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박대우목사) 22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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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박대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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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Jan 14.2018 교회의 직분자가 된다는 것
    올 해 우리 교회는 11분의 서리집사가 새롭게 임명되었습니다. 이 분들은 생애 처음으로 ‘집사’라는 칭호를 받는 분들입니다. 장로, 안수집사, 권사와는 달리 서리 집사는 매년 교회로부터 임명을 받아서 1년 동안 집사의 직분을 행하는 임시직입니다. 저희 교회는 이러한 분들을 사랑하고 축복하며 축하해드리고 있습니다. 이분들에게 거는 기대가 있습니다. 좋은 모델을 만들어 달라는 것입니다. 앞선 선배들의 고질병과 같은 모습은 닮지 말고, 순종하며 말씀대로 좋은 영향력을 줄 수 있는 분들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찌 신임 서리집사에게만 요청되는 것이겠습니까? 기존에 있던 모든 직분자들에게 요청되어지는 것이지요. 제가 어려서부터 배운 것이 이러한 원리입니다.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중심’이라는 말입니다. 아주 단순하면서도 신앙생활의 모든 원리가 이 세 마디에 담겨져 있음을 깨닫게 된 후에는 정말 진리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직분자들은 하나님 중심의 삶, 성경 말씀에 순종하는 삶, 그리고 교회 중심의 삶을 살도록 배운 것입니다. 특별히 직분자가 되었다 함은 교회 중심의 행동반경을 가진 사람이어야 합니다. 직분자가 교회중심으로 움직여지지 않으면 그 직분은 개인의 명예를 위한 직분이 되어버립니다. 직분을 받았으면서도 교회 중심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직분을 명예처럼 사용하는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직분자는 믿음이 좋아야 하지만,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교회 중심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그 교회에 쓸모없는 직분자가 되어버립니다. 교회중심이라는 말은 모든 삶의 중심에 교회를 두고, 생활하는 모든 마음이 교회를 향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교회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함께 걷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어떤 직분자는 교회가 어떻게 움직이든 상관하지 않고 자기가 가고 싶은 길을 갑니다. 회의를 해도, 행사를 해도, 그것에 맞추어 시간계획을 편성합니다. 그러나 직분자들은 여행, 직장, 가족모임, 각종 회의를 교회의 움직임에 따라서 편성해야 합니다. 그것이 책임있는 직분자들의 자세입니다.바울 사도는 그 직분을 맡은 사람에게 요구되어지는 것은 오직 ‘충성’이라고 했습니다(고전4:1). 다른 많은 요구조건이 있을 법한데, 한 가지를 분명하게 선을 그었습니다. ‘충성’ 에는 두 가지 조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변하지 않는 신실함 그리고 다른 하나는 책임감입니다. 충성하는 직분자들은 변하지 않는 신실성이 있습니다. 충성의 기질은 뜨거움이나 열정보다는 이 변함없이 일관된 삶을 의미합니다. 자기 기분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판단하지 않으며, 오직 자기를 써 주시는 주인의 마음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책임감은 그러한 자세 가운데서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결과입니다. 맡은 일에 책임감이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책임감이 없는 사람들은 남에게 미루거나,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관심이 없습니다. 충성됨이란 성령의 열매이기도 합니다. 정말 성령의 사람은 이러한 ‘충성이 있는 사람입니다. 성령은 받았는데 이러한 충성됨이 없이 자기 기분에 따라 사는 사람은 미성숙한 사람일 뿐입니다. 새 해에 각자에게 주어진 직분이 있습니다. 주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바로 ’충성‘입니다. 그것은 열정이 아니라, 신실과 책임감입니다. [이 게시물은 아름다운교회님에 의해 2021-02-23 15:22:13 목회칼럼에서 이동 됨] [이 게시물은 아름다운교회님에 의해 2021-02-23 15:25:36 설교영상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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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Jan 07.2018 그러면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2018년의 새 해가 밝아, 첫 주일을 맞이합니다. 지난 일들은 이제 잊어버리고 새로운 날을 친구삼아 새 출발을 합니다. 다시 한 번의 기회가 우리에게 주어진 셈입니다. 정말 얼마 남지 않은 시간들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인생입니다. 축포를 터트리며 새 해를 출발하면서 우리는 ‘새 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하나님의 복을 간구하고 출발하였습니다. 송구영신 예배도 그렇고 신년 축복 특별새벽기도도 그렇습니다. 복(福)만을 추구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과동행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고 싶어서 그 소망과 간절함이 그런 삶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날들은 그리 만만한 삶이 아닐 것으로 알고 갑니다. 모든 일들이 잘되는 것을 바라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원하지 않은 상황들이 참 많이 우리 주변에 일어났습니다. 그것들은 안 일어나야 하는 ‘비극’이라고 생각하면 정말 비극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우리 인생을 든든히 주님앞에 세우고자 하는 하나님의 손길로 받아들이고 주님이 만들어주신 길을 믿음으로 흔들리지 않고 걷다가 보면 훨씬 성숙한 길로 가게 됨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어버이 날에 듣는 가슴을 울리는 시가 있습니다. 제목은 ‘엄마는.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라는 심순덕 님의 시입니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여름 뙤약볕을 머리에 인 채 호미 쥐고/온 종일 밭을 매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 고된 일 끝에/ 찬 밥 한덩이로 부뚜막에 걸터 않아/끼니를 때워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중략) 내가 엄마가 되고 엄마가 낡은 액자 속/ 사진으로만 우리 곁에 남아 있을 때/ 비로서… / 엄마는 그러면 안되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엄마는… / 엄마는… / 그러면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이 시를 읽으며 눈물을 쏟은 때가 있었습니다. 당연히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는데, 깨닫고 보니 아, 엄마는 그래도 되는 것이 아니었다는 말이 가슴이 먹먹해졌던 적이 있었습니다.우리의 신앙생활도 그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신앙생활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기도 안해도 되고, 말씀 안 읽어도 되고, 예배 생활에 좀 늦게 나가도 되고, 설교시간에 졸거나 잡담하거나, 핸펀으로 장난하거나, 밖으로 맴돌아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모두가 그렇게 하니, 신앙생활 그렇게 해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은혜받고 보니, 신앙생활 그렇게 하면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시지어 읊고 싶습니다. 남들과 같이 편안하게 살고 싶고, 남들처럼 득달하지 않고 편하게 목회하고 싶고, 놀러가고 싶은 것 마음대로 하고, 특별 새벽예배, 부흥집회, 각종 양육성경공부, 목장모임등, 성도들 귀찮게 하는 일들 하지 않아도 교회만 재미있게, 잘 운영되고 부흥한다면 다 없애면 어떨까요? 예배시간 늦는다, 찬양팀 게으르지 말라, 잔소리 안해도, 그래서 얼굴 붉히며 살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닐까요? 그냥 주일 예배에 와서 편하게 예배만 드리고 가도하는 것이 신앙생활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요? 그런데, 만약 우리의 삶의 마지막에서 주님이 ‘신앙생활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라고 한다면 아, 그땐 어떻게 할까요? 그 일을 피해야지 않겠어요? 쉽지 않은 신앙생활 다시 달려갑니다. 힘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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