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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권순혁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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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Aug 24.2025 승자와 패자 1편
    -디아스포라 유대경전-제 1 장 승자는 실수했을 때 “내가 잘못했다”고 말한다. 패자는 실수했을 때 “너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말한다 승자의 입에는 솔직함이 가득 차고 패자의 입에는 핑계가 가득 찼다. 승자는 “예”와 “아니오”를 확실히 말하고 패자는 “예”와 “아니오”를 적당히 말한다. 승자는 어린아이에게도 사과할 수 있고 패자는 노인에게도 고개를 못 숙인다. 승자는 넘어지면 일어나 앞을 보고 패자는 넘어지면 일어나 뒤를 본다.  제 2 장 승자는 패자보다 더 열심히 일하지만 시간에 여유가 있고 패자는 승자보다 게으르지만 늘 바쁘다고 말한다. 승자의 하루는 25시간이고 패자의 하루는 23시간 밖에 안 된다. 승자는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놀고 열심히 쉰다. 패자는 허겁지겁 일하고 빈둥빈둥 놀고 흐지부지 쉰다. 승자는 시간을 관리하며 살고 패자는 시간을 끌며 산다. 승자는 시간을 붙잡고 달리며 패자는 시간에 쫓겨서 달린다.   제 3 장 승자는 지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패자는 이기는 것도 은근히 염려한다. 승자는 과정을 위하여 살고 패자는 결과를 위하여 산다. 승자는 순간마다 성취의 만족을 경험하고 패자는 영원히 성취의 만족을 경험하지 못한다. 승자는 구름 위에 태양을 보고 패자는 구름 속에 비를 본다. 승자는 넘어지면 일어서는 쾌감을 알고 패자는 넘어지면 재수를 탓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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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
    아름다운교회 Aug 17.2025 숨겨져 있는 모습이 진짜 모습입니다
    교육학에서 숨은 교육과정(Hidden Curriculum)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숨은 교육은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명시된 교육과정 외에 학생들이 배우게 되는 것으로 표현되지 않은 비공식적인 수업, 가치관, 그리고 사회 규범을 의미합니다. 이는 상호작용, 교실 분위기, 학교 문화 등을 통해 전달되는 암묵적인 메시지를 포함하죠. 이러한 글로 쓰이지 않은 규칙과 기대는 학생들의 경험, 성공, 나아가 사회 구조에 대한 이해에까지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어쩌면 학생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교육은 숨은 교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시간을 지키는 것에 대한 수업을 하려고 하는데 그 선생님이 수업 시간을 지키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까요? 선생님이 윗사람 말을 잘 따르고 규칙을 잘 지켜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려고 하는데 그 선생님이 자신의 상관의 말에 반항을 하는 모습을 아이들이 본다면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까요? 친구가 힘들어 할 때 도와주어야 하는 것을 가르쳐야 하는 선생님이 옆에 있는 동료 선생님이 도움이 필요할 때 모르는 척 하고 지나간다면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까요? 아마 선생님이 가르친 것보다 선생님이 보여주신 것을 배울 것입니다. 이것이 계속 반복된다면 머리로는 알지만 그렇게 굳이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배울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이중적인 아이로 자라게 될 것입니다. 신앙도 그렇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녀들이 부모의 신앙에서 무엇을 배울까요? 우리는 자녀들에게 부모의 신앙이 잘 계승되기를 바라지만 자녀들은 우리의 숨겨진 모습에서 신앙을 배우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야 한다고 자녀들에게 가르치지만 정작 부모는 문제상황을 만날 때 하나님을 찾거나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문제들을 해결해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아이는 부모의 그 모습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자녀들은 우리의 신앙의 순수성을 지켜나갈 수 있게 만드는 하나님이 보내신 선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가르치려고 하는 것들이 진짜인지 아닌지를 돌아볼 수 있도록 만들기 때문이죠. 저는 자주 숨은 교육과정에 대해 생각해 보곤 합니다. 무엇인가를 가르치기 이전에 나는 정말 그렇게 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는 것이죠. 만약 제가 하지도 않는 것을 가르치려 하거나 누군가에게 요구한다면 그것은 제 자신을 속이는 것일 뿐만 아니라 가르침을 받는 자를 이중적인 사람으로 만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기보다 늘 자신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자신의 중심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이 정말 말씀대로 살아가고 있는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점검하고 점검하고 또 점검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중심에 하나님이 없고, 삶 속에 하나님이 없고, 신앙생활 속에 하나님이 없다면 그것을 아무리 숨기려 해도 숨길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속에 계시다면 우리는 분명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숨겨진 그 진짜를 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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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0
    아름다운교회 Aug 10.2025 왜 공동체인가?
