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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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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Jan 13.2019 설화(舌禍)
    나이를 먹어가면서 삶이 점점 쉬워 보이지 않습니다. 작지 않은 세월을 살아왔고, 녹녹하지 않은 삶을 살아왔지만 갈수록 삶이 쉬워 보이지 않습니다. 그 중의 어려운 점은 바로 ‘언어생활’입니다. 평생을 말하는 설교자로 살아왔습니다. 그러면 말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이골이 났을 법합니다. 그런데도 말한다는 것은 여간 조심스러운 부분이 아닙니다. 때로는 말 한 마디 잘못해서 인생의 지옥 같은 나락을 갔다 온 적도 있습니다. 내 의도는 그것이 아닌데, 전혀 엉뚱하게 해석되어서 주워 담을 수 없을 어려움을 당한 것도 있습니다. 평생 상처가 되고도 남는 아픔을 겪기도 하였습니다. 그럴 때면 차라리 입을 닫고 살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말 하나로 관계를 깊게도 하고, 관계를 허물기도 합니다.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잘 하다가도 말 한마디 삐걱해서 삶의 바퀴가 다 타버린 경우가 허다합니다. 말로 화를 자초하기도 하고, 말 때문에 공동체가 힘들게 되는 경우를 종종 보아왔습니다. 이것을 설화(舌禍)라고 부릅니다.특별히 개인 생활이 아닌 공동체를 이루는 교회에서는 더더욱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생각 없이 한 말, 걱정해준다고 한 말, 배려해 준다고 한 말, 사실을 사실대로 말한다 해도, 이런 말들이 비수가 되어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를 내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어김없이 남의 말을 듣고 판단했으며, 당사자 앞에서가 아니라 본인이 없는 곳에서 뒷담화(?)로 한 이야기로 인한 것들로 인해서 생겨진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혀의 위험성을 아주 신랄하게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혀는 불이요…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약3:6)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입을 주시고, 그 안에 혀를 두셨습니다. 입은 의사를 전달하는 일에, 먹고 건강을 유지하라고 하는 거룩한(?)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더구나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언어생활에 대해서 성경은 이렇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4:29)라고 합니다. 즉, 우리의 입을 가지고 생의 바퀴를 불살라 버리는 악한 일에 쓰임받는 것이 아니라, ‘덕을 세우고, 은혜를 끼치게 하라’는 이 거룩한 사명에 부름을 입은 것이 바로 우리의 입입니다. 이러한 일을 위하여 우리 교회에서는 본인이 없는 곳에서는 그 사람에 대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목장에서 서약을 했습니다. 하지만 걱정을 해준다고 한 말들이 돌고 돌아서 본인의 귀에 들어가서 결국 관계를 망치고 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가정은 상처를 받고 떠나기도 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아직도 그런 문제를 가지고 가슴앓이를 하는 분도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허물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지만 허물을 덮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허물을 들쳐 내는데 가장 흥분되는 것 같습니다. 좋지 않은 습관입니다. 우리의 입에 재갈을 물려, 칭찬하는 말이 아니라면, 아무리 친한 사람들 앞에서라도, 아무리 걱정해 주는 말일지라도, 본인 앞에서가 아니면 하지 않아야 됩니다. 너와 나만 아는 비밀은 절대로 없습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내 귀에까지 들어옵니다. 그럴 때 실망이 됩니다. 설화(舌禍)에서 벗어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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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Jan 06.2019 말씀이 육신되어 사는 삶
    새해 첫 주일입니다. 유난히도 추웠던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고, 과거의 시간을 뒤로 한 채, 우리에게 유의미(有意味)한 시간을 새롭게 맞이한 것입니다. 지난 한 해에는 ‘세상에 빛 비추는 교회’라는 목표를 정하고 달려왔습니다. 얼마나 우리가 세상의 빛이 되었는가, 누구에게 우리는 빛으로 살았는가 생각해 보면 많은 후회가 앞서기도 합니다. 목표를 정했다고 그 목표가 다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겠지만, 개인과 교회가 조금이나마 빛된 삶을 감당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하기 위하여 우리 교회는 그러한 동력을 한 해 동안 얻었다고 저는 믿습니다. 빛이 아닌 이상, 우리는 빛을 반사해 낼 수 있는 반사체라도 될 수 있어야 하기에, 빛되신 예수님을 품는 은혜의 역사가 지난 한 해에 부어졌다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제는 그 빛되신 주님을 바라보며 또 한 해를 살아야 할 것입니다.기도 중에 이번 2019년도의 교회의 표어를 정했습니다. “말씀이 육신되어 사는 삶”입니다. 은혜가 무엇이었습니까? 기도시간에, 찬송시간에, 설교시간에 가슴을 타고 내리는 뜨거운 그 무엇이었을까요? 우리의 뺨을 적시는 눈물이 은혜의 징표였을까요? 그러한 것들은 단지 ‘느낌’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진짜 은혜는 그러한 감정이 아니라,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는 생활, 즉 말씀을 살아내는 삶이 바로 은혜받은 증거가 됩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요14:21)라고 말이지요.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느낌이나 감정이 아니라 계명을 지키는 것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은혜 받았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은혜 받은 증거는 은혜받았다고 말하는 것에 있지 않고,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작년에 우리는 많은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그 분이 주시는 은사를 알게 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가게 되었으니, 이제는 우리가 말씀으로 돌아가고, 말씀을 순종하는 삶을 살기 위하여 전심전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바울 사도 역시 영적인 아들 디모데에게 “너의 진보(성숙함)를 나타내라”(딤전4:15)고 하였습니다.말씀이 육신되어 사는 삶, 이것을 위하여 우리는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이 말은 성경공부를 통하여 우리가 성경지식을 더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몰랐던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도 아닙니다. 요한 사도는 ‘말씀이 하나님이시고, 그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요1:1,14)고 하였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바로 하나님이셨고, 그 분은 우리 인생의 주인이신 분이셨습니다. 이것을 가르치신 분도 성령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이 육신이 되신 이 놀라운 사건이 바로 하나님의 은총의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 육신의 옷을 입으셨다는 것은 사람이 바퀴벌레가 되었다는 것보다 더 한 것입니다. 그처럼 낮아지고 낮아지신 것입니다. 육신으로 오시다 못해,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으셨습니다. 죽음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죽음의 지배아래까지 낮아지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말씀이 육신되신 삶입니다. 그러한 삶을 산다는 것은 어쩌면 기적에 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 삶을 사는 것이 은혜받은 사람의 삶입니다. 한 해를 달려갑니다. 주님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닮았으면 좋겠습니다. 한 해동안 승리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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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Dec 30.2018 한 해를 돌아보며
