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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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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Feb 24.2021 하나님, 감사합니다
    벌써 교회가 창립된 지 11년을 맞이했고, 12년차를 향해서 걸어갑니다. 설렘과 두려움으로 시작한 작은 교회가 이젠 어느 덧 기반을 든든히 세우고 라스베가스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세계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담아내는 그릇으로 세워지고 싶은 열망을 가진 젊은 교회로 발돋음을 하고 있는 우리 교회가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작은 것이, 없어도 될 것이 하나도 없었던 세월이었습니다. 때로는 화려함과 든든함, 뜨거운 열정과 넘치는 소망으로 교회가 가득차는 은혜를 경험하기도 했고, 때로는 우리의 미숙함과 아픔으로 인해서 차가운 썰물을 경험하기도 했었습니다. 담임 목회자로 모든 일거수 일투족을 기억하고 있고, 내면의 아픔과 사정을 다 기억하고 있기에 우리 아름다운 교회가 지니는 특별함은 아마도 남다를 것 같습니다. 성도들은 그냥 지나갔을 진통을 온 몸으로 받아내며 남몰래 눈물 흘리며 기도했던 수많은 아픔의 세월들은, 성도들의 사랑과 헌신으로 하나씩 그 아픔과 눈물 자욱을 지워내며 한발 한 발 디디며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교회를 개척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뻔 했습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얼마나 사랑하고 아끼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모든 교회가 그러하겠지만, 우리 아름다운 교회를 생각하면, 제가 30여년 이상을 목회한 경험중에서 가장 뜨겁고, 가장 소중하고, 가장 하나님의 살아있는 역사를 쓸 수 있는 교회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강렬한 은혜를 맛보았고, 가장 많은 기적과 같은 사연들로 채워진 교회가 바로 아름다운 교회의 역사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교회를 더 잊을 수 없는 가장 소중한 추억이 만들어진 교회로 제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있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여기엔 사랑도 아픔도 함께 비벼져 거룩한 역사들이 써져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무엇이 가장 어려운 일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시작한 교회이다가 보니 재정적 여유가 늘 없었던 것이 어려움일 것 같았는데 사실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가난한 살림은 오히려 행복이었던 시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진 것은 없고, 항상 모자람뿐인 교회 살림이었지만 오히려 행복했다고 추억되는 것을 보면 부족함은 어려움이 되지 않았던 것이 분명합니다. 교회의 성장을 가로막는 느헤미야 시대의 산발랏과 도비야와 같은 사람들이 온갖 모함과 방해를 할 때에도 하나님은 아름다운 교회를 지켜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하나님 앞에 죄송하고 우리 성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목사의 부족함과 연약함입니다. 부모가 건강하고 행복해야 가정의 자녀들의 정서와 삶이 건강함과 행복함을 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목사의 건강한 영성과 감정 그리고 사역의 행복함으로 인해 양들에게 풍성한 꼴을 먹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립니다. 목사가 좀 더 좋은 자질과 영성 그리고 실력을 갖추었다면 우리 성도들이 더 잘 먹고 자랄 것인데 그렇지 못했다는 생각이 늘 자책하게 했습니다. 충분히 사랑하지 못했음이 늘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언제나 넉넉하게 우리의 부족과 연약함을 채워주신 지난날들이었습니다.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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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4
    아름다운교회 Feb 24.2021 유통기한
    오래 전에 들은 예화가 기억이 남습니다. 못은 써야 된다고 합니다. 쓰지 않고 방치해 두면 공기중의 수분과 염분으로 인하여 산화가 되어 부식이 일어나서 나중에는 쓸래야 쓸 수가 없게 된다고 합니다. 가만히 보니 땅에 던져진 못이 벌겋게 녹슬어 있어서 푸슬 푸슬 부서지는 것을 본 적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나는 안써서 가만히 모셔두었다가 녹슬어 없어지기 보다는 열심히 망치질을 당하고 쓰임을 받아 닳아서 없어지겠다라고 결의를 다지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정도의 차이가 있고, 관리의 차이가 있지만은 거의 모든 사물에는 ‘유통기한’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음식에도 유통기한이 명시되어있습니다. 약에도 물건에도 유통기한이 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유통기한, 그것이 인간의 수명이겠지요. 오직 사람만큼은 우리가 제조자가 아니니 유통기한을 명시하지 못한 것일 뿐, 우리의 수명이 제한 되어있어서 유통기한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어제 혼자 저녁을 해결해야 해서 무엇을 먹을까 하다가 찬장을 뒤져서 라면을 찾아냈습니다. 여러 종류의 라면이 있어서 이리 저리 생각하다가 오래 전에 사두었던 꼬꼬면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개봉을 하고 포장지를 보니 유통기한이 적혀있었습니다. 그런데 6개월이상 지난 것이었습니다. 먹어, 말어? 버려야 하나? 잠시 고민을 하다가 뭐, 6개월인데… 그러고서 먹었습니다. 찝찝한 마음으로 먹어서인지 맛은 별로였습니다. 그 나마 몸 상태가 좋지 않은데다가 더 나빠졌습니다. 그러면서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통기한내에 처리를 했어야 하는데 아깝다고 두었다가 이러는가 싶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우리 집에는 유통 기한을 넘긴 것이 수두룩합니다. 버리지 못하는 습관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냥 버리기가 아까워서 둔 것인데, 특히 약이 더 합니다. 작년에 유통기한 지난 것들은 과감하게 버린 것이 한 보따리인데도 아직도 가끔 눈에 띄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 주부들은 어떨까요? 냉장고에 음식을 사다가 놓습니다. 먹어야지 하다가, 사정상 다 먹지 못하고 냉장고 안에서도 부패되어 버린 음식이 하나 둘이 아닐 것입니다. 아마 모두가 경험한 이야기 일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유통기한이 되기 전에 다 먹든지, 먹지 못하면 이웃에게 나누어 주면 아깝게 버리는 일을 없지 않을까? 아깝다고 아끼고, 아끼고 또 아끼다가 결국 유통기한을 넘겨서 버려야 하는 아이러니… 주님은 어떻게 보실까요?그러고 보면, 우리 인생도 분명히 유통기한이 있습니다. 제조자이신 하나님만이 알 수 있는 기간이지요. 그렇다 하더라도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유통기한을 가지고 우리는 산다는 것입니다. 이 삶을 버려진 채로 살 것인가, 아니면 쓰면서 섬기면서 살 것인가의 결정은 우리에게 달려져 있습니다. 여러분의 건강, 물질, 시간, 재능, 모든 것을 어떻게 사용하려하십니까? 유통기한 내에 잘 사용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가만히 버려두고 있다가 어느 날 용도폐기하는 일이 일어난다면 이 얼마나 아깝고 통탄할 일이겠습니까? 유통기한이 다가오고 있는 저에게도 심각하게 느껴집니다. 썩이지 맙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영원한 가치에 우리가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니고데모, 그것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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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3