    우리는 태어나면서 자동으로 가족 공동체에 소속이 됩니다. 그 안에서 아빠, 엄마, 형제, 자매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다 유치원을 가기 시작하면서부터 또 다른 공동체에 소속이 됩니다. 친구, 선생님과 관계를 맺으며 새로운 지평을 열어갑니다. 더 자라나 사회에 발을 내딛게 되면서 관계의 유형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됩니다. 더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우리의 사회적 영역은 더욱 확장되어 갑니다. 이렇게 수많은 공동체를 거치면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우리가 속해 있던 곳에서 만났던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나와 똑같은 사람은 아마도 한사람도 없었을 것입니다. 생김새가 다르고, 생각하는 것이 다르고, 심지어 갈등을 조정해 가는 방식조차도 달랐을 것입니다. 결혼할 때는 자신과 비슷한 점이 많아서 결혼을 결심했다고 하는 부부도 결국에는 나와 다른 것이 한 구석도 없다고 고백하는 부부를 많이 만나 보았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수도 없이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고 상대해 왔습니다. 지금도 그런 사람을 만나고 있고, 앞으로도 더 많이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의 의미를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두 개의 큰 공동체를 우리에게 허락해 주셨습니다. 가정과 교회입니다. 가정과 교회에 소속되어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가정과 교회 공동체를 통해 하고 싶은 것이 있으십니다. 그것은 바로 성장입니다. 먼저 말씀드리지만 행복이 아닙니다. 성장입니다. 그리고 성장은 언제 일어나느냐? 나와 다른 사람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성장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완벽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는 것이 완벽하지 않습니다. 살아가는 방식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저 내 생각과 라이프 스타일은 70억(세계인구)개 중에 하나일 뿐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면서 다른 것을 배웁니다. 꼭 이렇게 살지 않아도 인생을 사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넓어지고 자라나고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럴려면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싫든 좋든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고, 그 사람을 통해 배울 수 있고, 성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즘 안타깝게도 공동체에 소속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나한테 맞는 공동체를 찾아다니려고 합니다. 안타깝지만 나한테 맞는 공동체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런 공동체가 있다 할지라도 그곳에서 성장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비록 나에게 힘들고 어려운 일이 되더라도 성장에 목적을 두고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다면 우리는 더 아름답고 멋진 인생의 남은 날들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행복이 아닌 성장을 추구하며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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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9
    아름다운교회 Aug 03.2025 수요영성예배에 한번 나와보세요
    우리 교회 수요저녁예배를 처음 참석했을 때 너무나 생소한 방식이라 조금은 어색했습니다. 신앙서적을 읽어오고 그것을 토대로 설교시간에 은혜를 함께 나누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배에 참석하면 할수록 어색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이런 방식이 주는 영적 유익이 너무나도 많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앞서간 신앙의 선배들이 남긴 영적 깨달음, 말씀에서 발견되는 깊은 은혜들을 책에서 대할 때면 너무 깊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설교자는 설교를 전할 때 그 설교에 자신도 은혜를 받아야 한다고 이야기들을 합니다. 전하는 이나 듣는 이가 모두 설교를 들어야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자신이 준비한 설교를 전하면서 은혜를 받는다는 것이 솔직히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을 고백합니다. 우리도 말할 때 나는 예외인 것처럼 말을 하게 될 때가 있지 않습니까? 물론 그러면 안되겠지만 그렇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수요일마다 책을 정하여 그 속에 담긴 비밀들을 캐내고 그것을 전할 때 저도 제 3자가 되어서 설교를 듣게 됩니다. 전하는 자와 듣는 자가 모두 설교를 듣게 되는 것이지요. 벌써 제가 오고 난 이후에도 참 많은 책들을 다루었습니다. David Platt 목사님의 “물러서지 마”, 조정민 목사님의 “왜 예수인가?”, 박영선 목사님의 “하나님의 열심”, 본 훼퍼 목사님의 “나를 따르라”, 유진 피터슨 목사님의 “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이 책들 하나하나가 참 많은 영감을 주었고, 삶에 지혜를 주었고,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더욱 깊이 있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부터는 팀 켈러 목사님의 “내가 만든 신”이라는 책을 가지고 은혜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주에 서론을 시작으로 약 8주 정도 이 책을 통해 은혜를 받을 예정인데요, 저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제가 이렇게도 많은 우상을 섬기고 살았는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우상하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세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이나 성경에 나오는 신상들, 그리고 다른 나라 사람들이 집에 모셔 놓고 있는 금으로 만든 어떤 형상들이 우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세요? 그러다보니 우상숭배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와는 먼 이야기인 것처럼 들을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등장하는 아브라함과 평생 소원, 야곱과 사랑, 삭개오와 돈, 나아만과 성취(성공), 느부갓네살과 권력, 요나를 통한 문화와 종교의 가짜 신, 이 모든 것이 우리가 현재 섬기고 있는 우상이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한 우리는 끊임없이 우상을 숭배하면서도 전혀 문제없는 것처럼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상숭배의 결과는 개인적으로, 공동체적으로 심각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여기저기 문제가 생기는 것이지요.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가지입니다. 하나님 자리에 하나님을 다시 모셔야 합니다. 그런데 내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는 마음을 주시도록 간구해야 합니다. 수요일 저녁이 그런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한번 나와 보시기 바랍니다. 회복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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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