    오늘이 2018년에 드려지는 마지막 주일입니다. 내일이면 우리는 송구영신 예배를 통해서 한 해를 보내고 맞는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이 시간을 맞으면서 우리 모두는 시간이라는 엄숙한 진리앞에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한 것이어서 어느 누구도 거스릴 수가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공평한 시간앞에서 우리가 대하는 태도는 너무나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후회하기도 하고, 절망에 빠지기도 하며, 때로는 감격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합니다. 다양한 감정이 쏟아질 수 있습니다.지난 한 해 2018년은 우리 교회에는 축복의 한 해였다고 생각이 됩니다. 이곳 성전으로 이사를 와서 5년 남짓한 시간을 ‘공사모드’로 살아왔습니다. 더욱이 지난 2018년은 공사에 집중하여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 시간들을 보내야했습니다. 새벽예배가 마치면 청바지에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늦은 밤시간까지 공사를 해야하는 날들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고, 쉬는 날도 없이, 몸이 아파도, 쉴수가 없는 시간을 고통스럽게 보내온 지난 한 해였습니다. 이제 한 해를 보내는 이 시간에는 모든 공사를 거의 마무리하고 inspection을 기다리고 있는 요즘은 그리 편하게 느낄 수가 없습니다. 이 초기 단계에서 공무원들에게서 받은 어려움을, 다른 공무원의 배려로 아주 순조롭게 마무리를 할 수 있게도 하셨습니다. 재정적인 문제도, 성도들이 부담을 갖지 않으면서도 순조롭게 조달되어서 모자람이 없이 마칠 수 있게도 하셨습니다. 하지만 목회는 목회일정대로 돌아가야 하고, 공사는 공사대로 해야하는 이 빠듯한 시간속에서도 하나님은 그 시간들을 고통으로만 남게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흐릿하게 남아있는 은혜의 불을 지난 다니엘 특새를 통하여 꺼져가는 촛불을 횃불로 타게 하시고, 우리가 가야될 방향이 어디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고민하게 하셨습니다. 사탄은 교회가 저절로 술술 풀려가도록 절대로 그냥 방관하지 않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받은 은혜의 불을 끄고자 하는 사탄의 바람이 강해지는 법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겸손과 사랑을 배우게 하셨고, 참된 교회의 방향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사람은 절대로 아프지 않고는 성숙하지 않는 존재인 것 같습니다. 아픔 속에서만 피는 꽃이 있었습니다. ‘연약함’속에서만 보이는 ‘강함’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동안 아팠던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꽃을 피우기 위한 하나님의 작전임을 보게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계획하심은 언제나 선하셨습니다. 그 분께 영광과 찬양을 돌려드리고, 참 감사를 무한히 올려드립니다.한 해를 보냅니다. 하지만 지나가는 이 시간을 그냥 흘려만 보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후회와 회한의 시간으로만 남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상처도 많았지만 남은 상처가 다시 덧나게 하는 일을 반복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만나고 헤어짐도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그 분의 만드신 길을 따라 만들고 고민하는 시간만이 우리에게 의미가 있습니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사는 우리 모습 때문에 속지 말고, 정말 나를 이곳에 보낸 하나님의 뜻을 고민하며 그 분이 원하시는 삶을 살고자 하는 결단이 일어나는 연말연시가 되기를 고대합니다. 나를 향한 주님의 뜻을 갈망하며 한 해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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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8
    아름다운교회 Dec 23.2018 성탄선물
    먼 나라에서 선물이 왔습니다. 그런데 그 선물은 너무나 먼 길을 돌아왔는지 포장지는 이미 걸레처럼 더러워졌고, 뜯기워졌습니다. 내용물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누가 봐도 선물이라고 부르기에는 초라해보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마다 눈여겨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사53:2). 그것이 선물의 모습이었습니다. 아무 가치가 없어 보이는 선물, 그런데 그 선물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선물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인류는 그 선물을 받아들고 당혹했습니다. 선물인데 선물같지 않은 선물 때문에 당황했습니다. 그래서 헤롯은 그 선물을 없애기로 다짐합니다. 많은 사람들도 그 선물을 천박한 것으로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불편한 마음으로 대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엔 폐기처분하기로 결정하고 골고다로 보내버렸습니다. 선물이 선물되지 않았던 것입니다.그 선물은 인류에게 ‘복음’이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그 선물을 거절했습니다. 왜냐면 ‘흠모할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눈에 귀하게 보여야 믿으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과시를 합니다. 명함을 파서 내가 누구인지를 드러내기도 합니다. 좋은 차, 큰 집을 사서 내가 얼마나 존귀한지를 드러내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있어야 선물가치를 인정해 주는 이 시대의 맘모니즘을 따라서 삽니다. 눈에 그럴 듯해야 조금이라도 믿어주고, 존중해 주고, 알아줍니다. 그런데 막상 뜯어보니 얼마나 초라한 것들이었는지요. 그 모습의 화려함이나, 언어의 출중한 설득력 앞에 한두 번 속은 게 우리가 아니었던가요?예수님은 인류에게 보내진 하나님의 초특급 선물이었습니다. 그 선물을 받고, 그 선물을 가슴에 품은 사람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평강과 은혜가 있었고, 구원의 기쁨으로 인생이 바뀌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 선물을 받은 사람치고 망한 사람이 없습니다. 망해 보이는 것 같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망한 것이 아니고, 죽은 것이 아니고 살아났습니다. 그래서 이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입니다.성탄절이 다가왔습니다. 선물문화에 젖은 우리들은 저마다 선물을 주고받으며 기쁨과 감사를 나눕니다. 새로운 선물, 멋있는 선물을 건넵니다. 그러나 정작 주어야 할 선물,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선물을 건넬 때가 많습니다. 성탄절에는 선물이나 산타가 주인공이 아니라, 우리의 참된 선물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참된 선물의 중심이 되기를 다시 한 번 소원합니다. 예수없는 인생, 예수없는 교회, 예수 없는 신앙이 판을 치고 있는 이 시대를 바라보면서 예수님밖에는 소망이 없다는 깊은 탄식으로 구원을 기다리던 암흑의 백성이 있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400여년동안 종살이 하면서 고통스럽게 부르짖었습니다. 애굽에서의 고통은 결국 하나님의 귀에 들려졌습니다. 만일 이 고통이라는 아픔이 없었다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불렀겠습니까? 그들의 애굽 이민생활이 행복했더라면 하나님을 찾기나 했겠습니까? 이 땅에 예수님은 가난한 자, 억눌린 자, 신음하는 자들을 위해서 오셨습니다. 주님을 찾는 사람에게 선물은 크게 다가옵니다. 이 선물이 나에게 큰 선물로 다가서는 이번 성탄절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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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Dec 16.2018 Rule은 같아야 합니다.