    아름다운교회 Feb 24.2021 어린 소녀 하나로 인하여
    열왕기하 5장에는 어린 소녀 하나가 잠깐 등장하고선 곧 사라집니다. 이 소녀는 이스라엘 사람인데 아람사람들이 사로잡은 포로이며, 이 소녀가 아람군대장관 나아만의 여주인을 섬기는 여종이 되었다는 이야기뿐입니다. 그런데 그 집 주인인 나아만은 지위는 고관이지만 나병환자였습니다. 하늘이 내린 병이라는 무서운 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이 주인의 모습을 본 이 어린 소녀는 자기 고향 땅에 있던 선지자 이야기를 꺼내며 주인의 병이 나을 수 있음을 알려줍니다. 역사는 거기서 시작됩니다. 나병을 앓고 있던 나아만에게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나병을 낫게 해주는 선지자가 있다는 이 말에 정신이 번쩍 들어서 왕명을 가지고 이스라엘에 건너갑니다. 그리고 엘리사를 만나서 극적으로 자신의 나병이 낫게 된다는 참 통쾌한 이야기가 실려져 있습니다.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금 중국에서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서 2월 14일자로 63,950명이 감염되었고 1,485명이 사망했습니다. 하루에도 100여명이 죽어나가는 그 죽음의 도시에서 누가 두렵지 않겠습니까? 그 도시에 만일 그 바이러스를 이길 수 있는 백신이 개발되었다는 소식이 있다면 그것은 복음 중의 복음일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백신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사람이 없다면 지금도 하루에 100명 이상이 죽어나가고 있는 이 암담한 현실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남의 나라, 남의 이야기인데도 이렇게 마음이 아프다면, 내 나라, 내 가족의 누군가가 그 백신에 대해서 듣지 못하고 죽어간다고 한다면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습니까?지난 주 어느 날, 한 숨을 자지 못하고 뜬 눈으로 밤을 새웠습니다. 그 발단은 우리 청년들을 생각하면서였습니다. 어느 식당에 식사하러 갔다가 그 주인과 대화를 하는 중에 아름다운 교회에 대학생들이 가장 많다고 소문났다고 하는데 참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이들이 다 어디로 갔을까, 그들은 왜 모이지 않는 것일까, 이것은 단지 대학생들 뿐이 아닙니다. 어른들도 그렇습니다. 교회가 11년을 지나고 있는데 이웃 교회들에는 사람들이 넘쳐난다는 소문이 나는데 왜 우리는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을까? 여러 가지로 생각이 들어서 잠을 이룰 수 없는 밤이 있었습니다. ‘복음!’ 복음이 사람을 살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하는데 왜 우리들은 우리의 교회를 자랑할 수 없을까? ‘우리나라에 당신의 병을 고칠 선지자가 있어요!’ 나병환자인 나아만 장군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소식이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이 소녀의 말 한마디가 나아만을 움직였는데, 우리는 왜 그보다도 더 좋은 복음인 기쁜 소식을 말한마디 못하고 사는 것일까요? 내가 내 교회와 내가 가진 복음인 예수를 자랑할 수 있는 이유를 찾지 못했다면 그야말로 교회를 어쩔 수 없이 다니는 것은 아닐까요? 그냥 친교하러 교회에 나오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는 이곳에서 ‘복음’을 누리고 있는가, 여기서 나에게 생명을 주는 기쁜 소식을 발견하고 있는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소녀의 이 한마디가 나아만을 움직였고, 나라를 움직였습니다. 우리의 입에서 어떤 말들이 나가야 합니까? 세상 사는 이야기도 필요하고, 삶의 지혜도 필요하지만 ‘복음’에 대해서 입을 닫고 있다면 우리는 심각한 질병에 걸려 있는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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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2
    아름다운교회 Feb 24.2021 두려움
    세계적으로 바이러스로 인한 공포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와 미국에서 발병한 독감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입니다. 미국에서는 벌써 1만여명이 사망하고, 중국에서는 몇 주 사이에 700명 이상의 사망자와 감염자가 나와서 온 세상 사람들이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회의가 있어서 LA를 다녀왔습니다. 별 생각 없이 버스를 타고 다녀왔는데 바로 옆자리에 기침을 하는 젊은 동양인이 함께 앉아왔는데, 자꾸만 기침을 하는 바람에 기분이 싸~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러다가….? 이제라도 마스크를 써야하나? 이런 저런 생각들과 싸우고 있는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정도로 마음이 복잡한데, 현장에서는 직접 사망하는 것을 눈으로 지켜보아야 하는 사람들의 두려움은 얼마나 클까 상상해 보았습니다.세계의 전염병 역사를 보면 정말 두려울 일이 많이 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기원전 430-427년에 아테네에서 전염병(흑사병, 홍역?)이 돌아서 아테네 인구 1/3인 10만여명이 사망했다는 기록에서부터 로마에서는 5백만명이 사망했다는 기록, 주후 500년대에는 유스티안 전염병으로 세계 인구의 1/4인 2,500만~5,000만명이 사망하고, 잉카제국이 총칼에 의해서 무너진 것이 아닌 전염병으로 멸망했다는 기록 등을 보면 정말 전염병은 두려운 존재인 것은 사실입니다. 이런 역사적인 배경을 가진 인류이기 때문에 전염병에 대해서 민감한 반응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삶과 죽음을 넘나들어야하기 때문입니다.아무리 죽음에 대해서 호언장담을 한다 해도, 인간은 근본적으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거의 공포수준입니다.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삶을 사는 것이 인간이라고 하면서도 아이러니하게 우리는 죽음을 의외로 준비하지 못하고 사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만큼 죽음을 가깝게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두려워는 하지만, 죽음을 준비하지 않는 이 현실이 모순입니다.성경은 이야기합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을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10:28). 바이러스는 두려워하는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하나는 알고 둘은 알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삶에 대한 경외감으로 가득찬 생활을 합니다. 작은 일 하나에도 우리는 아파하고 살아야 할 용기조차 잃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행할 마땅한 자세가 아닙니다. 오직 두려워할 대상은 세상이 주는 어떤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 이것은 공포가 아닙니다. 그것은 경외심에서 나오는 거룩한 마음입니다. 이 경외심이 없으면 막연한 불안감이나 두려움 때문에 쉽게 신앙생활이 왜곡을 받게 됩니다. 그렇지만 경건한 경외심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기쁨으로 새롭게 세우게 합니다. 나를 새롭게 하고, 정말 두려워할 대상을 바르게 알고 경건한 신앙생활을 격려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 주셔서 감사하며 이 땅의 것들을 놓을 수 있을 만큼 살아야 합니다. 이 막연한 두려움들을 딛고 일어나 하나님을 향한 경외함으로 새로운 영역에서의 변화를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이 두려움들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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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1
