린애 장난감에 지나지 않을 시대가 옵니다. 그러한 시대에, 이 인간의 힘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이 한방에 날려 버린 것이 코로나 바이러스입니다. 인간의 모든 삶을 All stop하게 만들어버리는 무소불위의 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이사야2:22)고 지적합니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다른 것이 없습니다. 겸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이번 기회에 하나님 품에 돌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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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Feb 24.2021 진짜와 가짜가 드러날 때
    이런 아이러니가 또 있을까요? 한국의 000당에서 이 00 의원이 이번 총선을 위한 공천에서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탈당을 하여 기독교당으로 가서 비례1번으로 공천을 받았습니다. 자신은 기독교인이고 00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집사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당에서 비례공천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있지 않아 기독교당에서 공천을 취소했습니다. 이유는 그가 그동안 활동한 것은 기독교가 아닌 불교계에서 했던 것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 신자가 불교계에 가서 상당한 공헌을 한 것이 들통이 난 것입니다. 그래서 공천이 취소되었고, 이 사람은 다시 00경제당으로 옮겨서 거기서 다시 비례1번으로 공천을 받았다고 합니다. 며칠 사이에 3당을 왔다 갔다 한 것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쓰려왔습니다. 기독교인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교회를 다녔지만 국회의원이 되고 싶어서 시늉만 내고, 세례도 받고 집사도 되었지만 정작 신앙은 없었던 셈입니다. 국회의원이 얼마나 되고 싶었을까 동정도 됩니다만 결국 신앙은 국회의원 경력이 되고자 하는 것의 처세술에 불과했던 것입니다.초대 교회는 예수를 믿는 사실 자체만으로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신앙인이 된다는 것은 여간해서는 결단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는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고, 고립과 고난 그리고 가난과 죽음이라는 것에 직면해야 했기에 많은 사람이 기독교인이 되고 싶지 않아했습니다. 그러다가 주후 323년 콘스탄틴 대제에 의해서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된 이후에 기독교는 일취월장하여 폭발직전으로 달려갑니다. 누구나 기독교인이 되는 것을 자랑스러워했고 세례받는 것을 이력으로 여길만큼 영광으로 알았기에 교회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그때부터 교회는 진짜 위기에 빠지게 됩니다. 거짓 신앙인들이 교회에 발 디딜 발판을 마련했고, 누구나 쉽게 교인이 되었고, 그런 사람들로 인해서 교회는 결국 종교개혁이라는 철퇴를 맞이하게 됩니다. 쉬운 것이 정말 쉬운 것이 아니었는데,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할 교회가 넓은 문을 만들어서 가짜 교인들이 양성되면서 교회는 쉽게 무너지고 말았던 것입니다.불자(佛子)인지, 신자(信者)인지 구분이 안되기에 절에도 가고 교회에도 가고, 자기의 입신양명(立身揚名)을 위해서는 종교는 그저 사람들의 표를 얻을 수 있는 티켓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모습이 오늘 우리가 아닐까요? 교회안에는 알곡 신자도 있고 가라지 신자도 있다는 말씀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묻는다면 우리는 어떤 신자에 속할까요? 누가 과연 알곡이고 가라지일까요? 지금은 알 수 없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날에’ 곳간에 남느냐, 불속에 던져지느냐를 보면 알게 되어있습니다. 지금은 어려움의 시기입니다. 과거 신앙의 선조들이 핍박과 환란속에서도 그들의 믿음이 참되었음을 증거한 알곡신자로 우리에게 신앙의 본이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어떠합니까? 시험과 환란은 우리의 신앙을 검증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의 어려움을 통해서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로 인정받는 참된 알곡 신자로 커 나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그래서 이번 위기가 기회가 됩니다. 진짜와 가짜 사이가 존재한다면 그건 무엇을 의미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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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8
    아름다운교회 Feb 24.2021 한번도 걸어가보지 않은 길
    요즘 자나깨나 코로나 사태에 대해서 촉각을 세우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관심이 온통 여기에 있는 것 같아보입니다. 심지어 한국에서도 걱정스럽게 안부를 묻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우리의 이런 상황들에 대해서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소식들이 우리의 귀를 오염시키는 것도 사실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돌아가는 신문방송들을 마구잡이로 우리의 머릿속에 입력하다보면 정말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두려움에 우리를 사로잡히게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들은 두렵지 않은 상황이 없어서가 아니라, 두려움의 상황속에서도, 폭풍우가 몰아치는 어둠의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의 도우심과 우리의 믿음으로 이겨내어야 합니다. 마치 베드로가 용기있게 물 위를 걷다가 자기 주변의 파도를 보고 무서워 빠져가는 것처럼 우리도 그렇습니다.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손 내미시고 오라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믿고 걸어가야 합니다.저 개인적으로도 이러한 사태는 제 평생에 처음 겪는 일입니다. 베가스에 이러한 어려운 일들, 호텔과 식당들이 문을 닫아야하고, 모든 해서 이렇게 커다란 혼란과 아픔을 가중시키는 것처럼, 우리의 믿음에도 바이러스가 침투하여 제 기능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일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주는 두려움이 많고 큽니다. 