    엊그제 살고 있는 집의 association에서 봉투가 하나 날아왔습니다. 몇 달 전에 regulation을 바꾸기 위해서 투표를 했는데 당신을 포함한 1000여명의 yes가 필요한데 그것이 없어서 절망하고 있으니 속히 투표지에 기표를 해서 보내라는 일종의 독촉장이었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다는 읽어보지 못했는데, 그 사용된 문구가 상당히 위협적이었습니다. 당신이 투표용지를 보내지 않으면 그 자체가 no라는 의미이니 그러지 말고 yes로 찍어서 보내라는 것입니다. 아니, 민주사회에서 이런 법이 어디 있는가 싶었습니다. 내용이 상당히 협박적입니다. 이 편지를 무시하지 말라, 당신이 응답을 안하면 사람을 보내야 하니 비용이 늘어날 것이다, 우리는 1000여개의 yes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편지였습니다. 상당히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Yes or No를 선택해 달라는 것도 아니고, 자기들은 Yes만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아마, 제가 보낸 투표용지도 못 받았던 것 같았습니다. 투표를 안하면 그냥 no라고 알면 되지 않을까요? 주민들의 의견을 묻는다면 정중하게 물을 것이지 왜 답을 강요하는지 정말 불쾌한 생각이 들어 혼내주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평상의 rule을 벗어났기 때문입니다.사회생활을 할 때, 보이든, 보이지 않든 어떠한 rule이 작동을 합니다. 법으로 정한 rule이든, 통념상의 사회관습이든, 그 사회를 끌고 가는 규범(rule)이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가 될 때 갈등의 요인이 줄어들고, 어려운 일을 피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작동이 잘되어야 평안하기도 합니다. 이런 것들은 운동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규칙을 가지고 있어야 운동이 운동될 수 있고, 갈등도 없이 재미있게 운동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규칙에 다른 운동의 규칙을 적용하면 재미도 없을 뿐만 아니라 다툼과 분쟁의 여지만 남을 뿐입니다.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공통적인 규범(rule)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그 규범은 바로 성경입니다. “내가 말하고, 주장하고, 행하는 것들이 과연 성경적인가?”라는 것입니다. 답은 거기에 있습니다. 아무리 사회와 세상이 좋아하고, 그것이 아름답고 선하게 보인다 할지라도 우리는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행하기에 과연 성경적으로 맞는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한 길을 걷고 있습니다. 목회자에게서 교회의 어른들이나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한 목표를 위하여 한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각자가 다른 규칙을 가지고 적용한다면 그것은 다툼의 근원이 됩니다. 대체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사회의 영향력이 큰 사람들의 말이나 행동을 따라가려고 합니다. 좋은 것은 본받아야 하지요. 하지만 그럴 때 조차에도 과연 그것이 성경적이냐를 물어야 합니다. 왜냐면 사람마다 각자가 다른 철학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목회철학이 있습니다. 그분들은 그것에 의해서 하나님의 주신 목양지에서 그들의 목회철학을 구현하면서 목회를 합니다. 그런데 그 목회철학을 우리 교회에 적용하라고 대들면 안됩니다. 왜냐면 목회의 그릇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분별해야 합니다. 보기에 좋은 것들이 정말 좋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들의 철학에 따른 것이냐, 성경적인 것이냐를 먼저 따져야 합니다. 그 rule이 다르면 안됩니다. 세상이 참 복잡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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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Dec 09.2018 주인에게 합당한 사람
    짧지 않은 목회를 하면서 늘 감사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교회되도록 그 때마다 하나님이 도우셨다는 것입니다. 길이 막혀서 보이지 않고, 빠져나갈 방법이 없을 때에도 하나님은 길을 내셨고, 방법을 찾아 주셨습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것은, 개척을 하고 4년반이 지날 무렵에,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가 이곳으로 이사올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방법이 없었습니다. 몇몇 분들이 이사가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물론 안해도 되는 것이었습니다. 길이 없으니 안가겠다고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우여곡절 끝에 이곳을 매입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그때에 고민이 많았습니다. 포기할 것이냐, 밀어부칠 것이냐. 그 선택의 기로에 있을 때에 많은 비난을 받았고, 반대도 있었고, 심지어 방해 공작도 있었습니다만 이 길, 이 건물을 사서 이사하는 쪽으로 결심하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때 망설임도 있었고, 심한 반대에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여기로 오는 것이 옳은 길이었습니다. 그분들의 판단이 (이사하면 망할 것이라고 하는 분들) 틀렸습니다. 하나님이 도우신 것입니다. 어려운 길에도 그 시기마다, 그 일마다 하나님은 돕는 분들을 곁에 두셨습니다. 일이 될 수 있도록 용기를 주고, 돕는 분들이 지난 10년동안 끊이지 않았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교회적으로도 그런 일들이 수없이 많았지만, 개인적으로도 그런 경험이 너무나 많습니다. 목회를 잘 할 수 있도록 잘 뒷받침해 주시는 분들이 참 많았습니다. 목사의 집에도 어느 권사님이 냉장고를 넣어주시기도 했고, 필요한 것들을 말없이 채워주신 분들이 수없이 많았습니다. 얼마 전에도 과분한 선물을 누군가로부터 받았습니다. 일을 하다가 설교용으로 쓰는 아이패드를 떨어뜨려 깨졌다는 것을 어느 분이 알고, 전혀 생각지도 못하게 가장 최신형의 아이패드를 선물해 주셨습니다. 이런 분들은 마치 목사가 뭐가 필요한가 두 눈을 부릅뜨고 있는 분들 같았습니다. 목회하는데 무슨 불편이 없는가 살펴서 그 부족한 것들을 어김없이 채우는 분들이 곁에 있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어떤 분들에게는 불편한 이야기가 될 수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만, 목회에 협력한다는 것이, 목회를 잘 할 수 있도록 뒷받침 한다는 것은 ‘왜 그렇게 쓰냐, 왜 그것이 필요하냐?’ 따지고 물으면서 정의감에 사로잡힌 날카로운 비판이 아니라 (때론 그것도 필요합니다), 목회의 고민을 함께 나누며, 함께 기도하며, 어떻게 하면 도울 수 있는지를 찾아주고, 필요한 것들을 살피는 것이 진정으로 목회를 협력하는 것이 아닐까요?하나님의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분들은 교회가 나의 삶에 무엇을 해 주어야 한다고 입에 거품을 물기 전에,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마음을 읽기를 애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주님은 우리 교회에 무엇을 원하시는가를 고민하고 주인되신 하나님의 마음을 살피는 사람이 정말 충성된 종이 아닐까요? 교회가 어디가 잘못되는가를 살피는 검사같은 비판자가 아니라, 교회의 어느 곳에 내가 필요할까를 생각하면서 그것에 마음을 기울이며 사는 것이 정말 주님이 원하시는 삶이라고 저는 믿고 싶습니다. 내년도 일꾼을 세웁니다. 교회가 필요한 곳에 우리의 마음이 닿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마음을 먼저 살펴서 한 발 앞서며 헌신하는 그런 충성된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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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Dec 02.2018 당연한 대접?