    아름다운교회 Jul 27.2025 내려놓는다는 것
    예전에 최하진 선교사님이라는 분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이분은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연구교수로 안정된 삶을 살아가던 카이스트 출신의 화학공학 박사님이십니다. 그런데 30세 초반의 젊은 나이에 하나님께서 이분을 부르셨습니다. 가장 소중한 나이에 나를 위해서 일해줄 수는 없겠느냐는 부르심이었습니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부르심이었지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로 결심을 하고 그 좋은 세상 직장, 명예를 모두 털어버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청소년들을 구원하기 위해 중국으로 떠나게 되었죠. 하나님이 부르셨던 그 때의 일을 생각하면서 말씀하시기를 자신이 쌓아온 것들을 내려 놓는다는 것이 뼈를 깎는 고통이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내려놓음, 내려놓음, 이렇게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그것을 자신이 실제로 하려고 해보니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었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30살의 젊은 나이에 미국 스탠퍼드 대학 교수가 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입니까? 그러니 그것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엄청난 고통을 수반하는 일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분께서 하시는 말씀이 그때 당시 한창 유행하던 말이 내려놓음이었는데 자기는 내려놓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주 바닥에 내던져 놓고 발로 그냥 짓눌러서 아예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만들었다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는 성격상 내려놓으면 얼른 다시 주어 담을 것 같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완전히 산산조각을 내 버렸다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최하진 선교사님은 그렇게 ‘Dawn Mission 선교회’를 설립하고, 중국 열방학교를 세웠지만 공식적인 직책도 없이 학교의 청소부 겸 수위 아저씨로 가장 낮은 자리에서 학생들을 지금도 섬기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내려놓는다 내려놓는다 하면서 실제로 그렇게 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내려놓음을 잠시는 실천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주어담을 때도 있습니다. 내려놓는다는 것은 감상적인 말이 아니라 실제입니다. 그래서 내려놓으려면 엄청난 고통과 희생과 아픔을 감내해야만 합니다. 그렇기에 내려놓으려고 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본전 생각이 나기 때문이겠죠. 그러면 어떻게 해야 내려놓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더욱 확고한 신뢰와 믿음이 있어야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삶을 책임져 주실 것이라는 믿음과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시라는 확고한 신뢰가 있을 때 우리는 그제서야 손에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내려놓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땅에 발을 디디고 살아가지만 이땅에 매여 살아가는 인생이 아니라 자유함에 이르는 길을 따라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지난 주 원로목사님께서 한국 농촌선교를 떠나시면서 내려놓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직접 체험하셨다는 말씀을 해 주고 가셨습니다. 친척, 본토, 아비 집을 떠났던 아브라함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겠노라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내려 놓을 때, 아니 다시 주어담을 수도 없게 산산히 조각낼 때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그제서야 경험하고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자유로 우리 모두를 초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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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7
    아름다운교회 Jul 20.2025 웃으며 즐기며 삽시다
    여러분의 기도와 관심과 협력 덕분에 저희 가정이 재충전의 시간을 잘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이번에 잠시 쉬는 시간을 보내면서 뜻깊은 곳을 다녀왔습니다. 그곳은 바로 라스베가스에서 북쪽으로 차로 10시간 정도 되는 거리에 있는 옐로우스톤 국립공원(Yellowstone National Park)입니다. 저희 아이들은 그곳에 있는 여러 가지 풍경들과 들판을 뛰노는 사슴과 바이슨 떼를 보며 감탄했지만 제게는 특별히 다가온 의미가 있었습니다. 바로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무슨 말이냐구요? 그곳은 오랜 세월동안 있었던 지진으로 인해 지하의 돌들이 깨져 여러 갈래로 틈이 나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래서 그 틈새로 용암의 열기가 땅 위로 올라오고 그 열기를 만난 지하수들이 증발되어 증기와 뜨거운 물로 폭발하는 기이한 현상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현상들은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으며 계속된 지진으로 인해 땅은 계속 갈라지고 뜨거운 물과 증기가 폭발하는 장소들이 계속 새롭게 생겨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그렇게 울창하고 쭉쭉 뻗어있는 나무 숲들 사이로 완전히 잿더미가 되어 버린 장소들이 곳곳마다 등장합니다. 그곳의 지표면은 회색으로 뒤덮혀 있고, 나무들은 다 죽어서 줄기만 앙상하게 남아 있던지 아니면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생각한 것이 이것입니다. 죽음이 그렇게 멀리 있지 않구나. 죽음이 언제 어디서 찾아올지 아무도 모르는구나. 지금도 땅밑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언제 어디서 뜨거운 물이 솟아올라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죽음으로 몰아갈지 아무도 알 수 없구나. 그렇게 그곳은 삶과 죽음이 공존해 있는 그런 장소였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얼마 전 소천하신 고 이어령박사님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것임을 삶으로 잘 보여준 분이십니다. 