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한다는 것 > 목회칼럼(박대우목사)

본문 바로가기

목회칼럼(박대우목사)

September 08, 2019 . 아름다운교회 용서한다는 것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아름다운교회
댓글 0건 조회 2,191회 작성일 21-02-24 13:03

본문

“용서란 남이 우리에게 진 빚을 마음이나 장부에서 떼내어 멀리 보내버리는 일을 뜻한다” 성경을 연구하는 학자가 용서라는 단어를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보았더니, 이렇게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신약에서 용서하다로 번역된 단어는 ‘아피에미’라는 단어인데, ‘히에미(보내다)’라는 단어에 접두어 ‘아포 (여기로부터 떨어진 곳으로)’라는 단어를 부여서 ‘멀리 보내다. 놓아주다. 허락하다’라는 뜻이되어 신약에서 주로 ‘용서하다’라는 말로 쓰였다. 용서하다는 영어단어인 forgive라는 단어는 그래서 give(주다/내놓다)라는 말앞에 for(떨어져, 반대로, 완전히)를 붙여서 용서하다, 탕감하다는 말이 디었다”

우리는 흔히 용서라는 행동을 ‘생각하지 않는 것, 잊어버리는 것’으로 여기는 것 같습니다. 받을 빚을 탕감해주는 것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성경은 용서라는 것을 그렇게 보지 않고, 남이 나에게 남긴 빚을 마음으로부터 떼내어 멀리 보내는 행위‘라고 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다시 생각하지 않는 것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이미 멀리 떼내어 보냈기에 지금 내게는 아무 것도 남아있는 것이 없다는 선언인 셈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이것들이 내 마음 어느 곳에 저장되어 있다가 그 상황이 재현되거나 비슷한 일이 벌어졌을 때에 마치 트라우마처럼 다시 살아나서 우리를 괴롭히게 되거나, 용서는 온데간데 없어지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일이 반복되는 것은 그 용서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의 반증일 것입니다. 인간의 용서는 그래서 불완전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용서는 그래서 완전한 것 같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렘31:34)고 하였고, 시편의 기자도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다”(시103:11)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것이 바로 진정한 용서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살아온 삶만큼이나 상처받은 것들이 많은 것이 우리의 인생이지 싶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상처만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어가니 이제는 우리가 의식과 무의식가운데서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었는지도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우리가 남에게 받을 빚은 죽어도 잊지 않고, 남에게 줄 빚은 쉽게 잊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떤 때에는 정말 받은 상처 때문에 치를 떨기도 했을만큼 아파했고, 또 남에게 준 상처는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지나간 일이 수없이 많았다는 것을 깨닫기도합니다. 우리는 주님앞에 서게 될 날이 멀지 않습니다.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의 가르쳐주신 기도에도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남의 죄를 용서하오니,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이 나를 용서하신 것처럼 남의 죄를 용서해달라는 것과 반대의 개념입니다. 사랑은 주님이 먼저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하라고 하셨지만, 용서는 내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는 원리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군가 그렇게 말한 것이 생각납니다. ‘사랑하기에도 모자란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시간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기에 용서는 먼 훗날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얼마 남지 않다고 생각하니 용서하고 싶고, 용서받고 싶습니다. 떠나 보내야합니다.


© Areumdawoon Church ALL RIGHT RESERVED. Powered by CROWN MINIST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