    얼마 전, 우리 이 집사님이 일하는 식당으로 식사를 하러 갔습니다. 지난번에 이어 두 번째입니다. 첫 번째 방문에서 두 사람이 다 먹지 못해서 나머지를 가지고 to go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두 사람이 다 먹지 못하고 싸오게 되었습니다. 이상하다 싶었습니다. 지난번에는 내가 건강상 얼마 먹지 못해서 남았다고 해도, 이번에는 그래도 상당히 먹은 것 같은데도 남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집사님에게 이래도 싸가게 되네요. 이상하지요? 그랬더니, 집사님 하시는 말, “목사님들이 오시는데 많이 드시라고 좀 더 드렸지요”하시는 것입니다. 아, 그럼 이것이 정량(定量)이 아니고, 더 주신 것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더 나온 것, 즉 곱빼기를 보통으로 알고 먹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대하고 있는 음식들이 집사님의 배려로 더 나은 음식을 먹고 있었는데, 그 분의 배려는 모른 채, 당연히 내가 받아야 할 권리라고 생각하며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저에게는 새로운 충격으로 느껴졌습니다. 남의 배려를 그저 당연한 것으로만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지나 온 수많은 세월 속에서 내가 누렸던 것들 가운데 당연하게 내가 받아야 할 권리로 치부하고 감사도 하지 못한 채 지나 온 내 자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000이니까 당연히 섬김을 받아야 마땅하지, 당연히 내가 그런 대접을 받아야지,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감사없이 지나 온 것을 생각하면 내 태도 속에서 그런 모습이 있었음을 이제야 비로소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갑자기 이런 생각도 미쳤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가 바로 그렇다고 여겨졌습니다. 내가 호흡하고, 생계를 유지하고, 어떤 지위와 환경을 누리며 사는 것이 마치 내가 누려야할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면서,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주시기까지 사랑하신 그 사랑은 외면한 채, 더 누리지 못한 것에 대한 원망과 불평으로 인생을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가슴이 저며오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서운함을 가지고 있는 이유중의 하나입니다. 왜 나는 다른 사람이 누리고 있는 것을 누리지 못하게 하시냐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우리는 내가 알지 못한 것을 더 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배려와 호의를 (다른 말로 하나님의 은혜) 모른 채, 그리고 그것을 감사하지도 못한 채, 오늘 내가 누리고 있는 것을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쯤으로 생각하며 산 것이 우리가 아닌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다른 사람이 베풀어 준 호의나 배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힘들이고 희생하면서 배려해주고, 생각해 주고, 위해 주었는데, 받는 사람은 처음엔 감사하다가도 받는데 익숙해져서 왜 당연히 안해주냐고 원망을 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허다합니다. 교회는 000 해야 하는 곳인데, 왜 당연히 안해주냐고 섭섭해 하는 사람도 참으로 많습니다. 받은 것에 대한 감사는 없어진 채, 받지 못한 서운함에 관계를 서먹하게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그 자신을 모른다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이제 다시 생각해 봅니다. 눈을 더 크게 열고 살펴야겠습니다. 내가 당연시 하고 있는 것들은 사실은 하나님의 은혜(덤)라는 것을 언제나 깊이 깨달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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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Nov 25.2018 나는 행복해요!