죽음이 우리 인생에 결코 오지 말아야 할, 우리 인생을 끝내 버리는 그런 것으로 여기지 않고 우리의 영원한 삶에 반드시 거쳐가야 할 과정으로서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열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암말기 판정을 받고는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을 전혀 어색해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용기있게 받아들이셨죠. 그리고 자신에게 남아있는 시간들을 멋있게 사시다 죽음을 맞이하셨습니다. 우리도 언제 죽음을 맞이할지 아무도 모릅니다. 청년이라고 더 오래 살까요? 노년이라고 더 빨리 죽는 것일까요? 그건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그저 살다가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만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알 수 없는 우리네 인생에서 언제 죽음을 맞이할 줄 모른다는 것은 암울한 사실이 아니라 남아 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를 알려주는 멋진 진실입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요즘 시니어와이즈 성경공부에서 시니어 분들과 매주 나누고 있습니다. 시간적으로는 얼마 남지 않았다고 느껴질 수 있는 분들이 이러한 진실을 마주 대하며 하루하루 즐기며 기뻐하며 사시려는 모습을 볼 때 너무나 뿌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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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Jul 06.2025 나와보니 알았습니다
    ​지난 주 중고등부 학생들을 위한 수련회가 말리부가 보이는 페퍼다인 대학교에서 있었습니다. LA에 있는 한 교회에서 주최한 수련회에 조인하여 함께 은혜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느 날 기도하던 중에 학생들을 데리고 이 수련회에 참석하면 좋겠다는 마음을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라스베가스의 지역적 특성상 더 넓은 세계를 볼 수 없는 한계가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라스베가스는 세계 최대의 도시입니다. 그곳에 살면서 경험할 수 있는 풍성한 것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기에 더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더 많은 세계들을 만나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캘리포니아에서 살아가는 또래 친구들과 믿음의 선배들을 만나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사람이 우주이고, 더 많은 사람을 경험하는 것이 더 넓은 우주를 경험하는 것일테니까요.  수련회장으로 5시간을 운전하여 도착했습니다. 시작부터 학생들이 잘 적응하여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보는 저도 흐뭇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무엇인가를 배워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학생들이 서로 어울리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도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었던 것이지요. 무엇보다 나와보니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가족애였습니다. 나와서 보니 학생들이 그저 남의 집 자식이 아닌 내 자식처럼 느껴졌습니다. 아이들이 잘 적응하고 있는지, 어려워하는 부분은 없는지, 지쳐보이는 아이는 없는지, 불안해 보이는 아이는 없는지 계속 살피며 이들을 보살피고 돌보아 주어야 했습니다. 학생들끼리도 그것을 느꼈나봅니다. 서로를 아껴주고 이해해 주고 더 돈독하게 서로를 챙겨주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나와보니 학생들도 느끼는 것이 있었나 봅니다. 마지막 날에는 학생들이 준비한 퍼포먼스를 발표하는 순서가 있었습니다. 우리 아름다운교회 학생들이 퍼포먼스를 한가지 준비했습니다. 출발하기 전부터 교회에 모여 아이들이 열심히 준비했지요. 막상 이곳에 와서 연습을 하는데 다른 교회들이 하는 모습을 보면서 더 잘 해보려고 똘똘 뭉치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제일 잘 하는 것 같다고 자부심을 함께 느끼기도 했지요. 나와보니 가족애가 저절로 생겨났나 봅니다. 수련회를 마치고 돌아온 후에 앞으로가 더욱 기대 되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돌보며 세워주며 이해해주며 용납해주고 도와주고 희생하고 격려하며 공동체를 함께 세워나가는 것이 어떤 모습일지를 조금이나마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나보다는 우리를, 나보다는 교회를, 나보다는 사회를 위하는 마음을 배웠기를 바래봅니다. 학생들이 이기적인 모습을 벗어버리고 함께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느낀 이번 수련회, 참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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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Jun 29.2025 마음 중심
    우리의 마음에는 마음의 소원한 것들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램들이 있습니다. 그것도 되도록 일찍 이루어졌으면 하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전도서에서 솔로몬을 통해 이미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천하만사에 다 때가 있다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린다는 것이 현실에서는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계좌를 보니 다음 달 렌트비가 나갈 돈보다 적은 돈이 들어있을 때, 신분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을 때, 아픈 몸이 빨리 낫지 않을 때 등등. 이러한 실제적인 문제들 앞에서 마음이 조마조마할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목회를 하는 저도 목사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마음을 조급하게 만드는 것들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머리로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또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고 기도를 하면서 이것을 믿음으로 고백하고 마음으로 확신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실제 상황을 만나게 되면 그 믿음이 다 어디로 사라져 버리는지 한순간에 두려워하고 초조해 하는 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왜? 도대체 왜 하나님은 한번에 좀 주시지, 한번에 좀 해결해 주시지, 주실 거면 빨리 좀 주시지 왜 이렇게 뜸을 들이십니까? 하소연도 해 봅니다. 그러던 중에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강하게 말씀하시는 것이 있었습니다. “너의 마음 중심에 도대체 뭐가 있느냐?”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면서 도대체 마음 중심에 뭐가 있느냐고 대뜸 물으셨습니다. 이제 이 질문과 씨름을 합니다. 이 질문의 답이 무엇인지 몰라서 씨름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과 현실 사이에 있었던 커다란 갭을 발견하고 난 뒤 이 갭을 좁히기 위한 씨름을 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 중심에 있는 것이 하나님인지, 아니면 하나님이 주실 그 무언가였는지. 아직 미성숙한 아이들은 선물에 약합니다. 