온갖 전염으로부터 두려워 떠는 이 세상사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이런 바이러스는 두려워하는데, 우리의 영적 삶을 좀먹게 하는 영적 바이러스에 대한 대처는 왜 이리 소홀하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지금 당장 주먹으로 작용하고, 영적 바이러스는 법으로 작용하니, 주먹이 법보다 가까워서 그런 것일까요? 코로나 바이러스가 방역이 중요하듯이 우리의 믿음에도 방역을 해야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어디에 근거합니까? 말씀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무한한 신뢰야말로 세상의 어떤 바이러스로도 파괴될 수 없는 놀라운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제가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크게 회개했습니다. 믿음이 있노라 하면서, 실상은 전혀 믿음이 없는 내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고, 목사의 심령안에 믿음이 정금같지 않으니 그안에서 양식을 먹는 성도들의 믿음이 어떠하겠는지를 생각하니 아찔해서 몸둘바를 몰랐습니다. 그 믿음의 회복은 말씀에 대한 신뢰와 확신에서부터 출발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데 어떻게 믿음이 생기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자기 확신이나 자기 신념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이 믿음이야말로 믿음에 방역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약속은 성경에 얼마든지 살아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다. 두려움은 우리의 방역된 우리의 믿음으로 충분히 이길 수 있는 무기입니다. 온 세상이 이런 저런 이유있는 두려움으로 엄습해올 때에 정말 힘들게 하는 것은 심리적 방어선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심리적 방어선이 무너지면 공포에 휩싸이고, 두통, 불면, 불안 혹은 우울증에 빠지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폭동과 같은 돌출행동도 나타날 수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물과 소독약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상황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든든히 믿음을 가지고 이 상황속에 우리에게 보이실 하나님의 영광과 구원을 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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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7
    아름다운교회 Feb 24.2021 믿음을 방역하라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펜데믹(세계적 대 유행)이 선포되면서 각 나라들은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자국민 보호에 팔을 걷어부치고 있습니다. 순식간에 각 나라의 정치, 경제는 물론이고 사람들의 삶의 Pattern의 변화까지 일어나면서 순식간에 일상생활이 흐트러질만큼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들의 공포적인 심리로 생필품과 의약품이 동이나기 시작했고, 설마했던 사람들은 다소 당황스러움마저 느끼게 합니다. 행여 주변에 확진자가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확진자 동선을 점검하고 방역에 힘을 쓰는 등, 온 세계가 비상등을 켜고 있는 것을 보게됩니다. 이러한 현상은 이제 사회속의 일만이 아니라, 교회내부에게까지 깊숙이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것도 염려가 아닐 수 없습니다.이번 사태를 주의깊게 살피고 바라보면서 신앙인으로서 우리가 점검해야할 일들이 있다고 믿어집니다. 그것은 세상의 바이러스가 우리 삶에 침투해서 이렇게 커다란 혼란과 아픔을 가중시키는 것처럼, 우리의 믿음에도 바이러스가 침투하여 제 기능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일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주는 두려움이 많고 큽니다. 온갖 전염으로부터 두려워 떠는 이 세상사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이런 바이러스는 두려워하는데, 우리의 영적 삶을 좀먹게 하는 영적 바이러스에 대한 대처는 왜 이리 소홀하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지금 당장 주먹으로 작용하고, 영적 바이러스는 법으로 작용하니, 주먹이 법보다 가까워서 그런 것일까요? 코로나 바이러스가 방역이 중요하듯이 우리의 믿음에도 방역을 해야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어디에 근거합니까? 말씀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무한한 신뢰야말로 세상의 어떤 바이러스로도 파괴될 수 없는 놀라운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제가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크게 회개했습니다. 믿음이 있노라 하면서, 실상은 전혀 믿음이 없는 내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고, 목사의 심령안에 믿음이 정금같지 않으니 그안에서 양식을 먹는 성도들의 믿음이 어떠하겠는지를 생각하니 아찔해서 몸둘바를 몰랐습니다. 그 믿음의 회복은 말씀에 대한 신뢰와 확신에서부터 출발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데 어떻게 믿음이 생기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자기 확신이나 자기 신념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이 믿음이야말로 믿음에 방역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약속은 성경에 얼마든지 살아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다. 두려움은 우리의 방역된 우리의 믿음으로 충분히 이길 수 있는 무기입니다. 온 세상이 이런 저런 이유있는 두려움으로 엄습해올 때에 정말 힘들게 하는 것은 심리적 방어선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심리적 방어선이 무너지면 공포에 휩싸이고, 두통, 불면, 불안 혹은 우울증에 빠지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폭동과 같은 돌출행동도 나타날 수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물과 소독약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상황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든든히 믿음을 가지고 이 상황속에 우리에게 보이실 하나님의 영광과 구원을 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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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6
    아름다운교회 Feb 24.2021 두려움을 극복해야…