    당신의 신앙생활은 행복하십니까? 이 말처럼 다양한 대답이 가능한 것이 또 있을까? 자신의 신앙상태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어떤 분은 지겹다고 하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 너무 부담이 많다, 그저 먹먹하다 등등의 말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 성도들의 모습을 보면 신앙생활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 정말 감사할 뿐입니다. 어느 집사님은 눈에 가득한 눈물을 담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전에는 내가 하는 것들이 죄인줄을 정말 알지 못했어요. 그러한 생각과 말 그리고 행동들이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인줄을 깨닫고 보니 얼마나 가슴이 아프고 회개가 나오는지… 눈물 없이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지 않을 수 없어요. 목사님, 이제는 과거의 나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천천히 변화되겠지만 이제는 옛날의 방식으로 살고 싶지 않아요. 저는 지금 정말 행복해요’ 이 고백을 들으면서 저절로 가슴에 찐한 감동이 밀려오는 것을 어쩔 수 없었습니다. 내 안에 사신 분이 예수님이시기에, 나의 옛 사람의 모습 때문에 회개의 눈물을 흘리고, 다시는 과거로 돌아가 의미 없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던 집사님이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나 자신 또한 생각해 봅니다. 나는 과연 그런 행복이 있는가?어떤 분들은 신앙생활의 현장인 교회생활이 괴롭고 힘들어서 교회를 떠나기도 하고, 떠날 생각도 합니다. 교회 생활이 행복하지 못해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볼 때면 나의 가슴에 멍이 들고 또 듭니다. 내가 은혜를 끼치지 못해서 저렇게 힘들어 하고 교회를 떠나는구나 싶어서 가슴에 시퍼런 멍이 들도록 자책도 합니다. 교회에 은혜가 없을 때입니다. 교회에 은혜가 없으니 지치고 지친 영혼들이 깡치만 남아서 서로를 들이받습니다. 가슴에 상처가 남도록 거친 말을 주고받게 됩니다. 그래서 상처를 입고, 아파하고 교회를 떠날 구실만 생각합니다. 어떤 분은 다른 교회로 간다는 말을 못해서 아예 타 주로 이사를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고통스러운 일입니다.이 모든 것들이 우리 안에 은혜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에 갑자기 그런 은혜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과거의 나에 대해서 회개하기 시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옛 모습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구원받은 그 은혜에 감사해서 행복하게 신앙생활을 다시 하는 분들이 하나 둘씩 일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저는 이런 분들이 매주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매 주, 예배가 끝나면서 우리 안에 그런 고백들이 살아나기를 바랍니다. ‘신앙생활이 정말 행복해요’ 이것이 바로 예수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안다면, 하나님의 그 사랑을 깨닫게 되면 행복해집니다. 광신자가 되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이 비밀을 알게 하신 하나님의 그 은혜에 감사해서 행복한 눈물과 웃음을 지을 수 있습니다. 불행하십니까? 교회 생활, 신앙생활이 권태로우십니까? 지금 예수님을 찾으십시오. 그 분의 은총을 간구하십시오. 지금 주변에 그 행복으로 가득한 사람들을 만나십시오. 여러분에게도 그 행복의 주인공이 될 기회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정말 아름답게 행복한 신앙생활하는 산실(産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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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Nov 18.2018 어떻게 보답할까…
    추수 감사주일입니다. 단지 지난 1년을 향한 감사보다는 지나온 10년의 감사가 더 가까이 느껴지는 시간입니다. 늘 새로운 한 해를 감사했는데, 왜 이렇게 이번에는 10년동안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가 새로운지 모르겠습니다. 시편116편의 기자는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라고 탄식했습니다. ‘만 입이 내게 있으면, 그 입 다 가지고, 내 구주 주신 은총을 늘 찬송하겠네’라고 부른 찬송시인의 노래로도 다 표현할 수 없는 것이 나와 우리 교회에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초라해서, 거의 이기적인 헌신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 때면, 참으로 송구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오늘 아침, 말씀을 통해서 아사 왕의 종교개혁과 예배회복을 다루는 말씀 가운데서 아사와 그 백성이 드린 제물이 소가 700마리에 양이 7,000마리를 잡아 제사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 화폐로 대략 계산해 보니, 약 40억원정도의 제물을 하나님께 드렸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헌신의 제사를 드리는 것치고는 너무나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 소 몇 마리만 대표적으로,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드려도 하나님이 받으셨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아사는 그 많은 돈을 들여서 한번의 제사로 날려(?) 버렸던 것입니다. 아깝지 않을까요? 현대에 이런 일이 있었다면 미쳤다고 했을 것이고, 낭비라고 온세상이 들고 일어났을 것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저는 그 모습에서 아사와 백성들의 헌신의 각오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드림이 아까울 정도라면 그것은 무엇인가 중요한 것이 빠져있지 않나 싶습니다.우리는 때로는 입술로 감사하다는 말을 달고 살면서 정작 헌신없는 감사만 외치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헌신과 희생은 나와는 상관없고, 그저 입술의 감사만 한껏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감사로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하나님은 우리의 형편을 아신다’고 자위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우리의 감사에는 희생과 헌신이 담겨져 있어야 합니다. 마치 제물없는 제사가 의미가 없듯이 헌신과 희생없는 감사 역시 의미가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어떻게 사는 지 아십니다. 우리의 형편도 다 이해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물질의 감사를 요구하는 것이 아님도 우리는 압니다. 그러나 물질의 감사도 주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감사로 하나님께 감사하느냐입니다. 과부의 두 렙돈을 귀히 보신 예수님이 이 여인을 칭찬한 것은 그 물질의 작고 큼에 있지 않았습니다. 가장 가난했기에 헌금을 안 해도 주님은 이해하셨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과부는 자기의 전 재산을 다 드렸습니다. 자기 희생이고 헌신입니다. 마치 엘리야 시대에 한 과부가 엘리야에게 자기 먹고 죽을 마지막 양식까지 바친 과부를 생각나게 합니다. 결국 감사에는 입술의 감사도 있지만, 헌신과 희생이라는 물질이 담겨져 있을 때에 주님은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헌신과 희생은 고통입니다. 아픔입니다. 손해입니다. 그래서 힘이 듭니다. 쉬운 것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고통과 손해가 따르지 않는다면 희생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감사가 참된 감사가 되려면 우리의 모든 형편을 아시는 주님께서 인정하실 수 있는 감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껍데기 감사는 버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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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2