    아름다운교회 Feb 24.2021 니.모.를 찾아서
    아이들을 위한 에니메이션 ‘니모를 찾아서’라는 영화가 인기가 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 영화의 주인공 물고기가 ‘니모’였는데, 공교롭게도 이번 창립 11주년을 기념하여 ‘나의 영적 니고데모(니.모) 찾기 운동’의 이름이 같습니다. 니고데모는 유대인의 관원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어느 날 저녁에 예수님을 찾아와서 영생에 대한 관심을 보였던 사람입니다. 당시 유대 공의원들에게는 예수님이 눈엣 가시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유대교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젊은 예수가 곱게 보이지 않았을 것은 분명했습니다. 요 7-8장에는 그러한 날카로운 논쟁과 살의가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도 니고데모는 다른 공의회원들과는 달리 예수님을 변호하는 입장에 서는 것과 같아 보입니다. 예수님의 권위와 말씀의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오는 3월 1일에 있을 창립 11주년 감사예배를 드리면서 ‘나의 영적 니고데모찾기’행사를 하려고 합니다. 단지 우리만의 감사가 아니라, 교회의 존재목적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기에 우리만의 잔치에서 예수님이 전해지는 잔치로 바꾸어보는 행사입니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 서성이면서 ‘와서 나를 도와주세요’라고 외치는 바울시대의 헬라인이 있음을 알기에 이전 성전에서는 했던 행사였으나 이곳에 이사와서는 해보지 못했던 행사를 다시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베가스가 특별합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면 하나님, 예수님에 대한 관심은 가지고 있고, 과거에 교회생활을 해본 사람들이지만 아직 교회를 다니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좋은데 교회는 싫어하는 환자(?)들이 제법 많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교회의 잘못이기도 합니다만 교회의 잘잘못을 떠나서 현대 사회의 병폐와 사조임이 반영된 현상이기도 합니다. 마른 장작이 빨리 잘 타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영적으로 메마른 사람들이 많기에 예수를 전하는 것이 쉽지는 않아도 한번 예수님을 만나면 빠르게 그 영적 성장이 이루어지는 효과를 볼 수 있는 곳도 바로 이곳 라스베가스입니다. 그러기에 황금어장과 같은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과거에 이러한 활동을 해왔지만 여러 이유로 중단하고 있었는데 이제 다시 시작하려고 합니다. 교회가 전도의 교착상태에 빠진 것을 그냥 방치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부탁하신 복음전파의 사명을 거역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며 더 이상 방치할 수가 없음을 깊이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전도는 남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복음을 배웠으면, 그 복음의 능력이 무엇인지를 알았다면 우리는 전파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전파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이거나 복음을 아직 모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너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파하라’(딤후4:2) 하셨습니다. 지금은 복음을 듣고, 복음을 전파해야 할 때입니다. 나가서도 전파해야 하겠지만 앉아서도 전파해야 합니다. 시대가 달라졌습니다. 과거에는 나가는 전도였지만 지금은 앉아서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Social network를 통해서입니다. Google map, Googling activity, Facebook, Homepage등을 활용하는 방법도 좋은 도구입니다. 어떻게 하든 니.모를 찾아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 니모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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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
    아름다운교회 Feb 24.2021 배우고 다듬는 제직
    베가스에서의 교회생활을 하는 제직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차갑기만 합니다. 목회자들마다 자조섞인 신음을 하는 이유중의 하나는, 세워진 제직들의 역할과 책임 때문입니다. 교회를 운영하려고 일꾼을 세우는 과정속에서 검증되지 않은 사람들을 마구잡이식, 경쟁적으로 세운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체면 때문에, 교회에 대한 기여도 때문에, 나이 때문에, 이렇게 저렇게 직분자를 남발하듯이 세우니까 이것이 당연시 되는 것 같아서 정말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충분히 검증되고 훈련되고 되는 과정을 거쳐서도 바른 교회를 세워가는 것도 어려운데 명분에 밀려서 함부로 제직을 세우다가 보니, 이런 저런 웃지못할 슬픈 사연들이 일어나서 교회마다 오히려 고통을 받고 있는 현실이기도 합니다. 교회를 위해서 세워진 제직이 아이러니하게도 교회를 허무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비판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제직 서약을 하고서도 약속을 지키지 않습니다. 안수집사, 권사, 장로들은 임직을 받고도 교회를 헌신짝 버리듯 버리고 다른 곳으로 떠나버립니다. 중직자들이 교회를 떠날 때 고민하지 않고 떠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고민의 흔적이 철저히 자기중심적이어서 허망하기까지 합니다.우리 교회의 현실은 어떨까요? 제직의 사명과 역할을 처음부터 잘 배운 성도들은 없을까요? 한 교회에서 오랜 시간동안을 다니며 제대로 된 훈련과 양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경우도 있고, 아름다운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한 분들이 직분자가 된 경우에도 제대로 양육을 받지 못해서 제직으로서 나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한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한쪽은 이미 다 아는 것 같이 행동하고, 한쪽은 잘 몰라서 실수를 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다가 보니, 목회자는 한 방향으로 목회를 집중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우리 교회가 연초에 제직 성장 세미나를 가지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세상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도 일정한 시간을 두고서 재교육을 받습니다. 그런데 교회의 직분자들은 한번 임명받고 임직을 받으면 영원히 훈련과 양육이 필요없을 것 같이 생각하거나 행동합니다. 가당치 않은 일입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을 배워야합니다. 경건에 이르도록 훈련에 훈련을 거듭해야 합니다. 신앙생활 10여년 하다가 보면 모르던 것들도 아는 체 하기가 쉬워집니다. 일정한 교회생활의 법도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제직들이 행동하고 기도하며 사는 모습을 보면 그 교회의 영적 수준, 훈련의 수준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늘 배워야 합니다. 성령께 직접 배우겠다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교회안에서 질서를 주셨습니다. 각 교회마다 섬기는 정황이 다릅니다. 목회자에게 주신 그 때 그때의 비전이 다릅니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내 방식, 내가 은혜받은 대로 섬기겠다고 하기 때문에 교회에 혼란과 분란이 일어납니다. 그렇게 되면 피해는 고스란히 교회 즉, 성도들에게 전가됩니다. 배운 것을 다시 또 배워야 합니다. 습관이 될 때까지 배워야 합니다. 과거에는 이런 교육들이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간섭받기 싫어합니다. 그러면 교회는 정상운영될 수 없습니다. 배워야합니다. 배우는 제직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나도 어른인데 누구한테 배우겠습니까? 배움의 자리에 앉기도 부담스럽습니다. 그래도 배워서 다듬어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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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Feb 24.2021 경건의 훈련이 필요한 이유