선물을 사서, 때론 먹을 것을 사서 집에 들어갈 때면 이 아이들을 나를 기다렸는지, 아니면 제 두 손에 들려있는 것을 기다렸는데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미성숙한 아이들은 매일매일 선물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아빠보다 아빠의 두 손에 들려있는 당장의 선물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목을 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게 한참을 씨름하다가 드디어 제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확신이 차오르기 시작합니다. ‘그래. 내가 신뢰하고 의지해야 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이전에 몰랐기 때문이 아니라 알았지만 현실의 문제 앞에서 이제 더 진실한 고백을 확신 가운데 드리게 된 것입니다. ‘그래. 내 마음 중심에 있어야 할 것은 오직 하나님 한분이시다.’ 이렇게 고백하고 나니 흔들렸던 마음에 평강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제 삶에 다시 여유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사야가 우리에게 전한 말씀,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신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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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Jun 22.2025 생명이 있다면
    몇 주 전 NV Energy에서 노티스를 하나 받았습니다. 교회에 있는 소나무 중에 하나가 전기줄에 침범을 해서 가지를 정리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업체에 견적을 받아보았는데 요즘 시국이 그래서인지 생각보다 가격이 비쌌습니다. 그래서 견적만 여기저기 받다가 시간만 흘러가고 있었지요. 그러다 한 성도님의 결단과 헌신으로 우리가 자르자고 하고 지난 주에 가지치기를 진행했습니다. 하필이면 가장 바람이 많이 부는 날, 나무를 올라가자니 땅에 그냥 서 있는데도 휘청휘청할 정도의 바람에 겁이 났습니다. 어찌 됐건 그 성도님께서 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가지들을 쳐내 가면서 결국 깔끔하게 가지들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일이 마무리 될 무렵 제 눈에 이상한 것이 한가지 들어왔습니다. 잘려나간 가지에서 갈색빛의 액체가 흘러나오는 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나무의 진액이었습니다. 너무 신기해서 계속 보았습니다. 진액이 점점 흘러나오더니 잘려나간 부분 전체를 덮었습니다. 그래서 궁금해졌습니다. 나무가 왜 진액을 내는지. 그것도 잘려나간 부분에 왜 진액이 흘러나왔는지. 모든 나무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상처가 나거나 곤충의 유충이 침투할 때 진액을 낸다고 합니다. 그렇게 진액을 내어서 외부 상처에 세균이 침투하지 못하도록 막는다고 하네요. 꼭 이것은 잘려나간 부분이 너무나 아파서 눈물을 흘리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제 마음도 짠해졌습니다. 꼭 나무가 아프다고 말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아프지만 아픈만큼 진액이 나와서 자신을 보호하는 모습이 대견하고 기특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옆에 또 잘려나간 가지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지에서는 진액이 전혀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 가지는 죽은 가지였을 것입니다. 죽은 것에는 가지가 잘려도 진액이 전혀 나오지 않았습니다. 너무 신기해서 두 가지를 한 화면에 담아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생명이 너무나 신기했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는 생명이 공급되고 있는 가지였습니다. 한 가지는 생명이 차단된 죽은 가지였습니다. 둘 다 잘려 나갔습니다. 그런데 하나는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진액이 나온 반면, 또 다른 하나는 전혀 진액을 내지 않았습니다. 순간 저는 생명이 이렇게 대단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잘려나가는 것과 같은 아픔을 경험하곤 합니다. 상처를 경험하곤 하지요. 그것은 모두가 경험하는 것들입니다. 중요한 것은 생명을 가졌느냐, 생명을 가지지 못했느냐입니다. 생명이 있다면 피투성이가 되었다 할지라도 보호하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언제가 다시 자라날 소망이 있습니다. 완전히 회복될 그 날이 오게 되겠지요. 하지만 생명이 없다면 소망이 없습니다. 회복될 가능성도 없지요. 그냥 툭 치면 몸통에서 떨어져 나가는 그런 가지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지는 불에 태워져 사라져 버리겠죠. 지금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다 할지라도, 엄청난 고통과 아픔과 시련이 내 마음을 괴롭게 할지라도 생명이신 주님께 뿌리를 내리고 있다면 괜찮습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살아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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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Jun 15.2025 사랑으로 자라납니다
    우리 교회 까페로 가는 길에 행운목이 한그루 화분에 심겨져 있습니다.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잎이 무성하고 멋진 자태를 보였던 나무였는데 어느 날 저의 실수로 햇빛에 계속 노출시켰다가 나무가 시들시들해져 버렸고 급기야 나무가 죽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께서 줄기를 다 잘라놓으신 것을 보고 저는 더 이상 이 나무는 희망이 없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그 나무에 잎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신기하게 잎이 나는지 줄기 하나에 양쪽으로 잎이 올라오더니 지금은 제법 많아졌습니다. 죽은 것만 같은 나무가 누군가의 사랑과 관심을 받으니 다시 살아난 것이죠. 그 모습을 보면서 저는 세상 모든 것을 회복시키고, 자라게 하는 것이 다름 아닌 사랑과 관심이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은 북한의 침략으로 전쟁이 발발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온 나라가 폐허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때 무슨 학교가 있고, 그때 무슨 배움이 있었겠습니까. 그 시간을 지나온 분들은 대부분이 배우지 못하는 환경 속에서 자라나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자주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도 훌륭하신 분들이 사회에 많이 배출되었고, 그분들을 통해 사회는 매우 건강하고 힘있게 발전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보면 훌륭한 사람은 반드시 학교 교육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도리어 학교 교육은 사람을 더 악하게 만들고 사회를 불안에 빠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전문가들의 주장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라게 하고, 성장시키는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사랑과 관심, 그리고 희생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죽은 것처럼 보이던 나무가 누군가의 관심과 사랑, 그리고 헌신적인 희생을 통해 다시 살아났던 것처럼 그러한 사랑과 관심, 그리고 희생이 우리 사회, 우리 가정, 우리 공동체를 건강하게 만들지 않을까요? 