    아름다운교회 Nov 11.2018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지난 3주간, 자연스럽게 우리의 모든 생각과 대화의 소재는 ‘다니엘 특별 새벽기도회’였습니다. 모이면 각자가 받은 은혜를 나누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는 모습은 이제는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말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우리의 표정과 삶이 바뀌듯, 은혜받은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많은 증거들이 우리로 하여금 신나게 합니다. 이래서 믿는 것이었구나. 이래서 기도하는 것이구나, 이것이 바로 은혜구나, 새로이 부어주시는 은혜로 인해서 감격의 눈물이 마르지 않았던 지난 특.새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이제 우리 교회가 10년을 달려옵니다. 격변의 시간들도 있었지만, 지난 10년동안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교회되게 하기 위하여 많은 훈련이 있었고, 이제 그 열매를 10년만에 하나님의 새로운 은혜를 경험하면서 새로운 교회를 향한 걸음이 시작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해 봅니다. 과거에도 맛볼 수 없었던 은혜들, 그동안에는 각자에게 주어진 은혜였다고 본다면, 이번에 받은 은혜는 교회 전체에 불어오는 성령의 바람과 불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은혜받은 자로 사는 삶을 잘 뿌리내려야 합니다. 받은 은혜에 그치지 않고, 성령의 충만을 계속 사모하면서 앞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몇 가지 우리가 지켜야 할 것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첫째는 생각의 변화, 영적인 변화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삶의 변화입니다. 어느 성도님은 달라진 자신의 삶으로 인해 스스로 놀랍니다.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을 버리지 않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말이 달라지고, 보는 것이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질 수밖에 없더라고 고백합니다. 은혜받은 사람은 삶이 변합니다. 과거의 잘못된 습관에서 탈피하게 됩니다. 둘째는 은혜받은 것은 ‘사람을 세우고, 교회를 세우라’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은혜를 받았다고 교회를 어렵게 하거나 무너뜨리는 것은 성령의 역사라고 할 수 없습니다. 내가 받은 은혜를 남을 정죄하는 도구로 사용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사람들로 세워가고, 교회를 건강하게 세워가는 일에 앞장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기적인 신앙으로 변질되고 맙니다. 위험한 일입니다. 그것이 교만입니다. 은혜는 나를 주님앞에 낮추고, 남을 높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높여 주십니다. 셋째는 은혜받은 사람은 헌신의 사람으로 익어가야 합니다. 여전히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면 그것은 아직 어린 아이일 뿐입니다. 은혜의 사람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원하시는 일에 순종으로 함께 걸어가는 사람입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넷째로 예배를 사모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예배를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아니, 그렇게는 안됩니다. 왜냐면 내 안의 성령께서 그렇게 우리를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은혜가 안된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은혜가 되도록 성령께 간구해야 합니다. 내 안에 말씀과 성령께 순종할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은혜받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은혜를 쏟는 것은 쉽습니다. 성령은 말씀과 함께 가십니다. 말씀안에서 순종하면서 이제는 하나님의 사랑을 넘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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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
    아름다운교회 Nov 04.2018 은혜를 주실 때
    어느 목사님의 자조섞인 말이 생각이 났습니다. 아름다운 교회는 특.새가 은혜스럽다고 칭찬하면서 자기 교회는 특.새를 해봤지만 특.새를 하나, 안 하나, 항상 나오는 사람이 같아서 특.새에 대한 특별한 기대도 없이 이제는 자연스럽게 안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공감이 가는 말이었습니다. 저희 교회도 지난 10년 동안 특.새를 매년 진행해 왔습니다. 신이 나서 할 때도 있었고, 강권적으로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그때 그때마다 하나님은 특.새가 필요했던 영혼들을 만나주셨고, 그로 인해서 그 사람들이 믿음으로 좀 더 깊은 은혜의 바다로 나아갔습니다. 그래서 해마다 있는 특.새이지만 육체적으로는 힘들고, 영적인 도전도 받지만 그들을 기다리는 하나님을 생각하며 지속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번 특.새는 지금까지 했던 과거의 어떤 특.새보다도 특별한 특.새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저와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아침마다 그 모습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평생 처음으로 새벽예배에 참여해 봤다는 사람부터, 이렇게 오랜 동안 새벽기도를 해본 적이 없다고 하는 분들, 다들 스스로 대견스럽고 자랑스러운 일임을 고백하는 것에 지나지 않아, 새벽마다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앞에서 그저 감사의 눈물을 흘릴 뿐입니다. 찬양에 은혜받고, 말씀에 순종하고, 기도에 부어주시는 은혜로 뜨거워진 가슴을 안고 식사 후에도 받은 은혜를 나누며 삼삼오오 앉아 대화를 나누는 기이한(?) 현상을 보면서 목회자로서 단 한 가지만 생각이 납니다. “아, 하나님이 하시는구나!” 내 실력과 능력이 아닌 철저히 하나님이 도구로 사용하시는 것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는 현장이기에 저 역시 놀라지 않을 수 없고, 그 분의 만져주심 앞에서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새벽시간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지난 주에 세례식에서 3명의 자매님들이 세례를 받았는데, 지금까지 세례식을 집례해 왔지만 이렇게 눈물과 감격과 감사로 세례식을 드려본 기억이 없었습니다. ‘아 , 이것이 하나님의 기쁨, 하나님의 감격이겠구나’ 그런 감격이 가득 차오르게 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내 눈을 적시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아니, 무슨 일이 교회에 일어나는 것일까요?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한 가지는 ‘하나님의 때가 되었다’라는 것입니다. 그토록 원했던 하나님의 은혜가 이제 때가 되어서 우리에게 부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제는 은혜 받을만한 때요, 구원의 날”이라고 하신 말씀도, “때를 따라 돕는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갈 것이라”는 말씀도 바로 오늘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위한 말씀임을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은혜 받을 때가 있었습니다. 사모한다고 늘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사모함으로 기다리고 기다리며, 마치 아브라함이 25년을 기다리며 약속의 아들을 받아냈던 것입니다. 인내가 필요합니다. 신앙생활에서 교회생활은 참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 신앙생활가운데서 성령의 역사를 경험한다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세계입니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께서 필요하신 은혜를 우리 모두에게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남은 한 주간의 은혜가 기대됩니다. 어떻게 만지시고, 어떻게 이루어지시는지, 우리의 생각보다 높으신 주님의 솜씨에 기대를 갖습니다. 그리고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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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Oct 28.2018 다니엘 특.새에 주시는 은혜