    당연히 근자에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관심사는 ‘코로나 바이러스’입니다. 세계 여러 나라들은 물론이고, 이제는 미국으로, 그리고 이곳 라스베가스까지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그래서인지 여기저기서 들려주는 소식과 안부 인사들은 이런 염려가 다분히 묻어나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이런 안부뒤에는 모두들 보이지 않는 두려움을 내포하고 있는 목소리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두려운 심리와 함께 사람들은 행여나 필요한 생필품과 의약품등을 준비하느라 분주합니다. 하지만 더욱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이러한 불안 심리와 함께 등장하는 ‘가짜뉴스’입니다. 어디에서 확진자가 생겼고, 어디를 다녔으며, 어느 식당, 어느 장소라고 하면서 특정하는 가짜뉴스들은 사람들에게 정확한 정보와 차분한 대책을 만들어주기 보다는 오히려 위축된 활동과 불안심리를 더더욱 자극하여 상황만 나빠지게 할 뿐입니다. 이로 인해서 지역경제와 인간관계 그리고 삶의 또다른 패턴과 경직된 심리를 부추기고 가짜 뉴스, ‘카더라~~’라는 통신원들 때문에 회복할 수 없는 치명적인 손해를 입히는 것도 우리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심지어 증상분별과 대책등을 의학상식처럼 무분별하게 전파하지만 알고보면 대부분 잘못된 정보에 지나지 않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은연중에 나도 이러한 가짜 뉴스의 전파자나 피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사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불안요인들보다 더 큰 문제는 그러한 문제뒤에 사람들을 조정하고 있는 ‘두려움, 공포’입니다. 이 두려움은 우리의 삶뿐만 아니라 생각과 삶의 방식까지 변종 바이러스처럼 퍼져서 또 다른 문제를 만들어 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럴 때 우리의 믿음을 점검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내 삶의 주인과 내 염려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두려움의 소식앞에서 가장 먼저 신앙생활의 핵심인 예배마저 타협의 대상이 되어버립니다. 정작 식당, 마켓, 은행, 학교, 관공서등도 어김없이 다니면서 교회의 예배생활까지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예배는 최후의 우리 삶의 버팀목입니다. 두려움을 핑계로 삼은 우리의 대적에게 이용당하는 것은 아닌지 진단해 보아야 합니다. 이미 확진자나 의심 환자들은 당연히 자기를 격리해야 합니다. 하지만 감염의 두려움으로 인해서 예배생활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우리의 믿음의 힘은 어디에서 작동되는 것일까요? 생각해 보면 두려움을 주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차를 타고 가면서도 사고 날 것은 두려워합니다.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에게서 어떤 감염이 일어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두려움 속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면 신앙인의 올바른 자세가 아닐 것입니다. 두려움을 이기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 즉 믿음입니다.저는 기도합니다. 지금도 바이러스의 실체 앞에 고통을 받는 이웃들이 있기에 그분들의 아픔과 상처를 하루속히 치유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울러 예배하며 주님앞으로 나오는 믿음의 형제, 자매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우리를 두려움에서 막아주시고,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저들을 지켜주시기를 말입니다. 두려움은 우리를 막아서는 장애물로 삼을 것이 아닌, 우리를 좀 더 성숙한 자리로 나아가게 하는 은혜의 방편으로 하나님이 사용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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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5
    아름다운교회 Feb 24.2021 하나님, 감사합니다
    벌써 교회가 창립된 지 11년을 맞이했고, 12년차를 향해서 걸어갑니다. 설렘과 두려움으로 시작한 작은 교회가 이젠 어느 덧 기반을 든든히 세우고 라스베가스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세계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담아내는 그릇으로 세워지고 싶은 열망을 가진 젊은 교회로 발돋음을 하고 있는 우리 교회가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작은 것이, 없어도 될 것이 하나도 없었던 세월이었습니다. 때로는 화려함과 든든함, 뜨거운 열정과 넘치는 소망으로 교회가 가득차는 은혜를 경험하기도 했고, 때로는 우리의 미숙함과 아픔으로 인해서 차가운 썰물을 경험하기도 했었습니다. 담임 목회자로 모든 일거수 일투족을 기억하고 있고, 내면의 아픔과 사정을 다 기억하고 있기에 우리 아름다운 교회가 지니는 특별함은 아마도 남다를 것 같습니다. 성도들은 그냥 지나갔을 진통을 온 몸으로 받아내며 남몰래 눈물 흘리며 기도했던 수많은 아픔의 세월들은, 성도들의 사랑과 헌신으로 하나씩 그 아픔과 눈물 자욱을 지워내며 한발 한 발 디디며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교회를 개척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뻔 했습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얼마나 사랑하고 아끼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모든 교회가 그러하겠지만, 우리 아름다운 교회를 생각하면, 제가 30여년 이상을 목회한 경험중에서 가장 뜨겁고, 가장 소중하고, 가장 하나님의 살아있는 역사를 쓸 수 있는 교회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강렬한 은혜를 맛보았고, 가장 많은 기적과 같은 사연들로 채워진 교회가 바로 아름다운 교회의 역사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교회를 더 잊을 수 없는 가장 소중한 추억이 만들어진 교회로 제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있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여기엔 사랑도 아픔도 함께 비벼져 거룩한 역사들이 써져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무엇이 가장 어려운 일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시작한 교회이다가 보니 재정적 여유가 늘 없었던 것이 어려움일 것 같았는데 사실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가난한 살림은 오히려 행복이었던 시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진 것은 없고, 항상 모자람뿐인 교회 살림이었지만 오히려 행복했다고 추억되는 것을 보면 부족함은 어려움이 되지 않았던 것이 분명합니다. 