인간은 아담의 범죄 이후로 더 높은 곳을 차지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돈을 벌려는 목적도, 권력을 가지려는 목적도, 좋은 차, 좋은 집을 가지려는 목적도 속을 들어가 보면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며, 더 높은 곳을 올라가기 위한 수단으로 삼으려는 것일 때가 많습니다. 돈과 권력,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의 가치는 중립적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선이 되기도 하고, 악이 되기도 하는 것이겠지요. 그것이 선하게 쓰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느냐? 어렵지 않습니다. 사랑하기 위해 돈을 사용해 보십시오. 희생하는 일에 권력을 사용해 보십시오. 건강하고자 하는 목적이 누군가에게 사랑과 관심을 쏟기 위한 것이 되면 어떨까요? 칼럼을 계속 쓰다보니 내용이 늘 이상적인 이야기만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하나라도, 누군가 한사람이라도 실천한다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공동체에 기적은 일어날 것이라 믿습니다. 사랑으로 자랍니다. 소망없는 인생들이 우리의 사랑과 관심과 희생을 통해 생명을 얻는 복음의 역사가 계속 일어나기를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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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
    아름다운교회 Jun 08.2025 우리의 소망은 오직 하나님 뿐이십니다
    지난 주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에서는 제21대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가 있었습니다. 이번만큼 관심이 많았던 선거가 역사상 또 있었을까요? 그래서인지 이번 대통령 선거의 투표율은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된 1997년 대선 이후 28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였다고 합니다. 그만큼 온 국민의 관심 가운데 진행된 투표였기에 당선 결과에도 많은 희비가 엇갈렸습니다. 저는 여러 사회적, 개인적 반응들을 살펴보며 사람들이 얼마나 정치에 관심이 많은지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반면 사람들이 얼마나 정치에 희망을 걸고 있는지 또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게다가 이번 선거는 교회가 정치에 얼마나 깊숙이 관여되어 있는지를 눈여겨 볼 수밖에 없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정치에 참여해야 하고, 선거에도 참여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국가의 시민으로서의 정당한 권리와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또 한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모든 것은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속에서 되어진다라는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쳔은 원하는 대로 이루어졌다고 해서 교만해서도 안 될 것이며, 원치 않는 결과가 나타났다고 해서 낙심해서도 안 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상 위대한 제국을 이루었던 바벨론, 그리고 로마. 이 두 제국은 역사상 전무후무한 강대국들로 손꼽히는 국가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두 국가 모두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데 쓰임 받았고, 그 일을 다한 후에는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때가 되자 하나님께서 멸망시키신 것이죠. 그 중에서도 바벨론은 정말 무너지지 않을 것만 같던 강대국이었습니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았고, 영원히 그 영광과 권력을 누리며 세계를 통치할 것만 같은 나라였죠. 누가 그 나라가 멸망할 것을 예상이나 했겠습니까? 그런데 그 위대한 바벨론도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대로 정확히 남유다를 멸망시킨 후 70년 만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런 걸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도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기때문에 세계 속에서 쓰임을 받고 있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손을 놓으시면 아무 것도 아닌 나라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온 열방의 통치자가 되시고 온 나라를 다스리시는 만왕의 왕이시라는 사실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소망은 정치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한 개인이나 사람이 되어서도 안됩니다. 정치 뿐만 아니라 사회, 교육, 문화, 그 어떤 것도 우리의 소망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오직 하나님 뿐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치색이 다른 사람이라 할지라도, 교육 수준이 다른 사람이라 할지라도, 어떤 환경 속에서 살아왔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한 교회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결코 잊지 맙시다. 우리의 소망은 정치가 아닌 하나님이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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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
    아름다운교회 Jun 01.2025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지난 주 수요일 저녁, 함께 모여 예배 드리면서 다윗이 어떻게 위대한 삶을 살 수 있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윗을 위대하게 만든 것은 그의 노력이나 성품, 성공, 승리가 아닌 그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은 것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의 인생을 성경에서 자세히 살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가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수록 하나님께 여쭈었다는 사실을 적지 않게 발견하게 됩니다. 그가 기도의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그의 기도의 삶을 살펴보면서 오랜만에 예전에 들었던 문구를 하나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일하면 우리가 일하고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일하신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통해 하고자 하신 일은 다윗의 위대함을 드러내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을 통해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크심을 드러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나타내기 위해서 다윗에게 가장 요구되었던 것은 바로 무릎을 꿇는 일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기도만 하고 앉아 있지 않았습니다.