    특.새가 시작이 되면 목사는 영적으로 바짝 더 긴장하게 됩니다. 정말 피곤한 삶의 일정을 뒤로하고, 새벽을 깨워서 달려오는 성도들을 바라볼 때마다, 하나님이 그들을 그냥 보내시지 않기를 소원하면서 말씀을 준비하고 능력있게 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참여하는 지체들 가운데는 하루 2-3시간도 잠을 자지 못하고 오는 분들도 많기 때문입니다. 사실, 특.새는 매일 매일이 부흥집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도 긴장을 유지하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이번 특.새는 교회의 막바지 공사를 하면서 충분히 준비할 시간도 없이 벌써 특.새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더 많이 기도로 준비하고, 더 많은 시간을 들여서 준비해야 하는데, 공사 때문에 훌쩍 시간을 보내고, 급작스럽게(?) 특새가 다가온 것이 못내 부담이 되었고, 염려가 된 것이 사실입니다. 지난 한 주간은 거의 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피곤한 가운데서 집회를 인도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감사한 것은 이번 집회에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은혜가 부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첫 날부터 많은 성도들의 관심과 참여로 시작하면서, 은혜로운 찬양과 고백들, 사모하는 심령들이 온 몸으로 주님께 다가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매일 매일 새로운 얼굴들이 등장하면서 숫자를 더해 가더니, 토요 새벽에는 어린 중.고등부 자녀들까지 함께 참석하면서 70명 가까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감격스러운 일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이번 특.새는 어느 때 보다도 이번에는 은혜를 받고야 말겠다는 각오가 말씀을 받는 눈길에서부터 느껴지고 있었습니다. 기도가 터져서 방언으로 고백하는 분들, 눈물로 회개와 고백으로 주님앞에 서는 사람들, 마음의 곪은 응어리들이 성령의 은혜가운데서 녹아져 서로 부둥켜 안고 사랑과 용납의 눈물로 기도하는 사람들, 평생에 이런 은혜 처음 맛을 보았다는 분들, 기도가 이런 것인 줄 이제야 처음 알았다는 분들… 이런 저런 기도응답을 받았다는 간증들이 귀에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10년째 특.새를 하고 있지만, 이런 은혜는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새삼 놀랍고 놀랍다는 것을 다시 고백하게 하셨습니다. 또한 감사한 것은 이전에 비해, 여러 성도들의 영적 성숙이 눈에 띄게 두드러진 모습은 더욱 더 감사한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린 아이와 같이 어린 신앙이, 기도를 통해서 고백되어지는 아름다운 언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울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눈물로 고백하며 찬양하는 분들을 바라보며 가슴 벅차오르는 감격으로 찬양을 멈출 수 밖에 없었습니다. 비록 공사로 인하여 새벽부터 밤 늦도록 공사하는 피곤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날을 새워 설교준비해야하는 고단함이 성도들의 받는 은혜로 인하여 상쇄되고도 남는 은혜가 저에게도 부어지고 있었습니다.교회는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혼자가 아닙니다. 혼자서는 온전한 교회를 이룰 수 없습니다. 함께일 때에야 온전한 공동체를 이룰 수 있습니다. 기도하지 못할 수많은 이유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유들을 뒤로하고, 믿음으로 나갈 때, 하나님은 무한한 은혜를 주셔서 능히 감당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만져 주실 때에 그분 품에 안겨보는 은혜가 참여하는 모든 분들에게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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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Oct 21.2018 걱정대신에 기도는 어때요?
    아내가 생일 날 받은 꽃을 꽃병에 옮겼습니다. 제법 싱싱한 꽃이어서 보기가 좋았습니다. 그 꽃을 관리하면서 아내가 한마디 합니다. ‘야, 이 꽃은 물을 많이 먹네요’ 그러고 보니 가득하던 물병의 물이 제법 눈에 띄도록 많이 줄었습니다. 싱싱한 꽃은 아마도 활동이 왕성해서 물도 왕성하게 빨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시든 꽃은 생명력을 유지하는 활동인 물을 적게 먹는 것이겠지요. 이러한 현상은 우리의 영적인 삶에도 같은 원리로 작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영혼이 건강한 사람은 영적 활동에도 활발하다는 것이지요.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그러고 보니 삶이 건강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말씀도 그렇게 잘 빨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기도생활도 왕성합니다. 삶을 들여다보면 긍정적으로 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병든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의무적으로 신앙생활을 합니다. 적합한 환경만 되면 언제나 불평을 합니다. 기도생활도 건강하지 않습니다. 말씀을 깨닫는 것과 말씀대로 살아내는 것과는 다릅니다. 깨달음이 많으면 살아야 되는데, 깨닫는 데만 발달된 사람이 있어 보입니다. 왜냐면 삶의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을 보면 그렇습니다. 결국 우리의 마음안의 영(靈, spirit)이 건강해야 합니다. 신령한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바로 그랬습니다. 기도많이하고, 은사가 많으면 신령한 사람일 것 같은데 오히려 그들은 바울에게서 ‘어린아이’ ‘육적인 그리스도인’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왜 그런가 생각해 보면 아는 것과 사는 것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말 성숙함은 ‘아는 것과 믿는 것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알았다고 해서 다 믿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영성을 가진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이를 위하여 우리 교회에서는 일 년에 한 번, 3주간의 기도훈련을 합니다. 다니엘이 세 이레를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매달렸던 것을 보면서, 우리도 그런 은혜를 기다리며 매년 가을에 3주간의 치열한 영적 훈련을 쌓아갑니다. 물론 어떤 분들에게는 그림의 떡입니다. 할 수 있는 환경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에게는 관심도 없습니다. 귀찮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실력은 시험을 치룰 때에 쌓여갑니다. 평가라는 시험이 없으면 사람은 그냥 도전이 없습니다. 그러나 시험을 치룰 때에, 그것을 준비하면서 실력이 부쩍 늘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벌써 이 교회를 개척하고서 10년이 되었고, 열 번째의 특별 새벽기도회를 내일부터 시작합니다. 시든 영성이 힘을 얻고, 무관심한 신앙에 생명력을 불어 넣어주며, 건강한 영성에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는 은혜가 이번 다니엘 특새에 이루어지기를 소원하면서 시작합니다. 기도는 싸움입니다. 저절로 되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자아와의 싸움, 삶과의 싸움, 그리고 하나님과의 싸움입니다. 얍복강의 야곱의 기도가 바로 그런 기도였던 것 같습니다. 건강한 영성을 바란다면 기도해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염려함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만 있다면 밤을 새워서라도 염려하면 됩니다. 그러나 ‘너희가 염려함으로 머리카락 하나를 희고 검게 할 수 있다’는 말씀을 기억하면서 염려하는 대신에 기도의 자리로 나와보시기를 도전합니다. 기대가 됩니다. 이번 특.새는 누구를 위한 특새가 될지, 누가 하나님의 은혜에 만져주심을 받을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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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Oct 14.2018 불러주신 은혜