    지금 호주는 불타고 있습니다. 지난 해 9월부터 무려 5개월동안 산불이 일어나서 전국이 그야말로 불바다가 되고, 대한민국의 면적만큼이 불타고, 28명이상의 인명피해는 말할 것도 없고 10억마리 이상의 캥거루, 코알라등의 야생동물이 희생되었으며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의 엄청난 피해가 일어나고 있다고 언론들이 보도하고 있습니다. 막상, 지진과 산불이 거의 없는 베가스에서 살다가 보니 그 피해가 얼마나 큰지 가히 상상이 되지 않는데 인터넷에서 산불지역을 보니 정말 섬뜻할 정도로 호주 대륙이 불바다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고통받는 이웃들이 상처에서 빨리 치유되기를 기도합니다. 이 호주 산불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분석을 내놓았는데 지구 온난화의 피해라는 이야기가 자주 등장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가지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이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일어나는 각종 재해 재난의 사건들을 가만히 조망해 보면 하나의 생각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자연재해들은 과거에도 있어왔고 지금도, 앞으로도 인간의 사는 주변에서는 그러한 일들은 반복이 될 것이지만, 요즘의 현상에 대해서는 관심을 더 두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각성이 일어나는 것은 그 영적인 각성입니다.우리가 세상의 종말을 예견하는 성경의 가르침을 볼 때에 두가지 현상을 말합니다. 하나는 지진등의 자연재해와 분쟁과 분규입니다. 그리고 시대의 사조변화입니다. 마태복음 24장과 디모데후서 3장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얼마나 이 시대와 성경의 증거가 닮아가고 있는지 조금만 살펴봐도 알 수가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복음의 증거완성입니다. 세상의 재해들은 마지막 때의 현상이지 끝은 아니라고 했지만, 복음의 완성은 진짜 세상의 끝이라고 주님은 말씀합니다. 그런데 이 두가지가 우리들의 눈앞에 환하게 펼쳐져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이러한 종말의 시대, 아니 말세지말(末世之末:끝중의 끝)의 시대에 살면서 무딘 감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아무리 심각한 현상을 보아도 과거에는 ‘덜컥’했는데, 하도 그러한 것들을 봐서 그런지 ‘아, 또?’ 그럽니다. 마치 예수님이 자신을 아무리 증거해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답답해 하셨던 것처럼, 이 시대의 징조들을 보면서 무감각하게 사는 우리들의 모습은 아닌가 싶습니다. 아니면 애써 그 마지막을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진짜 지혜는 ‘잊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술을 먹고 괴로움을 잊으려하지만 다음 날 아침에 현실은 없어지지 않은 채 그대로 다가오는 것과 같습니다. 진짜 지혜는 ‘해결 하는 것’입니다. 대비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경고들에 대해서 진지하게 듣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처하는 것입니다. 종말을 경고한 성경의 가르침을 종합해 보면 오늘의 보이는 현상들이 그냥 우연의 일치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더 그리하자’(히10:24~25)는 말씀처럼 주님앞에 서는 훈련을 해야합니다. 경건의 훈련은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제직 세미나를 하는 이유도 바로 그러합니다. 마지막을 주님의 일꾼으로서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를 살펴보는 일입니다. 이것은 단지 제직뿐만 아니라, 우리 모든 성도들이 같은 마음으로 준비해야 하는 일들입니다. 2020년은 주님이 기뻐하시도록 잘 준비하는 한 해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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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Feb 24.2021 공감능력을 키우는 교회
    어느 군인이 베트남 전쟁을 치루고 집으로 귀향을 합니다. 오는 공항에서 집에 계신 부모님에게 먼저 전화를 했습니다. 잠시 머뭇거린 그는 부모님에게 곧 뵐 것을 말하고 친구 한명을 데리고 가도 되는 지 물어보았습니다. 부모님은 흔쾌히 아들의 친구도 오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들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제 친구는 전투중에 부상을 당해서 팔 하나와 다리 하나가 없어요. 그리고 갈데가 없으니 우리 집에서 살게 해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부모는 난색을 표하며, 그런 사람이라면 우리가 형편이 안되어 받을 수가 없을 것 같으니 다른 곳의 도움을 받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거절을 했습니다. 아들은 아무 말없이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소식이 없었고, 얼마 후에 집으로 경찰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모처에서 사람이 떨어져 사망을 했는데 인적 사항을 살펴보니 당신의 아들인 것 같다고, 한 번 와서 확인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부모는 망연자실 한 채 달려가 영안실에 누운 아들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내 깨달았습니다. 그 아들은 팔 하나와 다리하나가 없는 전상자였고, 데려온다는 친구는 다름 아닌 아들 자신이었던 것입니다. 상대방의 입장을 서로 대화를 하고 이해를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너무나 아쉬움이 너무나 큰 이야기입니다. 공감되는 이야기이지요.교회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가 천사가 아닙니다. 모두가 예수믿어 성자가 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러하기에 차이는 있지만 미성숙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교회안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보면 왜 그리 치사하고 치졸한 문제 때문에 싸우고, 대적하고, 스스로 원수를 만들어 가는지 모릅니다. 서로에 대해 공감해 보려는 노력도 없이 내 편과 적군만 있는 것처럼 싸웁니다. 나는 옳고 상대방이 틀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감능력이란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는 능력입니다. 서로를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을 때에 갈등 구조속에 빠지게 되고, 교회는 은혜보다는 정죄와 갈등으로 인하여 점점 쇠락해 지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입니다. 