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살았던 다윗, 누구보다 역동적으로 움직였던 다윗입니다. 하지만 그는 기도 없이는 일을 시작하지 않았고, 기도 없이는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야의 아내였던 밧세바를 빼앗아 왔던 일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기도하지 않으면 천하의 다윗이라 할지라도 어떤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지를 너무나도 잘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쯤되면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여러분들도 마음에 생각하고 계실 것이라 믿습니다. 그런데도 어찌된 일인지 우리는 기도하는 일에 열심을 내지 않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일을 시작할 때가 많고, 기도하지 않고 봉사하고 헌신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을 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맙니다.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는 일조차도 나를 위하여 하는 일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이죠. 어떤 점에서는 일하는 것과 기도하는 것,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일하지 않고 기도하는 편을 택하는 것이 훨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기도가 항상 먼저여야 합니다. 기도 없이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드러낼 아무 방법도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 없이는 하나님을 드러내기보다 나의 업적과 나의 성과를 드러낼 수밖에 없고, 사람들은 그런 나를 칭송하며 높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목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여름 VBS가 있었습니다. 교회에 기도를 선포하고 새벽마다 그리고 수요일 저녁에 함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일을 행하실지 정해놓지 않고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일하심이 VBS를 통해 드러나도록 기도했습니다. 역시나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일하셨습니다. 아이들 마음에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하셨습니다. Soli Deo Gloria,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 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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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
    아름다운교회 May 25.2025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입니다
    인도의 기차는 대부분 시간을 맞춰서 도착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기차가 3시간씩, 5시간씩 연착을 해도 불평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하루 늦게 도착하는 경우가 있다고도 하는데 그래도 어느 하나 불평하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이런 곳에서 살다 미국으로 이민을 온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이 사람이 나의 친구라고 가정해 봅시다. 여러분은 아마도 그 사람과 약속시간을 정해도 제시간에 만나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인도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느리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도에 살아 보았던 많은 사람들이 일처리가 늦어서 고생한 경험들을 하나같이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느림의 생활 문화는 다름 아닌 인도인의 시간관념에서 오는 것입니다. 인도 사람들은 서구인들처럼 아침과 저녁을 하루로 생각하거나 삶과 죽음을 시작과 끝으로 보는 직선적 시간관념이 아니라, 오늘과 내일 혹은 이생과 내생을 연속으로 바라보는 순환적 시간관념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오늘 안 되면 내일 될 것이고, 내일 안 되면 언젠가는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에드워드 홀(Edward Hall)이라는 사람은 문화권에 따라 단일시간(monochronic time)과 복합시간(polychronic time)을 사람들이 선호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단일시간을 선호하는 유럽과 미국 같은 경우, 사람들은 한번에 한가지 일만을 처리하면서 시간을 철저하게 관리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 복합시간을 선호하는 동남아시아, 중남미, 아프리카, 중동의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일들을 상황에 맡게 처리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그 말은 이 사람들이 일을 처리하는 효율성보다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더욱 중요시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시간을 맞추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중남미에 가보면 사람들이 관공서에 일처리를 하기 위해 줄을 서는데 몇시간이 지나도 그들은 아랑곳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 일을 처리하기 위해 온 사람들이 아니라 사람들과 대화하기 위해 그곳을 온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시간 하나만 보더라도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지구상에 많이 존재합니다. 만약 우리가 친구와 약속을 했는데 10분, 20분 정도가 아니라 2시간을 늦게 나온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아마 우리는 그것에 대해 굉장히 심한 비판을 가할 것입니다. 그것은 틀렸다고 말하면서요. 그런데 한발자국만 물러서서 생각해 보면 틀려서가 아니라 달라서 생기는 문제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물론 틀린 문제라면 이야기는 약간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문제들이 틀려서라기보다 달라서 생기는 문제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먼저, 틀린 것이 아니라 달라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둘째로, 문화 차이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이 필요합니다. 셋째로, 상대방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무조건 틀렸다고 하기 이전에 달라서 그런 것은 없는지 한번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그러면 생각보다 많은 문제와 갈등이 해결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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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9
    아름다운교회 May 18.2025 모두가 꿈꾸는 파라다이스