교회의 성장을 가로막는 느헤미야 시대의 산발랏과 도비야와 같은 사람들이 온갖 모함과 방해를 할 때에도 하나님은 아름다운 교회를 지켜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하나님 앞에 죄송하고 우리 성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목사의 부족함과 연약함입니다. 부모가 건강하고 행복해야 가정의 자녀들의 정서와 삶이 건강함과 행복함을 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목사의 건강한 영성과 감정 그리고 사역의 행복함으로 인해 양들에게 풍성한 꼴을 먹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립니다. 목사가 좀 더 좋은 자질과 영성 그리고 실력을 갖추었다면 우리 성도들이 더 잘 먹고 자랄 것인데 그렇지 못했다는 생각이 늘 자책하게 했습니다. 충분히 사랑하지 못했음이 늘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언제나 넉넉하게 우리의 부족과 연약함을 채워주신 지난날들이었습니다.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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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4
    아름다운교회 Feb 24.2021 유통기한
    오래 전에 들은 예화가 기억이 남습니다. 못은 써야 된다고 합니다. 쓰지 않고 방치해 두면 공기중의 수분과 염분으로 인하여 산화가 되어 부식이 일어나서 나중에는 쓸래야 쓸 수가 없게 된다고 합니다. 가만히 보니 땅에 던져진 못이 벌겋게 녹슬어 있어서 푸슬 푸슬 부서지는 것을 본 적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나는 안써서 가만히 모셔두었다가 녹슬어 없어지기 보다는 열심히 망치질을 당하고 쓰임을 받아 닳아서 없어지겠다라고 결의를 다지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정도의 차이가 있고, 관리의 차이가 있지만은 거의 모든 사물에는 ‘유통기한’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음식에도 유통기한이 명시되어있습니다. 약에도 물건에도 유통기한이 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유통기한, 그것이 인간의 수명이겠지요. 오직 사람만큼은 우리가 제조자가 아니니 유통기한을 명시하지 못한 것일 뿐, 우리의 수명이 제한 되어있어서 유통기한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어제 혼자 저녁을 해결해야 해서 무엇을 먹을까 하다가 찬장을 뒤져서 라면을 찾아냈습니다. 여러 종류의 라면이 있어서 이리 저리 생각하다가 오래 전에 사두었던 꼬꼬면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개봉을 하고 포장지를 보니 유통기한이 적혀있었습니다. 그런데 6개월이상 지난 것이었습니다. 먹어, 말어? 버려야 하나? 잠시 고민을 하다가 뭐, 6개월인데… 그러고서 먹었습니다. 찝찝한 마음으로 먹어서인지 맛은 별로였습니다. 그 나마 몸 상태가 좋지 않은데다가 더 나빠졌습니다. 그러면서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통기한내에 처리를 했어야 하는데 아깝다고 두었다가 이러는가 싶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우리 집에는 유통 기한을 넘긴 것이 수두룩합니다. 버리지 못하는 습관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냥 버리기가 아까워서 둔 것인데, 특히 약이 더 합니다. 작년에 유통기한 지난 것들은 과감하게 버린 것이 한 보따리인데도 아직도 가끔 눈에 띄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 주부들은 어떨까요? 냉장고에 음식을 사다가 놓습니다. 먹어야지 하다가, 사정상 다 먹지 못하고 냉장고 안에서도 부패되어 버린 음식이 하나 둘이 아닐 것입니다. 아마 모두가 경험한 이야기 일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유통기한이 되기 전에 다 먹든지, 먹지 못하면 이웃에게 나누어 주면 아깝게 버리는 일을 없지 않을까? 아깝다고 아끼고, 아끼고 또 아끼다가 결국 유통기한을 넘겨서 버려야 하는 아이러니… 주님은 어떻게 보실까요?그러고 보면, 우리 인생도 분명히 유통기한이 있습니다. 제조자이신 하나님만이 알 수 있는 기간이지요. 그렇다 하더라도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유통기한을 가지고 우리는 산다는 것입니다. 이 삶을 버려진 채로 살 것인가, 아니면 쓰면서 섬기면서 살 것인가의 결정은 우리에게 달려져 있습니다. 여러분의 건강, 물질, 시간, 재능, 모든 것을 어떻게 사용하려하십니까? 유통기한 내에 잘 사용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가만히 버려두고 있다가 어느 날 용도폐기하는 일이 일어난다면 이 얼마나 아깝고 통탄할 일이겠습니까? 유통기한이 다가오고 있는 저에게도 심각하게 느껴집니다. 썩이지 맙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영원한 가치에 우리가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니고데모, 그것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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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3
    아름다운교회 Feb 24.2021 어린 소녀 하나로 인하여
    열왕기하 5장에는 어린 소녀 하나가 잠깐 등장하고선 곧 사라집니다. 이 소녀는 이스라엘 사람인데 아람사람들이 사로잡은 포로이며, 이 소녀가 아람군대장관 나아만의 여주인을 섬기는 여종이 되었다는 이야기뿐입니다. 그런데 그 집 주인인 나아만은 지위는 고관이지만 나병환자였습니다. 하늘이 내린 병이라는 무서운 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이 주인의 모습을 본 이 어린 소녀는 자기 고향 땅에 있던 선지자 이야기를 꺼내며 주인의 병이 나을 수 있음을 알려줍니다. 역사는 거기서 시작됩니다. 나병을 앓고 있던 나아만에게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나병을 낫게 해주는 선지자가 있다는 이 말에 정신이 번쩍 들어서 왕명을 가지고 이스라엘에 건너갑니다. 그리고 엘리사를 만나서 극적으로 자신의 나병이 낫게 된다는 참 통쾌한 이야기가 실려져 있습니다.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금 중국에서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서 2월 14일자로 63,950명이 감염되었고 1,485명이 사망했습니다. 하루에도 100여명이 죽어나가는 그 죽음의 도시에서 누가 두렵지 않겠습니까? 그 도시에 만일 그 바이러스를 이길 수 있는 백신이 개발되었다는 소식이 있다면 그것은 복음 중의 복음일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백신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사람이 없다면 지금도 하루에 100명 이상이 죽어나가고 있는 이 암담한 현실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남의 나라, 남의 이야기인데도 이렇게 마음이 아프다면, 내 나라, 내 가족의 누군가가 그 백신에 대해서 듣지 못하고 죽어간다고 한다면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습니까?