그렇게 관계가 불편해지면 교회생활이 불가능해집니다. 결국 누군가는 교회를 떠나게 되는 악순환을 맞이하게 되고 맙니다. 이런 것이 정말 교회일까요? 예수님이 우리를 받으시고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받아 용서하고 용납하라고 주님은 가르칩니다. 그런데 우린 그럴 능력도 없습니다. 반목하고 견제하고, 미워하고 나누어집니다. 그런 교회를 누가 다니겠습니까? 우리가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주님이 우리를 받으시는 것처럼 우리가 서로 용서하고 받아야 합니다. 일방적이 아닙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평상시에는 서로에게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어려울 때에는 찾아가 공감대를 형성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런 것도 없이 어떻게 예수님을 사랑한다 할 수 있겠습니까? 원수를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목회자와 성도들이 서로 불행한 신앙생활을 한다면 그 교회는 접어야 마땅합니다. 서로가 행복해야 합니다. 행복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어야 믿음이 자라고, 말씀이 들어가 새롭게 되는 은혜를 체험하기도 합니다. 우리 아름다운 교회는 2020년 한 해에는 상대방을 이해해보기로 노력하는 일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말 한마디 가지고 싸우고, 표정하나 가지고 서운해 하지 말고, 상대방의 실수와 부족을 이해해 보려는 공감능력을 배양하는 해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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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7
    아름다운교회 Feb 24.2021 복음을 듣고 복음을 들려주라
    시간은 인간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약점입니다. 시간이라는 한계에 부딪쳐 결국은 누구나 손을 들 수 밖에 없는 존재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은 이러한 유한한 인생에게 복의 통로라는 위대한 선물을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세월을 아끼면서 살라고 유한한 인생이 시간의 개념도 없으신 하나님의 정해진 ‘카이로스(때)’를 이루기 위하여 이 한 해를 선물로 받은 것임이 틀림이 없습니다. 젊었을 시절에는 그냥 살면 살아지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유한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요즘은 세월을 아끼며 살라고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를 조금씩 이해가 될 것같습니다. 유한한 인생이 무한한 하나님의 존전에 섰을 때에 받아야 할 심판은 만고의 진리처럼 숭고한 가치를 뿜어내며 우리 앞에 놓여있음을 매일, 매월, 매년 염두에 두고 삶을 살아야 합니다.해마다 그래서 목표를 두고 개인과 교회가 가야할 길을 제시하는 것은 그저 시스템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은 아닙니다. 분명한 목표를 통해서 주님앞에서 섰을 때에 균형적 인생을 내놓고 싶고, 해마다 주님이 목회자를 통해서 주신 비전들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읽으며 그것들을 이루고자 힘쓰기 때문입니다. 2020년도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함께 걸어야 할 길의 목표를 ‘복음을 듣고, 복음을 전하자’라고 잡았습니다. 복음이란 그저 ‘예수믿으면 천국갑니다’라고 정의하는 것은 이미 낡은 가치이고, 온전한 것이 되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또한 ‘예수를 잘 믿는 것’이라고 하는 말도 온전한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깨닫는 것은 죄인된 인간이 얼마나 자기 죄로 인하여 비참한 인생을 살고 있는지를 깨닫는 것에서부터 그러한 인생이 가야할 궁극적 방향이 지옥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고, 그분의 사랑을 기대하고, 온전한 예수의 사람으로 변화되고, 영원한 절대 가치를 소유하는 복된 사람으로 사는 총체적 과정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정말 위대한 것입니다. 왜냐면 죄 아래 있는 우리 인생이 누구인지를 너무나 환하게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인생은 ‘복음’이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는 복음이 필요한 인생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복음이 우리 안에 들어와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닫는 사람은 그 복음을 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복음적 인생입니다. 지난 한 해를 지나면서 하나님께서는 그런 의문과 갈망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정말 복음을 알고 있는가? 바울사도도 로마 교회에 다시 들려주고 싶은 복음에 대해서 언급했던 것처럼, 우리 아름다운 교회에서도 복음을 다시 들어야 할 사람은 없는가? 그것이 바로 저 자신이었고, 바로 우리들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왜냐면 그저 복음을 예수믿고 천국가는 정도로만 이해했고, 그러다가 보니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이 없이 교회만 나오면 천국가는 줄알고 습관적 신앙생활에 머물고 만 껍데기 신자들이 버려진 조개껍데기처럼 즐비하게 교회에 쌓여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속에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복음을 들려주라. 그리고 복음을 전하라! 올 한 해에 여러분들은 지겹도록 어쩌면 복음에 대해서 들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자연스럽게 다른 이에게 복음을 전할 소원이 생길 때까지 복음에 묻혀 살아야 하겠습니다. 먼저 복음을 듣고 그리고 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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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6
    아름다운교회 Dec 29.2019 표류인생
    벌써 한 해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시간은 어김없이 바위에 붙들어 매두어도 어떤 정점을 향해서 뚜벅뚜벅 걸어갑니다.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고 아무 말도 없이 걸어갑니다. 누가 소리를 치거나 왜 그리 빠르냐고 불평해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그 정점은 ‘심판’이라는 정점입니다. 산 자와 죽은 자가 모두가 서야할 심판의 정점을 향해서 가게 되어있습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그 시간을 하나님은 사용하십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때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이야기합니다. 2019년 한 해가 얼마 남지 않은 것처럼, 우리의 때도, 주님의 날도 얼마남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 지혜로운 마음을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렇게 간구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날을 계수할 지혜를 얻게 하소서”(시90:12).생각해보면 지난 한 해가 번개와 같이 번쩍이듯 사라졌지만, 개미같은 짧은 시간을 살면서 정말 다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일들이 지나갔습니다. 