    사람은 경험을 통해서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됩니다. 책이나 다른 사람들의 경험담을 통해 얻는 간접적 교훈도 중요합니다만, 맛있는 사과맛을 먹어 본 사람과 들어서 안 사람의 경우가 다르듯이 그러한 것 같습니다. 교회 공사를 통해서 요즘, 부목사님과 저는 무슨 일용직 근로자 같은 삶을 살고 있는데, 새벽예배가 끝나면 옷을 갈아입고 온 몸에 흙을 묻히고 사는데 사실 이런 고생은 안 해도 되는 고생이지 싶을 때에는 속이 상하기도 합니다. 이런 일이 목회자의 본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실 할 줄 모른다 하면 됩니다. 그리고 사람 사다가 하면 이런 저런 원망을 안 듣습니다. 하지만 할 줄 모르지만 배워서라도 하는 이유는 성도들의 피땀어린 헌금으로 치루어지는 공사이고, 모자라는 펀드를 메꾸는 방법은 이것밖에는 없어서 이 일을 합니다. 월급 받는 고용인이기 때문에 이 일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밤낮없이 일용직 노동자 같은 삶을 살면서 배우고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이 있을 때에는 Home Depot등에서 사람들을 사옵니다. 시간당 20불씩 달라는 사람들을 고용해서 아무도 하지 않으려는 일들은 맡겨서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몇 사람이 선택되어 따라옵니다. 그런 일꾼 중에서는 불성실한 사람, 요령만 피우는 사람,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 등등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성실한 사람은 다음 날도 와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도 부탁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자기가 무슨 일을 할 줄 알고, 이것저것도 해 봤다고 자기 PR을 열성을 다해서 합니다. 그 말은 나를 다시 써달라는 의미입니다. 마치 예수님의 비유 중에서 품꾼의 비유와 같은 현실이 눈앞에서 펼쳐집니다. Angel이라는 친구가 있습니다. 나이가 40중반은 되었고, 멕시코에 사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하여 10여년을 만나지도 못하고 일만 한다는 친구입니다. 성실하고 책임감도 있어서 며칠 데리고 일을 같이합니다. 그런데 얼마나 열성인지 모릅니다. 그리고 써준 사람에 대한 배려나 감사도 잊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열심히 할테니 자기를 써달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 부르지 말고 자기를 불러달라고 합니다. 저는 매일 일당을 정성껏 봉투에 담아서 수고했다고 고맙다고 적어서 줍니다. 그러면 그는 고맙다고, 너 같은 보스가 없다고 칭찬하며 감사하다며 돌아갑니다.포도원의 품꾼처럼 우리는 예수님께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나를 불러주셨고, 선택해주셨고, 나에게 일거리를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가끔 나는 써주신 주인에 대해서 불평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왜 이것을 시켰냐, 다른 사람 시키지 왜 나를 불렀냐, 왜 그렇게 임금도 조금 주냐, 먹고살기 힘들다, 불러서 하나님 나라의 영광스러운 일을 맡겨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 감사하다고 해야 마땅한 것을 때로는 나는 원망과 불평을 서슴지 않고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저 일용직 근로자 Angel처럼 감사할 수 있는가? 나는 비싼 임금을 줘야만 하는 고비용 근로자라고 목에 힘주고 있지는 않은가 말입니다. 제가 일하는 태도를 다시 일깨워 준 사람이 이 일용직 근로자 Angel입니다. 지금 주님이 써주신 것에 대해 나에게 찐한 감사가 있는지 가슴이 멍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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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Oct 07.2018 기초를 잘 놓아야 합니다.
    담 쌓기가 시작되어 이번 주 내로 외부 공사가 완료될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제는 하나씩 Final inspection을 향하여 가고 있습니다. 가만히 공사를 하는 것을 지켜보면 많은 것을 배우기도 합니다. 그 중의 하나는 정말 기초가 중요하다는 것을 배웁니다. 예를 들어 벽돌담을 쌓는데, 그냥 우연히 그 벽돌을 놓는가했더니 나중에 보면 왜 그것이 거기에 있어야 하는지를 보게 됩니다. 그 기초가 잘되어 있어야 담을 쌓아도 일정하게 반듯한 벽을 세울 수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만일 그 기초가 잘못되었다면 다시 부수거나 보기가 민망한 담이 되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새삼 기초가 중요하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기초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그 기초를 모릅니다. 아예 기초를 생각지 않습니다. 그냥 교회 나와서 복만 받으면 되는데 뭐 그리 기초가 필요하냐고 할지 모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교회 나오는 것으로 그치려고 합니다. 그나마 어떤 사람들은 신앙생활 잘 해보려고 시도합니다만 상당한 사람들이 뒤돌아서거나 중단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기초체력이 문제입니다. 성지순례를 다녀온 분들이 체력이 부족해서 힘들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등산하는 분들도 높은 산을 오르기 위해서 기초체력을 쌓는 것을 봅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에는 기초를 닦으려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다니다가 약간의 부딪힘만 있으면 그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쉽게 포기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오랜 기간을 교회 다녔다는 이유로 자신이 기초가 잘 되어있는 것처럼 착각합니다. 교회를 오래 다닌 것과 믿음이 좋다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교회를 오래 다녔다고 자랑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그러면 기초는 무엇입니까? 말씀과 기도입니다. 말씀 없고 기도는 있거나, 기도는 있는데 말씀이 없으면 문제입니다. 분명히 조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기도와 말씀으로 체력을 쌓으면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예배’와 ‘섬김’입니다. 이 기초가 잘되어 있는 사람은 예배와 섬김이 건강합니다. 삶의 문제가 다가와도 잠시 아파하기는 하지만 곧 일어날 힘을 얻습니다. 다윗의 고백처럼 ‘천만인이 진을 친다할지라도 내가 어찌 두려워 하리요’라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말씀과 기도는 우리 영적 삶에 빼놓을 수 없는 영적 자양분이요, 온갖 문제들로부터 우리 자신의 믿음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며, 우리의 삶을 건강하게 세울 수 있는 기초체력입니다. 이를 위하여 예배생활 등의 경건활동을 늦추지 말아야 합니다. 감사한 것은 우리 교회는 기도하는 교회입니다. 새벽을 깨우는 일꾼들이 늘고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파고 들어오며 예배생활에 힘씁니다. 바람직하고 칭찬받을 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기초 체력을 쌓아야 합니다. 성경공부와 예배 그리고 기도생활에 동참해야 합니다. 바쁘고 힘들다고 하지 않으면 교회 다니는 것으로 그치게 됩니다. 교회를 다니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예수님을 알고, 믿음의 성장과 영적 삶의 승리가 목적이라면 험한 산을 오르는 것보다 어렵고, 여행다니는 것보다 힘들지라도 믿음의 기초체력을 잘 쌓아야 합니다. 기회가 옆에 있습니다. 기회를 놓치지 말고 붙잡아야 합니다. 기초를 잘 닦아 두십시오. 꼭 쓰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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