지난 주 어느 날, 한 숨을 자지 못하고 뜬 눈으로 밤을 새웠습니다. 그 발단은 우리 청년들을 생각하면서였습니다. 어느 식당에 식사하러 갔다가 그 주인과 대화를 하는 중에 아름다운 교회에 대학생들이 가장 많다고 소문났다고 하는데 참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이들이 다 어디로 갔을까, 그들은 왜 모이지 않는 것일까, 이것은 단지 대학생들 뿐이 아닙니다. 어른들도 그렇습니다. 교회가 11년을 지나고 있는데 이웃 교회들에는 사람들이 넘쳐난다는 소문이 나는데 왜 우리는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을까? 여러 가지로 생각이 들어서 잠을 이룰 수 없는 밤이 있었습니다. ‘복음!’ 복음이 사람을 살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하는데 왜 우리들은 우리의 교회를 자랑할 수 없을까? ‘우리나라에 당신의 병을 고칠 선지자가 있어요!’ 나병환자인 나아만 장군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소식이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이 소녀의 말 한마디가 나아만을 움직였는데, 우리는 왜 그보다도 더 좋은 복음인 기쁜 소식을 말한마디 못하고 사는 것일까요? 내가 내 교회와 내가 가진 복음인 예수를 자랑할 수 있는 이유를 찾지 못했다면 그야말로 교회를 어쩔 수 없이 다니는 것은 아닐까요? 그냥 친교하러 교회에 나오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는 이곳에서 ‘복음’을 누리고 있는가, 여기서 나에게 생명을 주는 기쁜 소식을 발견하고 있는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소녀의 이 한마디가 나아만을 움직였고, 나라를 움직였습니다. 우리의 입에서 어떤 말들이 나가야 합니까? 세상 사는 이야기도 필요하고, 삶의 지혜도 필요하지만 ‘복음’에 대해서 입을 닫고 있다면 우리는 심각한 질병에 걸려 있는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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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2
    아름다운교회 Feb 24.2021 두려움
    세계적으로 바이러스로 인한 공포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와 미국에서 발병한 독감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입니다. 미국에서는 벌써 1만여명이 사망하고, 중국에서는 몇 주 사이에 700명 이상의 사망자와 감염자가 나와서 온 세상 사람들이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회의가 있어서 LA를 다녀왔습니다. 별 생각 없이 버스를 타고 다녀왔는데 바로 옆자리에 기침을 하는 젊은 동양인이 함께 앉아왔는데, 자꾸만 기침을 하는 바람에 기분이 싸~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러다가….? 이제라도 마스크를 써야하나? 이런 저런 생각들과 싸우고 있는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정도로 마음이 복잡한데, 현장에서는 직접 사망하는 것을 눈으로 지켜보아야 하는 사람들의 두려움은 얼마나 클까 상상해 보았습니다.세계의 전염병 역사를 보면 정말 두려울 일이 많이 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기원전 430-427년에 아테네에서 전염병(흑사병, 홍역?)이 돌아서 아테네 인구 1/3인 10만여명이 사망했다는 기록에서부터 로마에서는 5백만명이 사망했다는 기록, 주후 500년대에는 유스티안 전염병으로 세계 인구의 1/4인 2,500만~5,000만명이 사망하고, 잉카제국이 총칼에 의해서 무너진 것이 아닌 전염병으로 멸망했다는 기록 등을 보면 정말 전염병은 두려운 존재인 것은 사실입니다. 이런 역사적인 배경을 가진 인류이기 때문에 전염병에 대해서 민감한 반응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삶과 죽음을 넘나들어야하기 때문입니다.아무리 죽음에 대해서 호언장담을 한다 해도, 인간은 근본적으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거의 공포수준입니다.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삶을 사는 것이 인간이라고 하면서도 아이러니하게 우리는 죽음을 의외로 준비하지 못하고 사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만큼 죽음을 가깝게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두려워는 하지만, 죽음을 준비하지 않는 이 현실이 모순입니다.성경은 이야기합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을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10:28). 바이러스는 두려워하는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하나는 알고 둘은 알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삶에 대한 경외감으로 가득찬 생활을 합니다. 작은 일 하나에도 우리는 아파하고 살아야 할 용기조차 잃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행할 마땅한 자세가 아닙니다. 오직 두려워할 대상은 세상이 주는 어떤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 이것은 공포가 아닙니다. 그것은 경외심에서 나오는 거룩한 마음입니다. 이 경외심이 없으면 막연한 불안감이나 두려움 때문에 쉽게 신앙생활이 왜곡을 받게 됩니다. 그렇지만 경건한 경외심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기쁨으로 새롭게 세우게 합니다. 나를 새롭게 하고, 정말 두려워할 대상을 바르게 알고 경건한 신앙생활을 격려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 주셔서 감사하며 이 땅의 것들을 놓을 수 있을 만큼 살아야 합니다. 이 막연한 두려움들을 딛고 일어나 하나님을 향한 경외함으로 새로운 영역에서의 변화를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이 두려움들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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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1
    아름다운교회 Feb 24.2021 니.모.를 찾아서