    여러분은 파라다이스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대개 사람들은 파라다이스하면 에머랄드 빛을 띄는 바다가 펼쳐진 몰디브 같은 곳을 떠올립니다. 죽기 전에 꼭 한번 방문하고 싶은 곳에 손꼽히는 곳이죠. 또 어떤 사람들은 모든 것을 누리며 살아가는 세상을 상상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이 단어는 성경에도 나온 단어입니다. 헬라어로 파라데이소스에서 파라다이스라는 단어가 나온 것이죠. 이 단어는 성경에 세 번 등장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옆에 달려 있던 강도가 예수님께 구원을 요청하죠. 그때 예수님께서 네가 나와 함께 낙원(파라데이소스)에 있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두 번째는 사도 바울이 영적 신비를 체험했던 삼층천(파라데이소스)을 설명할 때 이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마지막은 계시록에서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이기는 자에게 하나님의 낙원(파라데이소스)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시겠다고 약속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이 세 곳에서 사용된 의미들을 토대로 이 파라다이스는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는 곳이 분명합니다. 다시 말해 파라다이스는 하나님과 떨어뜨려 생각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말이죠. 파라다이스는 하나님의 통치가 있는 곳입니다. 그곳은 분명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그 외의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께 경배하는 그런 곳일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이미 파라다이스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배의 현장을 통해서이죠.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올려드리고 하나님께서 선포하시는 말씀을 듣는 곳, 그곳이 바로 파라다이스라는 말입니다. 그곳은 특정 사람들만 있는 곳은 아닐 것입니다. 계시록에서는 모든 민족과 열방과 방언이 함께 주님을 찬양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파라다이스가 임할 때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이 얼마나 멋진 광경입니까? 그곳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라면 누구나 함께 지낼 수 있는 곳, 누구나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할 수 있는 곳, 누구나 하나님이 펼쳐놓으신 세계에서 동일하게 숨쉬며 살아갈 수 있는 곳. 누구나 기회를 부여받고 누구나 마음껏 사역의 장을 펼져나갈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파라다이스라고 확신합니다. 여러분은 어디에서 파라다이스를 찾고 계십니까? 지금 우리가 함께 하고 있는 이 아름다운교회가 파라다이스라는 생각을 해 보진 않으셨습니까? 혹여나 다른 곳에서 파라다이스를 찾고 헤매고 계시진 않으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파라다이스를 만들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통치함을 받고 차별없이 누구나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가 되게 할 때 이곳은 하나님의 파라다이스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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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May 11.2025 1세대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세지
    미국에 처음 정착하셨던 우리의 1세대 분들은 참 고생 많이 하며 사셨습니다. 어떤 분들은 한국에서 내놓으라는 대학도 나오시고, 남들 앞에 부끄럽지 않는 직장도 다니셨는데 이 먼 미국 땅에 오셔서 밑바닥에서 고생고생하며 사셨습니다. 어찌보면 힘들 법도 하고, 억울할 법도 하고, 견딜 수 없을 만큼 서럽기도 했을텐데 꾸역꾸역 참아 오셨습니다. 그러다보니 세월이 만들어낸 주름들이 얼굴에 생겨나고, 여기저기 아픈 곳도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마음에도 여기저기 구멍이 나고 상처 투성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상처를 드러내는 것조차도 자식들에게 누가 될까봐 티를 내지 않고 살아가게 됩니다. 때로는 수많은 세월 동안 산전수전 공중전까지도 다 겪으면서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 왔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작은 어려움이 찾아오면 왜 이렇게 마음이 약해지는지.. 강한 척을 해보지만 정작 연약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게 됩니다. 요즘 새벽마다 민수기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고 있습니다. 1세대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서 그들이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왜 불평이 끊이지를 않는지. 왜 원망이 사라지지를 않는지. 도대체 하나님께 대하여까지 불신을 드러내는지. 꼭 그래야만 하는지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불평하고 원망한 것으로 인해 한 사람도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징계를 받게 됩니다. 그것도 이해가 안 됐습니다. 그 원망과 불평을 멈추었다면 그들도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을텐데 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1세대 이스라엘 백성들을 생각하면서 마음이 너무나도 아팠습니다. 광야 생활을 하며 얼마나 힘들었으면 저렇게 원망하고 불평할까. 얼마나 마음에 상처가 컸으면 저런 반응을 보일까. 오히려 강한 사람은 티를 내지 않습니다. 강한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여유가 있습니다. 강하지 못한 사람에게서 오히려 티가 나는 법이죠.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음에 있던 상처와 아픔들로 인해 원망하고 불평하며 살아갔습니다. 이 구약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선택하셨고 누구보다 사랑하시기에 그들을 아끼시고 돌보셨습니다. 반역에도 그들을 이끌어 주셨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느냐 들어가지 못하느냐가 천국에 들어가고 안가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메시지를 구약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강력한 주제가 무엇이냐? 그것은 광야의 훈련을 잘 받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훈련 받기를 원하십니다. 어느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훈련을 통해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사람도, 세상도, 물질도, 건강도, 그 어떤 것도 의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제 그 정도 당해보고 상처 입어 보았으면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나만 의지하라고 나만 바라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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