큰 일에서부터 작은 일까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에서부터 영원히 기억할 일까지 많은 일을 겪으며 한 해를 지나왔습니다. 때로는 고통과 아픔의 시간앞에서 한숨과 원망의 숨을 쉴 때도 있었습니다. 때로는 은혜와 풍성한 격려로 위로를 받고 감사한 때도 있었습니다. 참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삶의 방식과 생각의 관점앞에서 울고 웃는 일들이 많은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어느 cartoon에 이런 그림이 있었습니다. 제목은 ‘관점의 차이’입니다. 자그마한 무인도에 한 사람이 표류해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날마다 지나가는 배가 오기를 학수고대하며 지냅니다. 그런데 마침내 작은 배가 다가옵니다. 그 사람은 ‘야!! 배다!!’ 기쁜 마음으로 구조될 것을 바라며 기대에 차 있습니다. 반면에 다가오는 배에는 지난 폭풍우로 인해서 파선되어 표류하는 배였습니다. 이 배에의 사람은 땅이 그립습니다. 땅이 나타나기를 학수고대하며 떠내려 온 것입니다. 마침내 한 사람이 살고 있는 무인도를 발견하고서 소리를 지릅니다. “야!! 뭍이다!! 땅이다!!” 이것이 관점의 차이라는 것입니다.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달려있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둘다 표류인생이라는 것입니다. 표류 인생이 어느 관점에서 보든 달라지지 않습니다. 절망이라는 것 말이지요. 아, 혹시 모르지요, 표류하는 인생 둘이 만나서 지금까지 겪은 어려움보다 더 잘 견딜 수 있을지도 말입니다.우리의 인생이 과거에 어떤 경험을 했든지 어쩌면 중요한 것은 현재와 미래를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달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나쁜 것만 곱씹으며 산다는 것은 지옥과 같은 것이 아닐까요?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성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이기주의에 쉽게 빠집니다만, 표류하는 것이 인생이고, 이래 가든 저래가든 무인도의 사람이나 난파선의 사람이나 한 인생을 사는 것인데, 거기에 진짜 구원선인 예수를 만난 기분은 어떨까요? 한 해를 달려왔습니다. 보고 싶은 것만이 아니라, 진짜 우리의 구원자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무인도나 표류선을 만난 것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새로운 피조물’의 경험을 하게 됩니다. 신앙생활이라는 것을 시작하면서 마치 신혼부부처럼 그런 믿음의 행복을 만나며 살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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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5
    아름다운교회 Dec 22.2019 복음이면 다입니다.
    성탄절입니다. 우리 주님이 이 땅에 나같은 죄인을 위하여 하늘 영광과 능력을 버리고 오신 귀한 사랑을 기념하고 기뻐하는 절기입니다. 이번 성탄절에 감사와 사랑의 카드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나름대로 예쁘다고 생각해서 만들었는데, 지인들로부터 받은 성탄 트리들은 내가 가진 트리보다 훨씬 더 크고 화려하고 멋있는 것이었습니다. 갑자기 내 트리가 초라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성탄 트리가 얼마나 크고 멋있고 화려하느냐에 의해서 성탄절이 더도 덜도 빛나지 않음을 깨달았습니다. 그 안의 내용인 예수님이 중요한 것이었습니다.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단 한가지 목적은 죄에 묶인 인생에게 자유함이라는 복음을 주시기 위하여입니다. 지옥으로 향하던 우리를 천국으로 부르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사명은 여러 가지처럼 보여도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의 존재이유는 단 하나 ‘복음’ 그리고 ‘영혼구원’입니다. LA의 대표적인 부흥하는 한 교회가 있습니다. 단 기간에 괄목할 성장을 이룬 교회라고 해서 저 역시 가서 예배를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좋은 예배 시설과 친절한 사람들의 봉사 그리고 깔끔한 예배를 볼 수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여러 사람들의 관심에 오르내리고 보니 이런 저런 소문도 많이 들렸습니다. 이번에 어느 목사님에게 들은 소식은 그 교회의 규모가 아무리 늘어나도 재정규모가 늘지 않아서 고민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유치원을 운영하니 젊은 부부들의 인기가 많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교인의 증가로 이어지나 여전히 재정과 일꾼의 부족으로 허덕인다고 합니다. 모든 교회의 고민이라고 보여집니다.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목회자로서 고민이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죄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신 것인데 오늘 우리의 시대는 복음은 하나의 달콤한 이야기로 남겨지고, 무슨 편의 시설의 극대화 혹은 교회의 서비스업으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입니다. 누이 좋고 매부좋으니 괜찮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니 당연히 시설의 편안함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편하게 예배드리고 갈 수 있는가에 고민들을 많이 하변서 각종 부대 시설이나 편의 시설을 앞다투어 들여놓습니다. 사람들이 모여야 복음도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주님이 그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복음의 본질은 없어지고, 사람만나는 것이 좋고, 편의시설과 인간세상의 관계가 좋아서 교회를 다니고, 그 안에 생명처럼 자라는 복음은 뒷전에 밀린다면, 그래서 주님은 복음 때문에 오셨는데, 교회가 그 복음의 본질은 잃어버렸다면 정말 위험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물론 복음의 본질도 잃지 않고, 편한 신앙생활도 잃어버리지 않느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마치 그럴 수 있는 기적이라도 있다고 믿지만) 삶의 편안함과 신앙은 상관관계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성탄절을 어김없이 보내면서, 왜 오셨는지를 묵상해 보지 않고서 우리의 즐거운 기분만이 가슴에 남는다면 무엇인가 본말이 전도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 내가 누리는 이 즐거움이 예수님의 생명 때문인지, Merry Christmas의 기분인지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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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4
    아름다운교회 Dec 15.2019 가난해야만 들리는 소리