    아이들을 위한 에니메이션 ‘니모를 찾아서’라는 영화가 인기가 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 영화의 주인공 물고기가 ‘니모’였는데, 공교롭게도 이번 창립 11주년을 기념하여 ‘나의 영적 니고데모(니.모) 찾기 운동’의 이름이 같습니다. 니고데모는 유대인의 관원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어느 날 저녁에 예수님을 찾아와서 영생에 대한 관심을 보였던 사람입니다. 당시 유대 공의원들에게는 예수님이 눈엣 가시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유대교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젊은 예수가 곱게 보이지 않았을 것은 분명했습니다. 요 7-8장에는 그러한 날카로운 논쟁과 살의가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도 니고데모는 다른 공의회원들과는 달리 예수님을 변호하는 입장에 서는 것과 같아 보입니다. 예수님의 권위와 말씀의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오는 3월 1일에 있을 창립 11주년 감사예배를 드리면서 ‘나의 영적 니고데모찾기’행사를 하려고 합니다. 단지 우리만의 감사가 아니라, 교회의 존재목적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기에 우리만의 잔치에서 예수님이 전해지는 잔치로 바꾸어보는 행사입니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 서성이면서 ‘와서 나를 도와주세요’라고 외치는 바울시대의 헬라인이 있음을 알기에 이전 성전에서는 했던 행사였으나 이곳에 이사와서는 해보지 못했던 행사를 다시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베가스가 특별합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면 하나님, 예수님에 대한 관심은 가지고 있고, 과거에 교회생활을 해본 사람들이지만 아직 교회를 다니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좋은데 교회는 싫어하는 환자(?)들이 제법 많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교회의 잘못이기도 합니다만 교회의 잘잘못을 떠나서 현대 사회의 병폐와 사조임이 반영된 현상이기도 합니다. 마른 장작이 빨리 잘 타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영적으로 메마른 사람들이 많기에 예수를 전하는 것이 쉽지는 않아도 한번 예수님을 만나면 빠르게 그 영적 성장이 이루어지는 효과를 볼 수 있는 곳도 바로 이곳 라스베가스입니다. 그러기에 황금어장과 같은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과거에 이러한 활동을 해왔지만 여러 이유로 중단하고 있었는데 이제 다시 시작하려고 합니다. 교회가 전도의 교착상태에 빠진 것을 그냥 방치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부탁하신 복음전파의 사명을 거역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며 더 이상 방치할 수가 없음을 깊이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전도는 남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복음을 배웠으면, 그 복음의 능력이 무엇인지를 알았다면 우리는 전파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전파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이거나 복음을 아직 모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너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파하라’(딤후4:2) 하셨습니다. 지금은 복음을 듣고, 복음을 전파해야 할 때입니다. 나가서도 전파해야 하겠지만 앉아서도 전파해야 합니다. 시대가 달라졌습니다. 과거에는 나가는 전도였지만 지금은 앉아서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Social network를 통해서입니다. Google map, Googling activity, Facebook, Homepage등을 활용하는 방법도 좋은 도구입니다. 어떻게 하든 니.모를 찾아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 니모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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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
    아름다운교회 Feb 24.2021 배우고 다듬는 제직
    베가스에서의 교회생활을 하는 제직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차갑기만 합니다. 목회자들마다 자조섞인 신음을 하는 이유중의 하나는, 세워진 제직들의 역할과 책임 때문입니다. 교회를 운영하려고 일꾼을 세우는 과정속에서 검증되지 않은 사람들을 마구잡이식, 경쟁적으로 세운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체면 때문에, 교회에 대한 기여도 때문에, 나이 때문에, 이렇게 저렇게 직분자를 남발하듯이 세우니까 이것이 당연시 되는 것 같아서 정말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충분히 검증되고 훈련되고 되는 과정을 거쳐서도 바른 교회를 세워가는 것도 어려운데 명분에 밀려서 함부로 제직을 세우다가 보니, 이런 저런 웃지못할 슬픈 사연들이 일어나서 교회마다 오히려 고통을 받고 있는 현실이기도 합니다. 교회를 위해서 세워진 제직이 아이러니하게도 교회를 허무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비판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제직 서약을 하고서도 약속을 지키지 않습니다. 안수집사, 권사, 장로들은 임직을 받고도 교회를 헌신짝 버리듯 버리고 다른 곳으로 떠나버립니다. 중직자들이 교회를 떠날 때 고민하지 않고 떠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고민의 흔적이 철저히 자기중심적이어서 허망하기까지 합니다.우리 교회의 현실은 어떨까요? 제직의 사명과 역할을 처음부터 잘 배운 성도들은 없을까요? 한 교회에서 오랜 시간동안을 다니며 제대로 된 훈련과 양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경우도 있고, 아름다운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한 분들이 직분자가 된 경우에도 제대로 양육을 받지 못해서 제직으로서 나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한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한쪽은 이미 다 아는 것 같이 행동하고, 한쪽은 잘 몰라서 실수를 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다가 보니, 목회자는 한 방향으로 목회를 집중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우리 교회가 연초에 제직 성장 세미나를 가지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세상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도 일정한 시간을 두고서 재교육을 받습니다. 그런데 교회의 직분자들은 한번 임명받고 임직을 받으면 영원히 훈련과 양육이 필요없을 것 같이 생각하거나 행동합니다. 가당치 않은 일입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을 배워야합니다. 경건에 이르도록 훈련에 훈련을 거듭해야 합니다. 신앙생활 10여년 하다가 보면 모르던 것들도 아는 체 하기가 쉬워집니다. 일정한 교회생활의 법도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제직들이 행동하고 기도하며 사는 모습을 보면 그 교회의 영적 수준, 훈련의 수준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늘 배워야 합니다. 성령께 직접 배우겠다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교회안에서 질서를 주셨습니다. 각 교회마다 섬기는 정황이 다릅니다. 목회자에게 주신 그 때 그때의 비전이 다릅니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내 방식, 내가 은혜받은 대로 섬기겠다고 하기 때문에 교회에 혼란과 분란이 일어납니다. 그렇게 되면 피해는 고스란히 교회 즉, 성도들에게 전가됩니다. 배운 것을 다시 또 배워야 합니다. 습관이 될 때까지 배워야 합니다. 과거에는 이런 교육들이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간섭받기 싫어합니다. 그러면 교회는 정상운영될 수 없습니다. 배워야합니다. 배우는 제직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나도 어른인데 누구한테 배우겠습니까? 배움의 자리에 앉기도 부담스럽습니다. 그래도 배워서 다듬어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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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9
    아름다운교회 Feb 24.2021 경건의 훈련이 필요한 이유
    지금 호주는 불타고 있습니다. 지난 해 9월부터 무려 5개월동안 산불이 일어나서 전국이 그야말로 불바다가 되고, 대한민국의 면적만큼이 불타고, 28명이상의 인명피해는 말할 것도 없고 10억마리 이상의 캥거루, 코알라등의 야생동물이 희생되었으며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의 엄청난 피해가 일어나고 있다고 언론들이 보도하고 있습니다. 막상, 지진과 산불이 거의 없는 베가스에서 살다가 보니 그 피해가 얼마나 큰지 가히 상상이 되지 않는데 인터넷에서 산불지역을 보니 정말 섬뜻할 정도로 호주 대륙이 불바다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고통받는 이웃들이 상처에서 빨리 치유되기를 기도합니다. 이 호주 산불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분석을 내놓았는데 지구 온난화의 피해라는 이야기가 자주 등장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가지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이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일어나는 각종 재해 재난의 사건들을 가만히 조망해 보면 하나의 생각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자연재해들은 과거에도 있어왔고 지금도, 앞으로도 인간의 사는 주변에서는 그러한 일들은 반복이 될 것이지만, 요즘의 현상에 대해서는 관심을 더 두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각성이 일어나는 것은 그 영적인 각성입니다.우리가 세상의 종말을 예견하는 성경의 가르침을 볼 때에 두가지 현상을 말합니다. 하나는 지진등의 자연재해와 분쟁과 분규입니다. 그리고 시대의 사조변화입니다. 마태복음 24장과 디모데후서 3장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얼마나 이 시대와 성경의 증거가 닮아가고 있는지 조금만 살펴봐도 알 수가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복음의 증거완성입니다. 세상의 재해들은 마지막 때의 현상이지 끝은 아니라고 했지만, 복음의 완성은 진짜 세상의 끝이라고 주님은 말씀합니다. 그런데 이 두가지가 우리들의 눈앞에 환하게 펼쳐져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이러한 종말의 시대, 아니 말세지말(末世之末:끝중의 끝)의 시대에 살면서 무딘 감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아무리 심각한 현상을 보아도 과거에는 ‘덜컥’했는데, 하도 그러한 것들을 봐서 그런지 ‘아, 또?’ 그럽니다. 마치 예수님이 자신을 아무리 증거해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답답해 하셨던 것처럼, 이 시대의 징조들을 보면서 무감각하게 사는 우리들의 모습은 아닌가 싶습니다. 아니면 애써 그 마지막을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진짜 지혜는 ‘잊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술을 먹고 괴로움을 잊으려하지만 다음 날 아침에 현실은 없어지지 않은 채 그대로 다가오는 것과 같습니다. 진짜 지혜는 ‘해결 하는 것’입니다. 대비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경고들에 대해서 진지하게 듣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처하는 것입니다. 종말을 경고한 성경의 가르침을 종합해 보면 오늘의 보이는 현상들이 그냥 우연의 일치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더 그리하자’(히10:24~25)는 말씀처럼 주님앞에 서는 훈련을 해야합니다. 경건의 훈련은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제직 세미나를 하는 이유도 바로 그러합니다. 마지막을 주님의 일꾼으로서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를 살펴보는 일입니다. 이것은 단지 제직뿐만 아니라, 우리 모든 성도들이 같은 마음으로 준비해야 하는 일들입니다. 2020년은 주님이 기뻐하시도록 잘 준비하는 한 해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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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8
    아름다운교회 Feb 24.2021 공감능력을 키우는 교회
    어느 군인이 베트남 전쟁을 치루고 집으로 귀향을 합니다. 오는 공항에서 집에 계신 부모님에게 먼저 전화를 했습니다. 잠시 머뭇거린 그는 부모님에게 곧 뵐 것을 말하고 친구 한명을 데리고 가도 되는 지 물어보았습니다. 부모님은 흔쾌히 아들의 친구도 오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들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제 친구는 전투중에 부상을 당해서 팔 하나와 다리 하나가 없어요. 그리고 갈데가 없으니 우리 집에서 살게 해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부모는 난색을 표하며, 그런 사람이라면 우리가 형편이 안되어 받을 수가 없을 것 같으니 다른 곳의 도움을 받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거절을 했습니다. 아들은 아무 말없이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소식이 없었고, 얼마 후에 집으로 경찰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모처에서 사람이 떨어져 사망을 했는데 인적 사항을 살펴보니 당신의 아들인 것 같다고, 한 번 와서 확인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부모는 망연자실 한 채 달려가 영안실에 누운 아들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내 깨달았습니다. 그 아들은 팔 하나와 다리하나가 없는 전상자였고, 데려온다는 친구는 다름 아닌 아들 자신이었던 것입니다. 상대방의 입장을 서로 대화를 하고 이해를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너무나 아쉬움이 너무나 큰 이야기입니다. 공감되는 이야기이지요.교회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가 천사가 아닙니다. 