    한 해를 마무리하고, 성탄절을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이 땅에 완벽한 인간의 옷을 입고 오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누리는 행복이 여러 가지입니다. 큰 것에서부터 작은 일에까지 소소하게 누릴 수 있는 행복, 아마도 그것은 주어지는 여건보다는 마음에서 만들어내는 주님이 주신 생명수와 같은 것이지 싶습니다. 비교하다보면 한없이 초라해지고 비참해지는 것이 사람인데, 그런 비교없이 현재 내가 가진 상황자체만으로 감사하고 행복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누리는 감사한 작은 행복하나는 McDonald Senior coffee한잔을 마실 때입니다. 사무실에 손님접대용 coffee machine이 있어서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내려마실수도 있지만, 맥다방 커피는 이것보다 저렴하다가 보니, 손님이 올라올 때 외에는 잘 사용하지 못합니다. 물론 비싼 커피를 먹는 즐거움도 남다르겠지만, 작은 돈, 60cent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마실 수 있어서 좋습니다. 맛이 좋아서일까요? 사실 그것보다는 저렴해서 마음이 편한 것이 행복을 느끼게 하는 요인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 커피 한잔을 손에 쥐고 있으면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때는 감격의 눈물이 나오려하기도 합니다. 참 바보같을 수 있지만, 이 따뜻한 커피도 못먹는 많은 사람이 있음을 보았고, 정말 가난해서 커피 마시는 것도 사치라고 생각할 시기도 지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 걱정없이 1불 하나 가지고 작은 커피를 사고도 남는 것이 있다는 것이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럴 때 가장 은혜를 받았습니다.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도 가난한 곳으로 임하셨습니다.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 도무지 불가능한 방법으로, 말도 되지 않는 방법으로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하나님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화려한 인생이 아니라, “고운 모양도 풍채도 없어서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다”(사53:2)고 하였습니다.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고, 머리둘 것도 정해지지 않는 비천한 삶을 살고, 항상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짧은 평생을 사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에서 양을 잡아 각을 뜨고 제사드리듯이 자신의 몸으로 완벽한 제사를 드리시고 이 땅의 삶을 마쳤습니다. 항상 죄인과 가난한 자들이 예수님의 주변에서 안식과 달콤함과 평안을 누렸고, 희망과 생명의 빛을 보고 새 힘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하늘로 오신 곳으로 가실 때조차도 가난한 자를 부탁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왜 그러하셨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가난한 자만이 예수님 편이라서 그럴까요? 그렇지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 가난은 단지 물질적 가난만은 아닐 것입니다. 가난한 자라야만이 들을 수 있는 무엇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래서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을까요? 마음이 가난하지 않으면 전혀 복음이 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난해야 합니다. 부유해서는 들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면 정말 우리 영혼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일 것입니다.성탄(聖誕)의 시간에 돌아보고 싶은 것이 그것입니다. 나는 과연 무엇을 행복해하고 있는가? 더 많은 것을 움켜쥐고 살아보고자 마음의 원하는, 육체의 욕심을 이루고자 아웅다웅 삶을 살지 않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없이는 살 수 없어서 가난해질대로 가난한 마음으로 주님을 새롭게 만나는 시간이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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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3
    아름다운교회 Dec 08.2019 사병 훈련소와 장교 훈련소
    목회를 하는 목사의 입장에서 목회가 쉽다고는 절대로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목회는 고차방정식을 푸는 것과 같아서 단순한 산술 계산이 힘든 것이 목회라는 것을 나이가 들수록 탄식처럼 외치게 됩니다. 왜 그럴까, 스스로 자문해 봅니다. 그런 답을 이런 비교에서 찾는다면 어리석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병 훈련소는 남자들이 의무적으로, 원하든 원하지 않든 반드시 가야 하는 강제 징집입니다. 본인의 의사없이 강제적 수용이기에 모든 훈련에 피동적일 수밖에 없고, 본인의 참여를 끌어내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어차피 주어진 복무 기간만 채우고 나가면 된다는 것이 지배적이기에 거기에 희생이나 헌신을 기대하는 것이 힘들어집니다. 물론 전우애와 애국정신이 가끔 그런 것을 뛰어넘기도 하지만 대체로 피동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장교 훈련소는 그렇지 않습니다. 본인들이 원해서 들어왔고, 숱한 경쟁을 통해서 진급과 진출에 영향을 받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자발적이고, 진취적이고, 주어진 것만을 하기보다는 더 큰 일을 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릅니다.사회주의와 민주주의도 그렇습니다. 사회주의는 개인재산을 엄격히 제한을 하기 때문에 구태여 노력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그래서 지지부진합니다. 그러나 민주사회에서는 살아남기 위한 경쟁구도속에서 일하면 일한만큼의 보상이 주어지기에 누가 뭐라고해도 창의적이고 진취적인 일에 뛰어듭니다. 그래서 다릅니다.교회는 어떨까요? 여기에는 두가지 요소가 다 작용을 합니다. 어떤 이들은 수동적이고 미온적인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자발적으로 뜨거운 마음으로 앞장서서 앞으로 나아갑니다. 한쪽은 되도록 일은 하지 않고, 종교적 안정을 찾으려 하고, 한쪽은 누가 뭐라해도 뜨거운 열정으로 사역에 뛰어듭니다. 그래서 목회가 어렵습니다. 어떻게 사병을 장교로 양성할 수 있는냐 때문입니다.동기부여가 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목회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에 대한 동기부여를 해서 그 사역을 이끌어가야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는데 사람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보니 지지부진할 때가 있고, 어려움을 당할 때도 있고, 각종 어려운 감정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중요한 것은, 모두가 사병도 필요하지만, 장교 양성도 해야 합니다. 혹독한 훈련을 통해서 나라를 위해 충정을 다할 수 있는 사람들을 양성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전투력을 강화할 수가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주님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모든 일이 억지에 가까울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에 의해서 예수를 사랑하게 되면 그때부터 자발적인 사랑으로 감당합니다. 그때에는 기쁨이 있고, 감동이 있고, 지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충성된 사람들을 부르십니다. 모두가 사병훈련소에 있고자 할 때에 하나님은 누군가를 사관학교로 보내고 싶어하십니다. 그것이 목회자이겠습니까? 그것이 선교사이겠습니까? 아닙니다. 주님을 사랑하게 되면 위치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있는 곳에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관학교같은 훈련을 받아서 그리스도의 충성된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새해가 옵니다. 하나님은 부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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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Dec 01.2019 리더(leader)를 위해 더 기도해야 합니다