모두가 예수믿어 성자가 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러하기에 차이는 있지만 미성숙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교회안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보면 왜 그리 치사하고 치졸한 문제 때문에 싸우고, 대적하고, 스스로 원수를 만들어 가는지 모릅니다. 서로에 대해 공감해 보려는 노력도 없이 내 편과 적군만 있는 것처럼 싸웁니다. 나는 옳고 상대방이 틀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감능력이란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는 능력입니다. 서로를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을 때에 갈등 구조속에 빠지게 되고, 교회는 은혜보다는 정죄와 갈등으로 인하여 점점 쇠락해 지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입니다. 그렇게 관계가 불편해지면 교회생활이 불가능해집니다. 결국 누군가는 교회를 떠나게 되는 악순환을 맞이하게 되고 맙니다. 이런 것이 정말 교회일까요? 예수님이 우리를 받으시고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받아 용서하고 용납하라고 주님은 가르칩니다. 그런데 우린 그럴 능력도 없습니다. 반목하고 견제하고, 미워하고 나누어집니다. 그런 교회를 누가 다니겠습니까? 우리가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주님이 우리를 받으시는 것처럼 우리가 서로 용서하고 받아야 합니다. 일방적이 아닙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평상시에는 서로에게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어려울 때에는 찾아가 공감대를 형성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런 것도 없이 어떻게 예수님을 사랑한다 할 수 있겠습니까? 원수를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목회자와 성도들이 서로 불행한 신앙생활을 한다면 그 교회는 접어야 마땅합니다. 서로가 행복해야 합니다. 행복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어야 믿음이 자라고, 말씀이 들어가 새롭게 되는 은혜를 체험하기도 합니다. 우리 아름다운 교회는 2020년 한 해에는 상대방을 이해해보기로 노력하는 일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말 한마디 가지고 싸우고, 표정하나 가지고 서운해 하지 말고, 상대방의 실수와 부족을 이해해 보려는 공감능력을 배양하는 해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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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Feb 24.2021 복음을 듣고 복음을 들려주라
    시간은 인간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약점입니다. 시간이라는 한계에 부딪쳐 결국은 누구나 손을 들 수 밖에 없는 존재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은 이러한 유한한 인생에게 복의 통로라는 위대한 선물을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세월을 아끼면서 살라고 유한한 인생이 시간의 개념도 없으신 하나님의 정해진 ‘카이로스(때)’를 이루기 위하여 이 한 해를 선물로 받은 것임이 틀림이 없습니다. 젊었을 시절에는 그냥 살면 살아지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유한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요즘은 세월을 아끼며 살라고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를 조금씩 이해가 될 것같습니다. 유한한 인생이 무한한 하나님의 존전에 섰을 때에 받아야 할 심판은 만고의 진리처럼 숭고한 가치를 뿜어내며 우리 앞에 놓여있음을 매일, 매월, 매년 염두에 두고 삶을 살아야 합니다.해마다 그래서 목표를 두고 개인과 교회가 가야할 길을 제시하는 것은 그저 시스템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은 아닙니다. 분명한 목표를 통해서 주님앞에서 섰을 때에 균형적 인생을 내놓고 싶고, 해마다 주님이 목회자를 통해서 주신 비전들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읽으며 그것들을 이루고자 힘쓰기 때문입니다. 2020년도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함께 걸어야 할 길의 목표를 ‘복음을 듣고, 복음을 전하자’라고 잡았습니다. 복음이란 그저 ‘예수믿으면 천국갑니다’라고 정의하는 것은 이미 낡은 가치이고, 온전한 것이 되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또한 ‘예수를 잘 믿는 것’이라고 하는 말도 온전한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깨닫는 것은 죄인된 인간이 얼마나 자기 죄로 인하여 비참한 인생을 살고 있는지를 깨닫는 것에서부터 그러한 인생이 가야할 궁극적 방향이 지옥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고, 그분의 사랑을 기대하고, 온전한 예수의 사람으로 변화되고, 영원한 절대 가치를 소유하는 복된 사람으로 사는 총체적 과정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정말 위대한 것입니다. 왜냐면 죄 아래 있는 우리 인생이 누구인지를 너무나 환하게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인생은 ‘복음’이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는 복음이 필요한 인생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복음이 우리 안에 들어와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닫는 사람은 그 복음을 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복음적 인생입니다. 지난 한 해를 지나면서 하나님께서는 그런 의문과 갈망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정말 복음을 알고 있는가? 바울사도도 로마 교회에 다시 들려주고 싶은 복음에 대해서 언급했던 것처럼, 우리 아름다운 교회에서도 복음을 다시 들어야 할 사람은 없는가? 그것이 바로 저 자신이었고, 바로 우리들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왜냐면 그저 복음을 예수믿고 천국가는 정도로만 이해했고, 그러다가 보니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이 없이 교회만 나오면 천국가는 줄알고 습관적 신앙생활에 머물고 만 껍데기 신자들이 버려진 조개껍데기처럼 즐비하게 교회에 쌓여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속에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복음을 들려주라. 그리고 복음을 전하라! 올 한 해에 여러분들은 지겹도록 어쩌면 복음에 대해서 들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자연스럽게 다른 이에게 복음을 전할 소원이 생길 때까지 복음에 묻혀 살아야 하겠습니다. 먼저 복음을 듣고 그리고 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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