    오래 전부터 교회의 건강함을 돕는 단체인 자연적 교회성장(NCD)라는 단체에서 벌이는 운동이 교회의 건강운동이었습니다. 그들 사역중의 하나가 신청하는 교회의 건강함을 진단해주고, 그 처방을 통해 교회의 건강한 성장을 돕는 단체이기도 합니다. 목회자 입장에서 우리 교회가 건강한가를 묻고는 하는데, 막상 그런 진단을 받아보려고 하는데 여간한 용기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면 교회의 약점을 그대로 드러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약점이 드러날 때, 교회가 아프다는 진단을 받았을 때 오는 파장이 두렵기도 한 것이어서 쉽지않습니다. 그분들이 염려하는 것들이 이것입니다. “교회는 크고 작음의 문제가 아니다. 건강한가, 아픈가의 문제이다. 큰 교회가 더 건강할 것이라는 기대도 버리고, 작은 교회가 더 좋을 것이라는 기대도 버리자. 교회가 아프면 세상이 걱정한다. 교회는 세상의 유일한 소망이기 때문이다”(Steven Kim).그렇습니다. 어느 순간에, 우리는 교회의 크기나 웅장함 그리고 교인들의 많고적음에 의해서 교회가 좋고 나쁨을 가늠하는 척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작은 교회는 현대인들에게 회피 대상입니다. 더구나 개척교회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왜냐면 가면 벌써 시설과 서비스면에서 너무나 열악합니다. 예배드리는 맛도 없고, 분위기도 썰렁하고, 말씀도 박합니다. 그러니 무슨 열망이 있습니까? 그리고 작은 교회는 내가 헌신해야 할 부분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야말로 가성비가 떨어지는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작은 교회는 문제투성이라는 말일까요? 반대로 교회에 사람이 많이 모이고, 좋은 시설에, 현대인의 구미에 맞는 설교 그리고 편안한 시스템, 적당하게 pay하고 적당한 tension을 즐기고, 행복은 최고치를 누릴 수 있는 큰 교회는 문제가 없는 것일까요? 늘, 목사의 가르침에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입니다’라고 해서 그런 줄은 알겠는데, 막상 그 안에 들어가보면 교회는 사람이 아니라 건물처럼 되어야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 현대 신앙인이 아닌지 되묻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건물의 화려함과 멋을 자랑하지만, 우리 안에 보이지 않는 성전에는 관심이 적거나 엉망의 관계를 만들어내는 것은 왜일까요? 생각과 행동이 따로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번도 건물로서의 성전을 언급하지 않으셨습니다. 바울의 가르침도 그렇습니다. ‘너희가 성전이다’라고 합니다.교회가 건강하려면 리더인 목자와 따르는 양들이 바라보는 지향점이 같아야 합니다. 서로가 바라보는 것이 다르면 서로에게 만족을 줄 수 없고, 있는 것조차도 감사하지 못하고 못가진 것만 불평하기 쉽습니다. 마치 애굽을 떠나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만나와 메추라기에 질려있을 때에 ‘왜 우리에게는 파, 마늘, 부추는 없느냐’고 투덜거리는 것과 같습니다. 주인되신 하나님과 리더인 모세의 생각을 그들을 읽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건강이 바로 그것과 같다고 봅니다. 내가 바라는 교회가 아니라 주님이 바라는 교회가 되기 위하여 각자가 원하는 것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나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리더를 위해 기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리더에게 그 꿈이 주님과 다르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주여, 우리 리더들에게 복음의 비전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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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Nov 24.2019 더 받을 것이 없습니다
    옛말에 ‘형만한 아우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이 말을 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제가 어머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입니다. 졸지에 제가 막둥이 아들이 되었습니다. 몇 년 전에 사랑하는 아우가 먼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후입니다. 막내 아들이 가장 어머니를 잘 모시고 있었는데, 그 아들이 세상을 먼저 떠나면서 그래도 가장 지근거리에 있는 아들이고, 갑자기 막둥이가 된 저에게 부여된 임무여서 더욱 그러한 것 같습니다. 항상 연로하신 어머님을 되도록 자주 뵙고 돌보겠다고 마음을 먹지만 목회한다는 핑계로 그러지를 못합니다. 하지만 되도록 최선을 다해서 모시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마음가짐에도 항상 뒤로 밀리는 것은 형님 때문입니다. 형님이 얼마나 자상하게 어머니의 필요한 부분을 긁어 주는지, 제가 아무리 발 벗고 따라가려고 해도 그 마음계산은 따라갈 수가 없다는 것을 배운 후에야, 그 옛말이 사실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어머니를 지난번에 가서 뵙게 되었는데, 커피를 마신다고 빵집에 갔었는데 어머니가 어떤 빵에 관심을 가지시고 얼마인지를 물으시는 것입니다. 저는 그냥 지나가려는데 며느리인 제 아내가 그 마음을 아시고 왜 필요하시냐고 물어본 것입니다. 머뭇거리시면서 며느리와 어머니의 대화의 내용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당신이 복지관에 다니고 있는데 일하는 직원들에게 감사선물을 하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까짓것 해드리지 뭐, 그러고 있는데 며느리가 그 의중을 파악하고 직원들이 몇 명이나 되냐, 빵 값은 걱정하지 마시라고 저희가 해드리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직원이 무려 4-50명이라는 말에 순간 제가 그럼 얼마야? 몇백불은 되겠네? 그리고선 얼마를 드리고서 드는 생각은 무엇이었을까요? 순간적으로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들내외에게 해달라고는 말을 못하고 당신이 하겠다고 빵값을 알아보는 것이지만, 며느리는 이내 그것이 우리의 할 일이라고 알아차린 것입니다. 그래서 드린 것이었는데 마음 한 구석에서는 좀 아까운 생각이 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마다하시는 것을 드리고 오는데 마음에 이런 음성이 들리는 것입니다. ‘야, 너 참 치사하다. 네 어머니가 너를 위해서 해주신 것이 무엇인데, 그까짓 빵값 몇백불이 아까운 생각이 들어?’ 한방 얻어맞은 것 같았습니다. 맞습니다. 그 어머니는 평생을 저희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신 사랑을 주셨는데 내 주머니의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불효자이지 않습니까?우리가 바로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아낌없이 주셨습니다. 심지어 독생자 자신의 아들까지 우리를 위해서 주셨습니다. 그 아들을 아까지 아니하시고 주신 분이 무엇을 더 아끼겠냐고 말씀합니다(롬8:21). 우리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 받은 존재입니다. 그런데 가끔 우리는 우리의 주머니가 아까울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물질의 양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참 인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감사하다고 하면서 주님께 드리는 것은 인색한 것은 감사가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더 받을 것이 없을 만큼 받지 아니한 것이 없습니다. 이미 모든 것을 받았습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오늘도 우리는 더 달라고 생떼를 씁니다. 죄송하고 또 감사합니다.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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